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먼 옛날이었어요. 깊은 산 속에 심보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요.
이 심보 사나운 호랑이는 밤이면 밤마다 할머니 집 무우밭에 내려와서는 마구 무우를 뽑아먹는 것이었어요. 할머니는 어떻게 하면 호랑이가 심술궂은 짓을 하지 못하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어요.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의 머리 속에서 번개처럼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리하여 할머니는 무우를 뽑아먹고 있는 호랑이를 만나러 갔어요.  
"호랑이 영감,  무우가 그렇게도 맛이 좋나요?"
그러자 호랑이는, 
"어느 누구 집 무우보다도 할머니의 무우가 제일 맛있소."
하고 대답하였어요.
"호랑이 영감,  무우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이 있답니다."
"무우보다 맛있는 음식이라구요?"
"그래요. 우리 집에 와서 맛있는 팥죽을 잡수시지요?"
호랑이는 팥죽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어리둥절 하였어요.
"팥죽이 뭐지요?"
"팥죽이란 팥으로 죽을 끓인 것이지요.  어찌나 구수한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답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은 호랑이는 금방 군침이 돌았어요. 그러나 그 호랑이도 여간 생각이 깊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만 두겠소.  오늘은 무우를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안되겠소.  내일 저녁에 갈 테니 맛있는 팥죽을 많이많이 끓여 놓기나 하시오."  
"그럼 내일 저녁에는 꼭 우리 집으로 오세요."
"가고 말고요."
이리하여 호랑이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튿날 할머니는 먼저 화로에 이글이글 타는 불부터 마련하였어요. 화롯불을 부엌 뒷곁에 내다 놓았어요. 다음에는 부엌에 있는 물독에다가 빨간 고추가루를 타놓았어요. 그리고 부엌에서 쓰는 행주에는 끝이 뾰족한 바늘을 잔뜩 꽂아 두었어요. 할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어요. 심보 사나운 호랑이가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에요. 다음에는 부엌 어귀에다가 쇠똥을 여기저기 뿌려 두었어요. 퀴퀴한 쇠똥 냄새가 풍겼지만 할머니는 꾹 참으면서 일을 하였어요. 넓은 마당에는 멍석을 깔았어요. 그리고 울타리 안에는 집에서 기르던 조랑말을 외양간에서 끌어내어 매두었어요.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난 할머니의 이마에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맺혔어요.
"어휴,  힘들구나!"
할머니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어요. 할머니는 시치미 딱 잡아떼고 방안에 들어가서 바느질을 하는 척 하고 있었어요. 밤이 제법 깊어졌어요. 밤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려 있었어요. 멀리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심보 사나운 호랑이가 우는 소리였어요.

얼마 후,  호랑이가 할머니 집에 나타났어요.
"어흥!"   호랑이는 자기가 왔다는 것을 알렸어요.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호랑이를 반갑게 맞이하였어요.
"어서 오세요.   호랑이 영감님,  어서 안으로 드시잖구요?"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어요.
"참,  그렇군요. 오늘 밤은 날씨가 제법 차군요. 화롯불이나 좀 쬐어야겠소."
"그렇게 하시구려. 화롯불의 불이 활활 타고 있으니까요."
호랑이는 화로 쪽으로 걸어갔어요. 그러나 화롯불은 꺼져 있었어요. 이상하게 생각한 호랑이는 할머니에게 역정을 부렸어요.
"할머니는 참 이상하구료?"
"뭐가요?"
"화롯불에 불이 없잖소?"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아까 이글이글 타는 숯을 잔뜩 집어 넣었는데요?"
"그럼,  내가 입으로 불면 불이 피겠구려?"
"그렇지요.   힘껏 한번 불어 보세요."
호랑이는 화로 속을 보고 있는 힘을 다해서 확 불었어요.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화로 속의 재들이 한꺼번에 날려 호랑이의 얼굴에 붙어 버렸어요. 호랑이의 눈, 코, 입은 재투성이었어요. 호랑이는 앞을 볼 수가 없었어요.  
"아이구 눈이야!"
호랑이는 두 손으로 부지런히 눈을 비볐어요. 그러나 그럴수록 눈을 더욱 따갑기만 하였어요.
"할머니, 내 눈에 재가 들어갔는데 어떻하면 좋지요?"
"어머나, 이 일을 어떻하지요?  그럼 빨리 부엌 안으로 들어가서 물독의 물로 씻어 내세요."
호랑이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부엌 안으로 들어갔어요. 손으로 더듬어봤더니 물독이 있었어요. 호랑이는 물독의 고추가루 물로 눈을 씻었어요.
"아이구 따가와라!"
호랑이는 부엌에서 팔딱팔딱 뛰었어요.
"할머니 더 따가와요. 이 일을 어떻하면 좋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행주로 닦아내는 수밖에 없어요."
"행주가 어디 있지요?"
"바로 뒤에 있는 선반 위를 만져봐요. 행주가 있을 테니......."
할머니는 마음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았어요. 호랑이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더듬거리며 선반 위를 더듬어 봤어요. 행주가 손에 잡혔어요.   호랑이는 다짜고짜 바늘 꽂힌 행주로 눈을 문질렀어요.
"아이구,  내 눈이야!"
호랑이는 눈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호랑이는 그제서야 할머니에게 속은 것을 눈치챘어요. 
"할머니, 나를 속였지요?"
"속이다뇨? 난 호랑이 영감에게 맛있는 팥죽을 대접하려고 했는데요?"
호랑이는 할머니와 말다툼을 해봤자 본전도 못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안 되겠다. 도망을 쳐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호랑이는 엉엉 울면서 부엌을 뛰쳐 나갔어요.
"아이구야!"
호랑이는 그만 쇠똥에 미끄러져 크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어요.
"어흥!  아이구 내 엉덩이야!"
호랑이는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일어나려다가 그만 멍석 위에 쓰러졌어요.
"아이구 내 코야!"
콧방아를 찧은 호랑이는 코를 어루만졌어요. 그런데 호랑이가 워낙 세게 쓰러진 탓으로 멍석에 돌돌 감겨버리고 말았어요.
"아이구 나 죽네!"
호랑이는 죽겠다고 큰 소리로 외쳐댔어요. 그러나 이런 호랑이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쪼르르 달려나와 멍석 속에 들어있는 호랑이를 번쩍 안아 조랑말 등에 올려놓았어요. 고삐를 풀자 조랑말은 호랑이를 싣고 마구 뛰기 시작했어요.  
"힛히힝.....  야아,  신난다!"
조랑말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요. 호랑이는 어지러워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아이구,  날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야?"
"힛히힝.....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
"뭐 좋은 곳?"
"그래,  이 심보 사나운 호랑이놈아 조금만 기다려라!"
조랑말은 이렇게 말하면서 마구 달려갔어요. 조랑말은 한 참 달려가다가 벼랑 앞에서 멈추었어요.  
"호랑이놈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에 다 왔다."
"정말이냐?"  
"그래 정말이다."
"그럼 나를 좀 내려다오."  
"오냐, 내려 주마."
조랑말은 호랑이를 벼랑 아래로 떨어드려 버렸어요.
"심보 사나운 소랑이놈아,  혼 좀 나봐라!"  
"아이구 나 죽네!"
호랑이의 소리가 멀리까지 메아리쳐 나갔어요.  
"살려 줘요. 살려 줘!"
그러나 호랑이의 외침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어요. 이렇게 해서 심보 사나운 호랑이는 죽고 말았어요.

자료제공: 다음카페<동화마을>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