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목욕통(미얀마 옛 이야기)

옛날, 미얀마라는 더운 나라에서 생긴 이야기란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값진 짐승은 코끼리였어. 임금님이나 큰 부자들만 코끼리를 갖고 있었지.

사람들은 코끼리한테 옷도 입히고, 커다란 머리 위에 멋진 모자도 씌워 주었어.

물론 이 나라의 임금님도 스물아홉 마리나 되는 많은 코끼리를 거느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임금님은 늘 찌푸린 얼굴이었어.

왜냐고? 그건 그 많은 코끼리 가운데 ‘흰 코끼리’가 단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야.

“이웃 나라 임금도 흰 코끼리를 세 마리나 가지고 있는데, 나처럼 훌륭한 임금한테 단 한 마리도 없다니! 정말 말도 안 돼”

하얀 우윳빛이 도는 흰 코끼리는 아주 드물어. 백 마리에 하나, 아니 천 마리에 하나 나올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온 나라에 흰 코끼리를 찾는다는 방까지 붙였지. “흰 코끼리를 잡아 오는 사람에게 금화 일만 냥을 상으로 내리겠노라!”

그런데 말이야, 이 나라에는 그릇을 잘 만드는 ‘포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단다.

작은 물 그릇부터 커다란 목욕통까지 못 만드는 게 없었지.

이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포바가 마는 그릇을 사다가 썼어.

포바는 그릇 만드는 재주 하나로 이름도 날리고 큰돈도 벌었단다.

하지만 포바도 늘 찌푸린 얼굴이었어.

그건 바로 옆집에 사는 세탁소 주인 ‘우카’때문이었지.

우카는 나라 안에서 빨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었어.

우카의 세탁소에 맡기면 아무리 더러운 빨래라도 흰 구름처럼 새하애져서 돌아왔거든.

포바는 우카가 자기보다 더 큰 집에 사는게 못마땅했어. 그래서 날마다 이런 궁리를 했지.

 ‘어떡하면 우카를 폭삭 망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의 행차가 포바와 우카가 사는 마을을 지난다는 소문이 들렸어.

포바는 길가에 나가 행차를 기다렸지.

그리고 임금님이 탄 코끼리가 다가오자, 그 앞에서 넙죽 엎드려 이렇게 말해 버린 거야.

“임금님! 임금님께서 흰 코끼리를 가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 그래? 그게 정말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우리 마을에 사는 우카에게 그 일을 맡겨 보십시오.

우카는 어떤 물건이라도 하얗게 빨아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포바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임금님은 왕궁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장 우카를 불러들였어.

“네가 그렇게 빨래를 잘한다고? 왕궁에 있는 코끼리 가운데 가장 큰 놈을 네게 맡길 터이니, 보름안에 하얗게 빨아 오너라. 내 명령을 어기면 큰 벌을 받을 줄 알아라!”

우카는 벌벌벌 떨면서 어쩔줄을 몰라 했어.

세상에 옷감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있는 코끼리를 하얗게 빨라는 거야?

그 때 마침 우카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코끼리를 하얗게 목욕 시키려면 코끼리가 들어갈 커다란 목욕통이 필요합니다. 목욕통만 마련된다면 코끼리를 하얗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누가 그 목욕통을 만들 수 있단 말이냐?”

“포바가 그릇 만들기로는 나라 안에서 으뜸이니 그에게 코끼리 목욕통을 만들라 하십시오.”

그래서 포바도 임금님 앞으로 불려 갔지.

임금님은 포바더러 코끼리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목욕통을 만들라고 명령했어.

포바는 눈앞이 캄캄해졌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지 뭐야.

하지만 포바도 용케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냈어.
 
“우카에게 코끼리를 강으로 데려가서 목욕시키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곁에 있던 우카가 맞받아쳤어.

