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간간히 불어오는 모래 언덕에 무지개 꽃이 피어 있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끔씩 이 모래 언덕을 오르내지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시원한 샘물이 솟아오르는 오아시스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
그러나 무지개 꽃은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아름다운 꽃잎들을 피워 올렸습니다.
아침 햇살에 모래 언덕이 금빛으로 물들 무렵 하얀 양떼를 앞세우고 양치기 아저씨가 무지개 꽃을 찾아왔습니다.
"안녕, 무지개 꽃?"
"안녕하세요, 양치기 아저씨! 오늘은 너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왔어. 들어줄 수 있겠니?"
"그럼요, 어서 이야기 해보세요."

양치기 아저씨는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무지개 꽃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다. 우리는 보름 후면 결혼 을 하게 되지. 하지만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양치기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도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지금 나에겐 황량한 모래 벌판과 배고픔에 지친 양떼밖에 없는 걸"
"그렇지만 지금 아저씨에겐 그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잖아 요."
"그건 그래." 무지개 꽃은 모래 언덕 위로 빨갛게 떠있는 태양보다 더 빨간 꽃잎을 살짝 흔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습니다.

무지개 꽃의 말에 신이 난 아저씨의 얼굴도 무지개 꽃잎처 럼 주황 빛깔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지개 꽃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사랑 을 약속하는 징표로 반지 하나 꼭 해주고 싶은데 어쩌면 좋지?"
"걱정마세요. 양치기 아저씨. 저녁 노을이 질 때면 나의 꽃잎이 노랗게 물들거든요.
그때 나의 꽃잎을 따서 반지를 만드세요. 노란 무지개꽃 반지를 말이예요."
"정말 멋진 생각이야.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그 아름다운 무지개 꽃반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무지개꽃아, 정말 고마워." 양치기 아저씨는 무지개 꽃에 입을 한 번 맞춘 후 오아시스의 나뭇잎보다 더 싱싱한 초록 빛깔 희망을 안고 총총총 길을 떠났습니다.

양치기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하늘보다 더욱 파랗게 미소를 짓던 무지개 꽃은 갑자기 뿌리 끝 어딘가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게 뭐지?" "내 이름은 사랑이랍니다.
무지개 꽃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생긴 거예요."
그런데 사랑의 빛깔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어? 이상하다. 사랑 빛깔이 왜 비오는 밤 하늘처럼 어두 운 남색일까?"
"놀라지 말아요. 무지개 꽃. 모두들 사랑은 화사한 핑크빛 일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주 어두운 남색이 랍니다."
"왜 그렇죠?"
"왜냐하면요, 사랑은 상대방의 부족함을 다 받아들여야 하 니까요.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려면 밤하늘 처럼 진한 남색을 지녀야 하지 요."
"응, 그렇구나" 무지개 꽃은 남색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줄기를 흔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연보라빛 사랑만 찾고 있지만 가장 힘들때 말 없이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사랑, 차 한잔에 마른 빵 한 조각도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사랑, 창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랑을 누구나 누렸으면 좋겠다."

무지개 꽃이 피어있는 모래 언덕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였습니다.


자료제공: 다음카페<동화마을>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