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서씨는 자꾸만 눈이 젖었습니다. 바우를 데리고 우시장 가는 길이었습니다. 바우는 가기 싫은지 몇 발자국 못가서 멈췄습니다. 천천히 길섶에 난 풀을 뜯었습니다. 그러다 서씨가 재촉하면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두어 걸음 가다가는 또 딴청을 부렸습니다. 그럴수록 서씨의 가슴도 먹먹해졌습니다.

“워, 네놈도 뭘 아는 게로구나.”

자꾸만 멈춰서는 바우에게 서씨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바우의 어깨 살이 축 쳐져서 뼈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등뼈는 낙타처럼 뼈가 불룩했습니다. 말랑하고 핏기 없는 살들이 배 언저리까지 내려와 출렁거렸습니다. 숨을 헐떡거리는 입 주위엔 하얀 거품이 끓었습니다.

“하긴, 자그마치 30년인데...환갑, 진갑 다 지났구나.”

서씨가 바우를 보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바우가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바우의 꼬리에 맞은 서씨의 누더기 바지에서 흙먼지가 일었습니다.

우시장은 서씨가 사는 곳에서 두어 시간 남짓 걸어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바우와 서씨에게만 그랬습니다. 건강한 소와 사람이라면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그날은 바우가 늑장을 부렸고 서씨도 심하게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는 소와 사람 같았습니다. 바우와 서씨 모두 지쳐 우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우시장에 들어서자 황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우가 서씨 집에 처음 온 날은 태어나서 3개월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서씨는 바우를 끔찍이 아꼈습니다. 바우는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논에 나갔습니다. 힘이 좋아서 다른 소의 두 배는 일을 하였습니다. 옆집 문씨는 바우를 볼 때마다 입맛을 다셨습니다.

우시장에 서씨와 같이 나간 날, 바우와 문씨의 소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문씨의 송아지를 서씨가 샀습니다. 문씨는 바우를 샀습니다. 두 사람은 송아지를 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문씨가 보기엔 바우가 마르고 비리비리했습니다. 때문에 서씨의 송아지에 비해 값도 쌌습니다. 문씨는 돌아오는 길에 서씨가 오줌 누는 틈을 타서 송아지를 바꾸어버렸습니다. 서씨는 오래 앓은 눈병 때문에 바뀐 소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가 갑자기 말라보이네 그랴.”

“아, 이 사람아 짐승이라는 게 원래 요렇게 보면 살쪄보이다가도 조렇게 보면 말라보이고 그렇잖나. 사람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잖아, 안 그래?”

문씨의 말을 듣고 서씨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았습니다.

“제길, 내가 그때 괜히 소를 바꿨네.”

우람한 바우를 볼 때마다 문씨는 중얼거렸습니다. 문씨의 소는 일도 못하는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했습니다. 문씨는 몇 년 동안 일을 시켜보다가 울화통이 치밀었습니다. 바우가 일하는 걸 보면 더 그랬습니다. 어느 날 소가 쟁기를 끌고 나가지 못하자 그 길로 우시장에 가서 팔아버렸습니다.

우시장에 도착한 바우와 서씨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늙은 소와 누더기 옷을 입은 노인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젊은 소를 사고파느라 바빴습니다. 서씨는 바우를 우시장 축사의 쇠기둥에 맸습니다. 그런 뒤, 천천히 소장수로 보이는 사람에게 걸어갔습니다.

“소 한 마리 가져왔네.”

서씨가 가래끓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소장수가 서씨를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서씨 영감님 아닙니까. 아직 살아 계셨네.”

황소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소장수가 서씨에게 말했습니다. 서씨는 대답대신 쇠기둥에 매인 바우를 가리켰습니다. 소장수가 바우를 쳐다보았습니다.

“바우 아닙니까. 아이고, 참 내. 저걸 소라고 가져왔습니까.”

소장수가 말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바우를 보고 웃었습니다.

“당신 눈에는 저게 소가 아니고 개로 보이나.”

서씨가 소장수에게 말했습니다. 소장수가 서씨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늙어서 일하기는 틀렸고...고기값은 쳐 드리겠습니다.”

소장수가 말했습니다. 서씨 할아버지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저래 봬도 일 잘한다. 완전 일소라니까.”

서씨가 구부정한 등을 펴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좀 바쁘네요. 고기값 밖에 못해줍니다.”

소장수는 몸을 돌려 다른 소에게 걸어갔습니다. 오래전의 바우처럼 힘 있고 몸집 좋은 소가 거기 있었습니다. 서씨는 바우에게 갔습니다. 바우는 울 힘도 없는 듯 멍하게 우시장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우야, 힘들제?”

서씨가 바우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투박한 손이었습니다. 바우는 서씨의 손길을 느끼고는 짧게 울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뜸해졌습니다. 소를 매어놓고 끼리끼리 짝을 지어 우시장 밑의 국밥집으로 몰려갔습니다. 몇몇은 서씨와 바우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했습니다. 바우와 서씨에게 몇 마디 건네고 돌아서서 쑥덕거렸습니다.

“저 영감님, 말이야. 다 늙은 소를 팔러 왔네? 늙기 전에 팔아야 송아지 값이라도 나오지. 쯔쯧.”

한 사람이 소장수를 바라보며 혀를 찼습니다.

“저 소가 저래 보여도 참 영리한 솝니다. 사람 말을 척척 알아듣지요. 소를 팔러 온 걸 보니 이제 기력이 다 하신 모양이네.”

