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옛날 어느 곳에 돈깨나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어. 조상이 든든하여 세전재물을

넉넉히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횡재를 한 것도 아니야. 맨손으로 살림

을 일군 거지. 밤낮으로 억척스럽게 일해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해서 제법 살 만

하게 된 거란 말이야.

하루는 이 사람한테 웬 낯선 장사꾼이 찾아왔어.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돈 삼천

냥을 꾸어 달라네. 주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고 말았지. 생면부지의 뜨

내기 장사꾼이 아무런 보증도 없이 큰 돈을 꾸어 달라니 말이나 되나. 그런데 장

사꾼은 정색을 하고 주섬 주섬 보따리를 풀더니 주먹만한 금덩어리를 턱 꺼내 놓

네.

보시다시피 이건 금덩어리입니다. 돈 몇천 냥 쓰려고 이 귀한 물건을 팔아 치

울 수는 없고, 당장 돈 쓸 일은 바쁘고 해서 그러니 이 금덩어리를 맡고 대신 돈

을 좀 꾸어 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경우에 없는 부탁은 아니란 말이야. 그만한 금덩어리라면 줄잡아도

몇만 냥어치는 될 터이니 담보로서야 그만 아닌가. 주인이 마음을 턱 놓고 돈 삼

천 냥을 꾸어 줬어. 아무 날까지 이자를 붙여서 갚겠다는 다짐을 받아 놓고서.

그래 놓고 며칠이 지났어. 마침 금광을 하는 조카가 지나는 길에 들렀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 금덩어리를 내보였지. 며칠 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노라

하고서 말이야. 그런데 조카가 금덩어리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만 기겁을

하네.

아이고, 아저씨. 속아도 크게 속으셨습니다. 이건 진짜 금덩어리가 아닙니다. 납

덩이에 금박을 입힌 거예요.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금덩어리 거죽을 슬슬 긁으니 얇은 금박이 벗겨져 나오고

시커먼 납덩이가 보이거든.

이런 건 값으로 치자면 서 푼어치도 안 됩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온몸에 맥이 탁 풀리면서 앞이 캄캄해져. 손이 부르트도록 일

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이렇게 허망하게 떼이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도 억울하고 원통해서 그만 길로 몸져 눕고 말았어.

그런데 이 집 주인에게는 여남은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었어. 이 아들이 보니

까 제 아버지가 갑자기 드러누워 끙끙 앓거든. 틀림없이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신

가 보다 하고 연유를 물어 보았단 말이야. 그러니 여차여차해서 그런다고 하거든.

아들이 잠깐 생각하더니,

아버지, 아무 염려 마세요. 돈 삼천 냥을 이자까지 붙여서 받아 낼 궁리가 있습

니다.

하고서 이러쿵 저러쿵 소상하게 가르쳐 줘. 그 말을 듣더니 아버지가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나네.

그 날부터 아버지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 다니는 거야. 뉘 집에 잔치가

있다, 뉘 집에 초상이 났다 하면 멀거나 가깝거나 찾아가고, 농사꾼이 들일을 하

다가 쉬는 데도 찾아가고, 장사꾼이 들끓는 장터에도 찾아가. 가서는 다짜고짜 울

음부터 내놓지. 사람들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으면 가슴을 치면서 하소연을

해.

글쎄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얼마 전에 낯선 손님이 와서 금덩어리를 맡기고

돈 삼천 냥을 꾸어 갔는데, 그만 그 금덩어리를 잃어버렸지 뭐요. 이제 금덩어리

임자가 찾아와서 금덩어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무슨 수로 그걸 물어 준단 말이오.

내 재산을 몽땅 주어도 모자랄 테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든지 혀를 차며 참 딱하게 되었다 하지.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이렇게 소문을 쫘하게 내놓으니 어떻게 되겠어? 틀림없이 돈 꾸어

간 장사꾼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갈 게 아니야?

이렇게 여기저기 소문을 내놓고 집에 와서 기다리는 거지. 아니나다를까, 며칠

안 있어 돈 꾸어 간 장사꾼이 제 발로 나타났어. 돈 삼천 냥에 이자까지 붙여서

딱 갖다 바치면서,

여기 꾸어 쓴 돈과 이자를 가지고 왔으니 제 금덩어리는 돌려 주시지요.

하거든. 제 궁리로는 이제 횡재할 일만 남았구나 싶은지 아주 의기양양이야. 주

인은 천천히 돈을 받아서 틀림없는지 세어 보는구나. 장사꾼은 아주 신바람이 나

서,

어서 금덩어리를 돌려주셔야지요.

하고 채근이 득달같지.

아무렴 돌려드리고말고요.

하고 주인이 장롱에서 금덩어리를 꺼내어 장사꾼 앞에 턱 내놓으니 이놈이 아

주 새파랗게 질려서 허겁지겁 도망가더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다는군. 하하.

<<제공: 다음카페-송송 솟아나는 이야기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