응시

드리워진 커튼 틈 사이로 밝은 기운이 들어온다. 근래 들어 숙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밖은 바람이 거칠게 이는 듯하다. 꾸부정한 등을 하고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멀리서 영상처럼 스쳐 지난다. 얼굴이 차갑다. 머리 위로 바람이 닿는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이불을 당겨 여며주곤 자리에서 벗어났다. 왠지 모를 한줄기 서러운 바람이 스쳐 간다. 이제 어두웠던 거리는 점점 밝아오겠지. 세상은 어제처럼 또다시 바삐 돌아갈 터이다. 고독의 시간을 밀쳐내고 침묵이 머물러 있을 곳으로 갔다.

책 냄새가 좋다. 불을 켜니 어두운 침묵은 오롯이 따스함을 지닌 채 나를 반긴다. 금세 아늑함이 찾아든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까맣게 타버린 듯한 가슴에 일순 새순이 돋는다. 얼마 전 지인이 손에 쥐어준 책을 펼쳤다. 잠언집이다. 몇 장을 넘기다 어젯밤 문자로 보내온 문장을 떠올렸다. 마음에 와 닿으며 생각이 깊어졌다.
“존경은 존경을 낳지만, 경멸은 경멸을 낳는다. 내가 바뀌면 상대도 바뀐다.”
평소 같으면 별다른 감응 없이 고개 끄덕임만으로 넘겼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근 내 삶에 투영해 보면 많은 생각을 해 봄 직한 말이기에 마음이 이끌렸다.

흔들림의 나날이다. 걸어갈 길을 잃은 나그네 삶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세상에 혼자인 것 같고 지쳐 숨이 찬다. 왜 살까? 여러 상념이 나를 뒤흔든다. 비정상인의 삶은 고달프다. 멈추어 서면 그나마 정상 범위 안에 있다. 어쩌면 병리의 잣대로는 정상인지도 모른다. 온전한 정신을 지녔으니 말이다. 정확히 어떤 쪽으로 가면 좋을지 판단하기에 여러 제약이 주어진다는 것이 문제지만…. 개인의 성찰을 통해서가 아닌 일방적 치료 행위로는 육체의 불완전으로 인한 작아져 가는 가슴을 치료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삶은 궤적을 가진다. 속도를 내야 할 때,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할 때를 파악해 적절한 해결을 해야만 인생의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그러지 못할 때 불안과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이 삶인듯하다. 이기적인 해결책으로 대인 관계에서 괜한 오해를 만들어 자기기만과 만족을 꾀하는 우를 범한다. 어제를 후회하게 된다. 서재를 나선다. 말갛게 동이 텄다. 닫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삶에 관점을 달리하여 응시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