“강물은 계속 흐르기 때문에 비누 거품이 씻겨 내려가 코끼리를 목욕 시킬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강물은 너무 차가워서 코끼리의 때를 불릴 수도 없지요.”

임금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우카의 말이 옳도다. 포바는 얼른 돌아가서 코끼리목욕통을 만들도록 하여라.”

집으로 돌아온 포바는 아내와 아홉 명이나 되는 아들딸을 죄다 불러 모았어.

포바네 식구들은 사흘 밤낮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하고 꼬박 일을 했단다.

진흙을 반죽하고, 그걸로 목욕통을 만드느라 모두들 기진맥진했지.

아무튼 포바는 코끼리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갈 수있는 커다란 목욕통을 만들어 냈어.

그 목욕통은 포바가 살고 있는 집보다도 훨씬 더 컸단다.

왕의 군사 수십명이 그 목욕통을 왕궁 마당으로 옮겼어.

목욕통에는 물이 가득 채워졌지.

목욕통 밑에 장작불을 지피고 두 시간쯤 지나니까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어.

우카는 열두 포대나 되는 비누 가루를 통에 붓고 긴 막대기로 휘휘 저었어.

“임금님,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우카의 말을 들은 임금님은 얼굴가득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    

“자, 이제 조련사는 코끼리를 목욕통 안으로 들어가게 하라!”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코끼리가 앞발을 목욕통 안에 딛자마자 바닥이 쩌억 갈라지더니, 목욕통이 박살 나 버렸어. 눈 깜짝할 사이에 왕궁 마당은 물바다가 되었지.

그러자 우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 

 “임금님, 포바가 만든 목욕통이 너무 약한 모양입니다. 좀 더 튼튼하게 만들라 하십시오.”

임금님은 우카의 말대로 포바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어.

집으로 돌아온 포바는 다시 식구들을 불러 모았지.

이번에는 꼬박 닷새동안 일을 했어.

그래 가지고 아주 두껍고 튼튼한 목욕통을 만들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도 다른 문제가 생겼단다.

목욕통 바닥이 너무 두꺼워서 아무리 불을 때도 물이 데워지질 않는 거야.

대신에 뜨거운 물을 아무리 갖다 부어도 큰 목욕통을 채우다 보면 식기 일쑤였고.

“임금님, 이렇게 물이 미지근해서는 코끼리의 때를 벗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포바에게 버럭 화를 냈어.
 
“네 이놈! 나라 안에서 가장 그릇을 잘 만든다는 녀석이 코끼리 목욕통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단 말이냐? 어서 다시 만들어 오너라.”

이렇게 해서 포바는 모두 일곱 번이나 코끼리 목욕통을 만들었어.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얇으면 깨지고, 두꺼우면 물이 데워지질 않고……  도무지 뾰족한 수가 없었지.

“여보, 그동안 코끼리 목욕통을 만드느라 우리 집은 알거지가 되고 말았어요. 이제 우린 무얼 먹고 살아요?” 

“휴,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으니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그까짓 먹는 게 무슨 걱정이란 말이오.”

포바네 식구들은 너무 지치고 기운이 없어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단다.

그런데 하늘이 포바를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흰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났지 뭐야.

마침 숲에서 놀던 포바와 우카의 아들들이 흰 코끼리를 보았어.

우카의 아들은 코끼리를 지키고, 포바의 아들은 후다닥 왕궁으로 달려가 알렸지.

임금님은 곧장 병사들을 보내 흰 코끼리를 잡아오게 했고. 진짜 흰 코끼리를 갖게 된 임금님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겠니?

그 바람에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말았지.

포바한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어.

임금님은 포바와 우카의 두 아들한테 금화 일만냥을 상으로 내렸어.

두 집은 그것을 사이좋게 반씩 나누어 가졌지. 그 뒤로 포바와 우카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했대.

“하늘이시여, 제발 임금님의 흰 코끼리가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자료제공: 다음카페<송송송 솟아나는 이야기샘>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