소장수가 말했습니다. 햇살이 따가웠습니다. 서씨는 봇짐에 가져온 여물을 바우에게 먹였습니다. 바우가 몇 입 먹다 말고 서씨에게 얼굴을 비볐습니다. 서씨는 바우 곁에 앉았습니다. 바우도 따라 앉았습니다. 바우는 앉은 채로 서씨가 집어주는 여물을 받아먹었습니다. 우시장 축사 안에 바우와 서씨만이 정물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간혹 우는 소들이 없다면 시간이 멎은 것 같았습니다. 바우와 서씨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동안 국밥집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면서 소장수가 물었습니다. 서씨가 소장수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이었습니다. 서씨가 바우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함세.”

서씨의 말을 들은 소장수가 가방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그리곤 바우가 묶인 쇠기둥의 매듭을 풀었습니다.

“아버님 생각이 나서 많이 쳐드린 겁니다.”

소장수가 바우를 데리고 가면서 말했습니다. 서씨는 소장수를 따라가는 바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우의 고개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소장수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던 바우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 순간, 바우와 서씨는 서로의 눈을 보았습니다. 바우의 눈에 물기가 비쳤습니다. 우는 것도 같고 웃는 것도 같은 눈이었습니다. 서씨는 몸을 돌렸습니다. 천천히 국밥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곧 쓰러질 것처럼 비척거렸습니다. 서씨의 귀에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바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밥. 육회. 생고기. 천엽.

서씨는 차림표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뭐 드실라우?”

주인아주머니가 김치와 깍두기를 식탁에 놓으며 말했습니다. 서씨는 식탁에 놓인 깍두기를 물끄러니 바라보았습니다. 곰삭은 냄새 때문인지 파리 몇 마리가 깍두기 접시 위에서 윙윙거렸습니다.

“국밥 하나 말아주시오. 막걸리도 한 병 주구려.”

서씨가 깍두기에 붙은 파리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손님은 서씨 뿐이었습니다. 먼데서 황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서씨는 식탁 옆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우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바우는 도축장으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서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바우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처음 코뚜레를 꿸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바우는 코가 뚫리는 아픔을 선 자리에서 두어 번 우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문씨의 소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마구 날뛰었던 걸 생각하면 바우는 진짜 소였습니다.

지난겨울, 몸이 아파 읍내 병원에 갈 때 유난히 빠른 걸음으로 수레를 끌던 바우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국밥이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밥 앞에서 서씨는 한참동안이나 수저를 들지 않았습니다.

“식으면 맛이 없수다.”

주인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서씨는 수저를 들어 국밥을 휘휘 휘저었습니다. 국밥의 국물에 쇠기름이 띠처럼 떠 있었습니다. 소가 살아온 길들이 갈래갈래 촐랑거렸습니다.

“사는 게 고작...몸이 흘리는 국물이라니.”

서씨가 중얼거렸습니다. 수저를 놓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탁, 하고 사발을 놓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서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서씨가 식탁에 돈을 놓고 일어섰습니다.

“왜 안 드시우?”

주인아주머니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서씨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국밥집을 나섰습니다. 국밥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햇살에 눈이 부셨습니다. 우시장 쪽에서 황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서씨의 눈앞에 바우가 도살당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서씨는 우시장 쪽을 보았습니다. 소를 흥정하고 있는 소장수가 보였습니다. 서씨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소장수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보게.”

서씨가 소장수를 불렀습니다.

“서씨 영감님, 아직 볼 일이 남았습니까.”

뒤돌아보던 소장수가 말했습니다. 서씨는 소장수를 바라보면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아까 소장수가 건네준 돈이 손에 잡혔습니다. 서씨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소장수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소장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습니다.

“바우를 돌려주게.”

“바우를요?”

“그래, 바우.”

서씨가 말했습니다.

“지금쯤 도살장에 들어갔을 텐데요. 이제 와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소장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소장수의 말을 들은 서씨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어서 빨리 바우 돌려주게.”

“허, 참. 변덕이 죽 끓듯 하시네. 기다려 보슈.”

소장수는 서씨가 건넨 돈을 낚아채듯 가져가면서 말했습니다. 도축장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서씨도 놓칠세라 허둥지둥 뒤따랐습니다. 우시장을 빠져나와 도축장에 도착했습니다. 서너 마리의 소가 도축장 앞에 서 있었습니다. 황소 한 마리는 매어둔 쇠기둥을 부러뜨릴 듯이 날뛰었습니다.

“바우가 안 보여. 이보게, 바우가...”

서씨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잠깐 기다려 보세요.”

소장수가 그렇게 말하고는 컴컴한 도축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장수를 기다리는 동안 서씨는 온몸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우를 판 자신이 한없이 미웠습니다. 그때, 도축장 안에서 황소울음이 들려왔습니다. 멀리 소장수가 바우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황천 길 갈 뻔 했습니다.”

바우를 가리키면서 소장수가 덥수룩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서씨는 바우의 고삐를 넘겨받고 눈물 한 방울을 떨궜습니다. 바우가 서씨를 알아보고는 소리 높이 울었습니다.

“영감님,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뭡니까?”

소장수가 서씨에게 물었습니다. 머뭇거리던 서씨가 말했습니다.

“국밥에서...바우를 보았어.”

서씨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소장수는 멀어져가는 바우와 서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빛바랜 그림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멀어져가는 바우와 서씨 뒤로 어룽어룽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습니니다.


<출처: 다음카페 문예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