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달팽이와 너무 먼 채소밭

                                                                      오지카 오쇼니크 글, 그림/ 김영선 옮김                        토마토 하우스

  큰 길가 커다란 잎 그늘 아래 회색 돌멩이 한 개가 있었어요. 그 돌멩이 뒤에 달팽이 브라디미르가 있었어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블라디미르는 파릇파릇하고 아삭아삭한 상추가 몹시 먹고 싶었지요. 그래서 채소밭에 가려고 길을
 
나섰답니다.

  채소밭은 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그만 가면 있었지만 달팽이에게는 세상 끝처럼 먼 곳이었지요. 블라디미르는 꼼지락꼼

지락 쉬지 않고 기어갔어요. 한 시간 동안이나요. 하지만 아직도 집 앞 회색 돌멩이가 보일 만큼 밖에 못 갔어요. 블라디미르

는 너무 피곤해서 잠깐 쉬기로 했어요. 그리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지요.

  “맞아, 누가 지나가면 태워 달라고 하는 거야!”

바로 그 때, 고슴도치 에곤이 지나가는 게 보였어요.

  “안녕, 에곤!” 블라디미르가 반갑게 인사했어요.

  “이게 누구야? 블라디미르잖아. 웬일로 이 머리까지 왔어?” 에곤이 궁금해서 물었어요.

  “아침 먹으러 채소밭에 가는 중이야. 나 좀 태워 줄래?”

  “좋아, 어서 올라타!” 블라디미르는 에곤의 등에 올라탔어요. 둘은 함께 길을 나섰지요.

  “아야!!”

  블라디미르는 이내 내리고 싶어졌어요. 몹시 불편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좀 편안할까 싶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기도 했

지만 소용없었어요. 고슴도치는 온몸에 가시가 있어서 어떻게 해도 아프기만 했어요. 참다못해 블라디미르가 말했어요.

  “에곤 안 되겠어. 가시 때문에 너무 아파. 나 내려 주고 그냥 가. 누가 또 지나가겠지.”

  그러자 에곤이 흔쾌히 대답했어요. “그래? 그러지 뭐.”

  에곤은 블라디미르를 내려 주고 볼 일을 본다며 어디론가 갔어요.

  블라디미르는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길가에 앉아 있었어요. 누가 또 안 지나가나 하면서요. 마침 거북이 아가사 할머니가 어

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지요.

  “안녕, 아가사 할머니. 어디 가세요?” 브라디미르는 아가사 할머니를 보자 정말 기뻤어요.

  “이 길 저 위쪽에. 그런데 넌 어디 가니?” 아가사 할머니가 우물우물 말했어요.

  “저도 거기 가요. 이 길 저 위쪽에.” 블라디미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요.

  “할머니 등에 저를 좀 태워 주시면 안 될까요?”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대신 아무 말도 하지 마. 생각할 게 있으니까.”

아가사 할머니는 마지못해 블라디미르를 등에 태웠어요. 둘은 함께 길을 나섰지요. 아가사 할머니 등에 올라탄 블라디미르는

몹시 심심했어요. 그래서 깜빡 잠이 들었지요. 잠에서 깬 블라디미르는 깜짝 놀랐어요. 주변 경치가 잠들기 전이랑 거의 똑같

았거든요 아가사 할머니는 너무 느렸어요.

  “아가사 할머니…….” 블라디미르가 말했어요.

  “조용히 있기로 했잖아!” 아가사 할머니가 뾰로통하게 대꾸를 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너무 느려서 가다가 굶어주겠어요. 나 혼자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아가사 할머니는 참을성이 없네

어떠네 하며  뭐라고 웅얼웅얼거리더니 블라디미르를 내려 줬지요. 아가사 할머니는 투덜거리면서 느릿느릿 풀숲으로 갔어

요.

  “잘 가세요!” 블라디미르가 뒤에서 소리쳤어요. 하지만 생각에 푹 빠져 버린 할머니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답니다.

  블라디미르는 이번에도 길가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리 크레타가 폴짝폴짝 뛰면서 나타났어요.

  “안녕, 크레타!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니?” 블라디미르가 큰 소리로 말하자 크레타가 내려다보며 말했어요.

  “어, 블라디미르구나. 네가 이 멀리까지 웬일이야?”

