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락조우다.”
“어데, 빨락조우지.”
고교동창들의 번개모임에서 동무들 간 실랑이가 한창이다. 사탕을 싼 비닐을 어릴 때 그리 불렀다고 두 패로 갈려 웃음과 함께 대치한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증거 확보 후 다시 겨루자며 휴전을 하였다. 한바탕 왁자지껄 다투고 나면 자리는 무르익어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고향에 앉아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냥 즐거운 시간이다.

어릴 적, 겨우 몇 날을 서울에 다녀온 동네 형이 어쭙잖게 말끝만 올리며 도회지 사람 흉내를 내며 우쭐해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엔 부러워도 하였던 것 같다. 필자도 삼 년여를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표준어를 익히며 살았지만, 부산으로 내려온 그 날부터 경상도 말로 회귀하였다. 평소엔 그다지 심한 사투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고향 동무들 만나면 정겨운 육두문자와 아울러 어릴 적 함께했던 사투리가 작렬한다. 그러면 왠지 더 정겹고 반가움이 더하는듯하여 좋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남달리 정 많고 자주 가슴앓이를 하던 고향이 이북인 친구 아버지가 생각난다. 친구는 고향에 가시지 못하는 아버지께 곧잘 이북사투리를 흉내 내며 위로를 해 드린다며 선하게 웃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동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엷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사투리에는 추억이 담겨있고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담겨있는 듯하다. 지금은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며 그리던 이들과 정겨운 사투리로 이야기 나누고 있을 것이다.

고향 친구 중에는 유달리 사투리를 정감 있게 사용해 좌중을 훈훈하게 이끄는 동무가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도 걸쭉한 사투리를 느릿하게 앞세우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경상도 할머니와 서울 할머니가 끝말잇기를 하게 되었단다.
서울 할머니 : 타조
경상도 할머니 : 조~오 쪼가리~(종이쪽지)
서울 할머니 : 단어는 한 개만 사용해야 해요.
경상도 할머니 : 알았슴니더. 다시 해보소.
서울 할머니 : 노을
경상도 할머니 : 을라!!!(아이)
서울 할머니 : 집어치워!
경상도 할머니 : 다시
서울 할머니 : 우비
경상도 할머니: 비른빡(벽)
서울 할머니 : ?!
서울 할머니 : 내숭
경상도 할머니: 숭터(흉터)
서울 할머니 : ?!
서울 할머니 : 미소
경상도 할머니 : 소케뭉티
서울 할머니 : ?!
친구 말에 귀 기울이던 우리는 그만 배를 잡고 웃는다. 다들 경상도 사투리를 아는 동무들이라 숨이 넘어간다.

필자가 유년을 보낸 곳이 거제도이니 이곳 부산 사투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거부감 없이 언어생활을 즐긴다. 정겹다. 우리가 두루 쓰는 말은 표준어지만 정이 담긴 언어는 사투리다. 사투리는 지역마다 삶의 애환이 서린 토속어인 만큼 정감을 더해준다. 예전 조부모나 부모가 자주 쓰는 말 중에, ‘갱물’, ‘조포’, ‘싼다구’, ‘까꼬막’, ‘돌까리’, ‘도구통’ ‘만대이’, ‘산데미’, ‘억장’ 등 정겨운 사투리가 있었지만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이런 친구에 의해 다시 들으며 그들을 떠올리며 하늘 올려다본다. 순서대로 바닷물, 두부, 얼굴, 오르막, 시멘트, 절구, 꼭대기, 심장을 뜻하는 다른 지역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정감 어린 경상도 사투리다. 이런 사투리가 터져 나오면 서로 따라 하며 이내 어린 날 고향 마을로 우린 돌아간다. 이처럼 사투리는 고향 친구들과 대화에서 사용되어 옛정을 더해 주어 좋다. 또한, 영화나 연극에서도 향토색을 들어내어 극의 사실감을 더하기도 한다. 영화 ‘친구’가 흥행에 성공한 요인 중 하나도 경상도 사투리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힘을 잃고 사라지는 특성이 있기에 사투리의 순기능을 살리려면 널리 사용하고 보존할 필요성이 크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조사한 바로는 부산, 경남 사투리가 정겹고 사나이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애교 만점이라 한다. 말은 지역 특성과 문화의 토대가 된다. 사투리 속에 지역의 모든 것이 담기는 것이다. 말이나 글은 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어떤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어떤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달리 사용되어도 좋을 듯싶다. 지역 간 괴리감을 지닌 사투리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을 다루어 많은 웃음을 주기도 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우스개 이야기가 떠오른다.
경상도 여자와 서울 남자가 소개팅하고 헤어지면서 여자가 마음에 든 남자가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여자가 “은지예~” 라고 해서
“내일 당장이요.” 했더니 “어데예” 하길래 “남산에서요.” “.......”
‘은지예’와 ‘어데예’는 거절의 의사표시임을 모르는 데서 일어난 헤프닝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처럼 사투리를 소재로 하여 웃음을 전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다이다. 해운대, 태종대, 오륙도 그리고 물기 어린 구수한 사투리가 연신 울려 퍼지는 자갈치 시장일 것이다. ‘보이소! 오이소! 사이소!’ 라고 외치는 자갈치시장 축제 표어는 그리하여 정겹다. 생동감이 펄떡거린다. 고향 거제를 떠나 30여 년을 부산에서 살지만 무탈하게 정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바다가 지천이고 경상도 사투리를 함께 하기에 가능했다면 무리한 주장일까. 여행지에서 낯선 말을 들으면 웃으면서도 왠지 어색함을 느낀다. 그러다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를 만나면 금세 동그란 얼굴이 된다. 내 고향 사람이라는 순수한 마음이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인간관계에서 말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말의 표현과 내용에 따라 의사소통에 괴리를 낳고 아울러 우리 삶에 아름다움과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투리는 정녕 우리말이지만 이것이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이니만큼 지역 단위로 계속 발굴하고 보존가치가 있는 사투리는 사전에 실어 오래도록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체계화된 언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희로애락을 전하고 기록한다. 또한, 다른 이의 감정도 공유한다. 언어는 사회 양태와 행보를 같이한다. 이러한 상호관계 속에서 언어는 발전과 도태를 반복한다. 모든 것에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존재한다. 역기능은 보완하고 순기능은 개발,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사투리는 푸대접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통합이 가능하고 질 높은 삶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표준어 사용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 이제는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이다. 표준어뿐 아니라 사투리가 지니는 순기능이나 가치를 두루 찾아내어 우리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고 나아가 같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을 고양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사투리는 세계화 시대에 상실할 수 있는 민족성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도 이바지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처럼 사투리는 여러 순기능을 지닌다.

염려된다. 우리 시대가 끝나면 사투리에 관한 관심이 희미해져 점점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지 말이다. 경상도 사투리의 함축미를 되살린 이야기 중에 이런 것도 있다.
“가가 가가 가가”
“야가 가가 갑니더”
이는 ‘그 아이가 ‘가’ 씨 성을 가진 그 아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부자간 대화이다. 이런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면 당신은 갱상도 촌놈이 확실하다. 나는 촌놈임을 자랑한다. 우리가 사투리를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그 속에 고향 가는 길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멀리 사직야구장에서 들려오는 짧은 외마디 소리가 경상도 사나이의 심장을 뛰게 한다.
‘마~’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