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모두 내려앉은 저녁, 가족과 외식을 하던 중에 큰 아이가 우리는 제대로 가족여행을 간 기억이 없다고 토로하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삶에서, 여행은 가슴에 별을 선물한다.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를 알면서도 많은 이가 그러하듯이 시간이 어긋나고 상황이 어렵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지금껏 가지 못하였다. 마음은 늘 있었지만…. 설렘과 새로움 그리고 충만함을 꿈꾸게 하는 것이 여행이라 하였다. 또한, 여행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마음을 다잡고 가족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큰아이는 전역하고 복학 전까지 재충전 기간이고 작은아이는 수능을 치른 이후라 시간 여유가 되었으며 때마침 아내는 방학이었다. 하여, 그동안 수고한 가족 위해 여행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흐린 날씨 탓으로 조금은 우울한 휴일이었다. 오후 한때 조금은 푸름을 회복한 하늘을 올려다보다 별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아이들과 미소로 가족여행 계획을 세우자고 하고보니 마냥 즐겁다.

제주도. 세 번의 이곳 여행으로 말미암아 추억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학창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였던 터라 여름방학을 맞아 젊음을 앞세우고 9박 10일간 여정으로 찾아 들어 배낭 속에 제주를 담았다. 남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며 휴양지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순박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들길을 걷다가 길가 짚더미 속 노랑지빠귀의 웅크린 모습을 조심스레 살피며 사진기에 담기도 하고 활짝 핀 들꽃 무더기를 보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햇빛을 달이 먹은 버린 밤에는 둘러앉아 낭만과 문학을 나누기도 하면서 젊음을 만끽했었다. 걷다 지쳐 올려다본 하늘은 왜 그다지도 높고 푸르렀던가. 지금도 가끔 당시 사진들을 보곤 하며 함께 했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젊음과 미래를 나누며 기울였던 소주잔의 향기가 아련히 밀려온다. 두 번째 제주와 만남은 졸업여행이었다.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정취는 사회진출에의 압박과 두려움을 잠시 잊기에는 충분하였기에 마냥 웃고 즐기며 제주의 향취에 흠뻑 젖었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신혼여행 때이다. 사랑스러운 신부와 손잡고 도착한 제주는 초록의 싱그러움을 앞세우고 반겨주었다. 왜 그다지도 설레었던가.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내리고 있던 고향 친구와 벗함으로 인해 신혼 첫 밤의 애틋함은 많이 무디어졌다. 기쁜 날, 술이 없어 되겠느냐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밤 넣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느라 신혼여행 첫날은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신혼 시절, 그 기억을 들추어내곤 하는 아내에게 오래도록 미안함을 말하곤 하였다. 젊은 시절 추억으로 아롱진 제주이기에 새삼 기대할 것은 적겠지만 제주에 있는 글벗과의 차 한 잔도, 동무와 재회도 기대하게 된다. 들렀을 때마다 제주가 주는 느낌은 달랐었기에 가족과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또 다른 감흥이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어김없이 날은 흘러 떠날 날이 되었다. 아이들과 아내는 3박 4일간의 일정을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듯하였다. 아직은 동반 여행에 제약이 따르는 강아지 둘도 함께하려니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몽’과 ‘뽀’도 가족이니 함께해야 한다며 고집이었다. 처음엔 반대하였지만, 강아지 가족에 대한 애틋한 아내 사랑을 알기에 그들 위주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 합류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비행기 탑승부터 애로사항은 있었지만, 여행 내내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후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 도착한 제주도는 20년도 훌쩍 넘은 신혼여행 때의 풍광과 느낌을 그대로 선물하며 새파랗게 반긴다. 이내 추억에 잠긴다. 도보로도 택시로도 단체 여행으로도 다녔기에 이번에는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매우 편리하게 이동하며 즐길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차 반납 시 확인하니, 500km 이상을 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번 여행에 기여도가 매우 높았다.