  “배가 고파서 채소밭에 가려고.” 블라디미르는 ‘아침 먹으러’라고 하려다가 하늘 꼭대기에 뜬 해를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점심 먹으러!” 그러자 블라디미르가 부탁도 하기 전에 크레타가 말했어요.

  “내 등에 올라타. 금방 데려다 줄게.” 둘은 함께 길을 나섰지요.

  크레타는 제일 키가 큰 풀보다도 높이 뛰었지요. 폴짝, 폴짝, 포올짝! 높이 그리고 멀리! 블라디미르는 출렁거려서 멀미가 날
것 같았어요.

  “크, 크레, 크레타! 잠깐만! 나 토할 것 같아.” 블라디미르는 겨우겨우 말을 이었어요.

  “네 등에 타는 건 정말 끔찍해!  흔들리고 부딪히고, 멍들고.”

  크레타는 투덜거리는 블라디미르를 달래려고 했지요

  “이런 이런. 개구리가 폴짝폴짝 뛴다는 거 몰랐어?”

  “알아, 안다고. 하지만 어쨌든 너하고는 더 못 가겠어. 여기서 내려 줘.”

  “그래, 네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줄게.”

  크레타는 블라디미르를 내려놓고 웅덩이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어요.

  ‘오늘은 상추 못 먹겠네.’ 블라디미르는 채소밭에 가는 걸 포기하려고 했어요. 이 때 새 한 마리가 쌩하고 다가왔어요.

  “하하, 내 점심이 여기 있군.” 참새 보리스였지요.

  “야, 내가 누군지 안 보이니? 나야 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가 쏘아붙이자 보리스는 당황해하며 말했어요.

  “이런, 블라디미르구나! 진작 말하지.”

  “지금 말하고 있잖아. 이 욕심쟁이 먹보 새야!”

하마터면 보리스에게 먹힐 뻔한 블라디미르가 씩씩거렸어요.

  “미안해. 널 놀라게 했으니, 네가 해 달라는 거 하나 해 줄게.”

  보리스가 이렇게 말하자 블라디미르는 화가 조금 풀렸어요.

  “좋아. 그런데 먼저 이걸 알아 둬. 달팽이는 그렇게 쉽게 놀라지 않아. 그리고 나를 채소밭에 데려다 줘.”

  “그거야 식은 죽 먹기지. 올라타.”

  날개를 내밀며 보리스가 말했어요. 블라디미르가 올라타자 보리스는 하늘로 금세 날아올랐어요. 그러고는 구름 사이를 이리

저리 날아다녔지요. 블라디미르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보리스 등에 착 달라붙어 눈을 꼭 감았어요. 하

지만 아무 소용없었지요. 블라디미르는 아래로 뚝 떨어지고 말았어요. 블라디미르는 달리고 있는 차 지붕 위에 떨어졌어요.

귓가에 쌩쌩 바람 소리가 들렸지요.

  ‘우아, 이것 봐라.’ 블라디미르는 생각했어요.

  ‘진짜 빠르다. 난 세상에서 제일 빠른 달팽이야!’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우쭐한 기분에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그만 바람에 훌렁 날아가 버리고 말았어요. 블라디미르는 먼지

속으로 굴러 떨어져 길가에 쫙 뻗었어요.

  “으으”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아, 아야!”

  블라디미르는 달팽이집이 안 깨진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금방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세상에 자기

집 앞 회색 돌멩이가 보이지 뭐예요? 블라디미르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슬슬 오기가

생기면서 다시 채소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요. 블라디미르는 다시 꼼지락

꼼지락 기어갔어요. 그리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지요. 채소밭에요!

  블라디미르는 곧장 상추를 심어 놓은 곳으로 갔어요. 그러고는 맨 앞에 보이는 상추로 기어 올라갔어요. 그런데 눈 깜빡할

사이에 블라디미르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어요. 대신 와삭와삭 쩝쩝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멀리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요. 저녁으로 상추를 한껏 먹은 블라디미르는 오이 위로 올라갔어요. 그런 다음 기지개를 한 번 쭉 켜고 볼록 튀어나온 배를

톡톡 두드렸어요. 그리고 만족스런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아무리 느려도 열심히 가기만 하면 꽤 멀리 갈 수 있다고!” 

                                                                                   자료제공: 다음카페<송송송 솟아나는 이야기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