늦은 출발이어서인지 공항에서 20분 거리의 펜션에 짐을 풀고 보니 어느새 어둑해져 인근 식당으로 가 제주 돼지의 두터운 육즙을 만끽하며 가족 모두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첫날밤을 즐겁게 보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애월 해안도로가 태평양을 품은 푸르디푸른 바다를 끼고 돌며 우릴 안내하였다.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풍광을 즐겼다. 길가 망고레이 카페와 봄날 게스트하우스에도 들르고 협재 해변에 이르러 소라와 모래 속삭임을 함께하였다. 아열대 식물들이 살아 숨 쉬는 한림공원에서 아이들 손잡고 많은 시간 함께하며 제주를 만끽하는 시간 보내며 즐거웠다. 강아지들도 마냥 즐기며 함께하니 더 좋다. 잘 꾸며진 공원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제주의 향토색 짙은 음식인 오분작 뚝배기의 얼큰함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차향이 생각나 오설록으로 향했다. 그곳은 넓디넓은 차밭이 제주의 맑은 기운을 받으며 파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으로 온통 무지개색으로 꾸며져 있다는 더럭 분교에 들러 보았다. 이곳에서 뛰노는 아이들 꿈은 온통 무지개빛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아이들도 아내도 이내 동심어린 얼굴이 되어 바라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문시장에 들렀다. 엄청나게 큰 규모에 놀랐다. 제주산 여러 종류 회와 먹거리를 사서 숙소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 피우며 맛나게 먹으니 여행 둘째 날도 행복하게 내린다. 아내의 여행코스 선택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여러 곳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억새가 자유로이 춤추는 산굼부리를 시작으로 여행 셋째 날을 시작했다. 바람에 너울대는 억새에 마음을 실으니 자유와 평화가 내 마음에서 일렁인다. 한 점 바람이 되어본다. 그 마음 고스란히 지니고 제주의 또 다른 섬 우도로 향했다. 조그만 섬이 참으로 정갈하게 바다에 떠 있다. 이곳의 맛 집이라는 곳에 들러니 한치볶음과 한라산 볶음밥을 추천한다. 맛보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식이다. 꾸민 이야기를 전하는 종업원이 사뭇 진지하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겠단다. 아내와 강아지 둘과 함께 우도봉을 올랐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바람이 거센데다 두 꼬맹이를 아내 혼자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합류하여 우도를 휘돌아 다음 행선지인 ‘섭지코지’에 가기 위해 서귀포로 향하는 배에 차를 실었다. 섭지코지의 풍광은 실로 장관이었다. 고향 거제의 ‘바람의 언덕’을 떠올리게 하였다. 모두 어울려 한 시간가량을 거닐며 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하며 즐겼다. 그곳에서 맞은 일몰 광경은 지금도 붉게 남아있다. 사흘째는 숙소를 서귀포에 정했다. 아이들도 강행군에 조금은 지친 듯했다. 우도 특산품이라는 땅콩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시간을 나누는데 아내가 인근의 세연교 야경을 구경 가자 한다. 큰아이와 아내만 밤 데이트를 위해 나가고 작은아이와 숙소에 남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큰아이와 달리 작은 녀석은 곧잘 술잔을 받는다. 술 예절을 말하며 흔쾌히 함께 하였다.

제주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숙소에서 한라산이 보였다. 하얀 눈 모자를 쓴 한라산 봉우리가 경이롭다. 사진기에 담았다. 아침을 먹고 나니 큰 아이가 ‘서연의 집’에 가자고 한다.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라며 가고 싶어 한다. 영상으로 보았던 곳에 직접 가 그들과 함께하는 재미가 좋았다. 그곳의 풍광도 자못 뛰어났다. 돈네코의 원앙폭포와 자연을 그대로 살려 레저 휴양시설로 꾸며진 쇠소깍을 거쳐 이중섭 거리로 향하였다. 쇠소깍의 명물인 천혜향 주스가 가는 내내 입안을 매료시킨다. 천재 화가 이중섭이 제주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것을 기념하여 조성한 거리라 한다. 이색적인 제주 정취와 무척이나 어울렸다. 꽤 오래 작품들과 어울리며 그의 침묵의 시간을 경험하여 좋았다. 비행기 시간을 오후 늦은 시간으로 미루고 여유롭게 제주와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찾아낸 맛 집인 제주산 돼지 두루치기로 이름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맛있는 빵집에서 간식을 준비하여 ‘신비의 도로’에 들러 맛나게 먹으며 여행을 갈무리하였다.

사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여행이다. 한 걸음 물러나 내 삶을 밖에서 담담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를 건넨다. 몇 날을 계획하고 떠난 이번 여행이기에 모든 시간이 충만하게 채워졌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본인의 몫만큼만 만나고, 느끼고 남는 것이리라. 나는 내가 바다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이번 여행에서도 느꼈다. 낯선 길에서 훈훈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은 바다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든 생각일 것이다. 모든 볼거리, 먹거리도 좋았다. 내 가슴에 내려앉은 푸른 제주별의 사랑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이 또한 푸른 바다와 함께하였기에 그럴 것이다. 좋은 기운으로,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돌아오니 마냥 기쁘다. 마음엔 사랑과 추억이 가득 담겨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모든 가족과 함께한 첫 여행이라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마도 가족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가족여행을 계획하리라 다짐한다. 조금은 지친 몸으로 집에 도착하니, 작은 아이 대학 합격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쁜 마음이 된다.

둘러앉았다. 2월쯤에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라고 큰 아이에게 넌지시 일렀다. 형제가 손잡고 여행하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마도 크나큰 세계를 그리며 가슴이 마냥 설렐 것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부모 사랑이라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기뻐한다. 덩달아 기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기에 사는 동안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해야 할 것이다. 몽과 뽀야가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