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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마차

*<함께 읽는 글-생각하는 동화> 코너에 2002년부터 각 신문사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을 게제하고 있습니다. 말미에 당선소감과 심사평도 실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있다면 연락 주십시오. 동화 등록을 중단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2007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황금마차 -김은진

깊고 깊은 산 속에 어두컴컴한 하늘이 밝아 왔다. 며칠째 내리던 비는 이미 멎었고 우르릉거리던 천둥소리도 꼬리를 감추었다. 젖은 땅에서 나팔꽃 하나가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며 ‘뚜-뚜’하고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을 알려 주었다. 엄마개구리는 아들개구리인 팔짝이에게 높이뛰기 연습을 시키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동이 트기 전부터 반딧불의 도움을 받아 힘들게 연습한지 한참이 지났다.

오늘은 대회를 하루 앞두어서인지 팔짝이도 엄마개구리도 좀처럼 연습을 끝내지 않았다.

“그래. 잘 했다. 한 번 더 해 보자.”

엄마개구리는 마음만 조급해질 뿐 팔짝이의 기록은 별로 향상되지 않아 초초했다. 엄마개구리는 목청을 높였다.

“옛날부터 우리 참개구리는 뒷다리근육이 발달해 1미터 이상 뛸 수 있어 그동안 1등을 도맡아 했단다. 하지만 연습 없이는 안 되는 일이야.”

엄마개구리는 지쳐 보이는 팔짝이가 안쓰러웠지만 시합에 오직 1등을 하기 위해 매일같이 재촉하고 재촉했다.

“헉. 헉. 엄마. 이젠 지쳤어요! 나무잎도 너무 젖어 있고….”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 보자. 응? 시합이 내일이잖아.”

하필이면 그동안 비가 와서 연습을 못한 것이 불안했었다.

“세 번째 풀잎까지다. 알겠지?”

엄마개구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팔짝이가 안간힘을 다해 펄-쩍 뛰었다. 그때. 팔짝이의 눈에 풀잎 사이의 뽀오얀 안개와 햇빛에 황금마차가 눈부셨다. 그렇다. 황금마차.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개구리마을에 높이뛰기 대회가 열렸다. 이 축제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황금동백 나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대회에서 1등한 개구리는 황금동백 나뭇잎으로 꾸민 황금마차를 탈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다. 마을 개구리들의 축하를 받으며 박수갈채 속에 황금마차를 타는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우리 팔짝이는 꼭 황금마차를 탈 수 있어.’

작년에 돌아가신 아빠개구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팔짝아. 팔짝아”

잠시 쉬는 사이 팔짝이가 멍하니 푸른 하늘을 보고 있는데 엄마개구리가 불렀다. 연습을 다시 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럼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자.”

팔짝이가 황금마차 생각에 젖어 있다가 놀라 다시 몸을 잔뜩 움츠렸다. 앞다리를 들고 힘껏 아주 힘껏 뛰어 올랐다. 앞다리를 바짝 몸에 붙이고 뒷다리를 쭈욱 폈다. 드디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날듯이 펄쩍 뛰어 올라 충분히 세 번째 풀잎에 발이 막 닿을 때였다.

“아-악!”

무언가 확 잡아당기고 있었다. 갑자기 뒷다리가 섬뜩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끔찍한 아픔으로 뒷다리를 파고 든 것이다. 순간 팔짝이는 연못에 내동댕이쳐졌다. 푸른 연못이 팔짝이의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팔짝아!. 팔짝아!”

팔짝이를 부르는 엄마개구리의 목소리가 연못 끝까지 메아리쳤다. 보이지 않던 낚싯줄이 그제야 햇빛을 받아 날이 선 칼날처럼 번뜩였다. 엄마개구리는 부랴부랴 의사개구리를 찾아 갔다. 의사개구리가 실타래처럼 엉킨 낚싯줄을 끊고 개구리병원으로 옮겼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누워 있어야 했다.

팔짝이는 개구리병원에서 잠만 잤다. 다리의 상처가 아픈 것도 문제지만 마음이 몹시 지쳐 있었다. 그동안 높이뛰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미워하고 경계했던 마음의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개구리 의사선생님이 찾아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높이뛰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의사개구리 선생님의 얼굴도 어두웠다. 엄마개구리는 그 말을 듣고 쓰러질 뻔했다. 팔짝이도 충격이 컸다.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방망이질 하고 있었다. 멀리서 높이뛰기 대회를 알리는 경쾌한 음악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릴 때까지 팔짝이는 붕대 감은 아픈 다리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높이뛰기대회가 끝나고 다음날 친구개구리들이 병문안을 왔다. 그중에 꽃잎이와 팔딱이도 있었다.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했다. 1등만이 탈수 있는 황금마차를 올해는 팔딱이가 탔다고 했다. 대회에는 무당개구리. 청개구리. 산개구리. 옴개구리. 금개구리. 북방산개구리 등 많이도 참석했다고 했다. 한 친구는 황금마차에 대해 꿈을 꾸듯이 이야기했다.

“해님이 금빛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연못에 황금마차가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모습은 정말 눈이 부셨어. 황금마차를 타고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어.”

팔딱이가 어깨에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으-응”

모두 눈을 감고 영광의 1등을 한 팔딱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팔짝이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러자 꽃잎이가 팔짝이의 손을 잡았다.

“힘내- 팔짝아. 너처럼 좋은 경쟁자가 있어 팔딱이가 1등 한 거야 ”

그래도 꽃잎이가 팔짝이를 위로하니 고마웠다. 팔딱이도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럿이 있다 빠져나간 병실에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며칠 뒤 팔짝이는 재활치료가 시작되고 조금씩 움직였다. “팔짝아 .네가 없는 틈을 타 팔딱이가 1등을 했단다.”

뒤늦게 팔딱이의 우승을 알게 된 엄마개구리는 마음이 몹시 서운했었다.

“1등을 해야 하는 것은 팔딱이가 아니고 바로 팔짝이 너였어야 했는데 …….”

엄마개구리는 팔짝이가 가엽다는 듯 다친 다리를 어루만진다.

“어서 나아서 내년에는 꼭 1등을 하는 거야. 알겠지?”

“…….”

엄마개구리는 재활치료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팔짝이는 재활치료 내내 몸이 무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 못한 엄마개구리가 다그치기 시작했다.

“좀 더 멀리 뛰어 보는 거야 ”

엄마개구리는 팔짝이가 아픈 다리 때문에 움츠리기도 힘든데 멀리 뛰어 보라고 했다. 한발 정도 뛰어 나뭇잎에 겨우 앉으려다 그만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팔짝이의 다리가 나무토막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급히 달려온 의사선생님이 어두운 얼굴을 보였다.

“아무래도 팔짝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 소리에 엄마개구리는 깜짝 놀랐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팔짝이도 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재활치료를 해도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아요?”

개구리 의사선생님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높이뛰기 같은 것은 포기해야겠습니다. 잘못하면 영 한쪽 다리는 못 쓸지 모릅니다.”

그러자 엄마개구리는 의사선생님께 매달리다시피 했다.

“안돼요! 우리 팔짝이가 높이뛰기를 못하면 안돼요. 어떻게 하던지 고쳐주세요. 네?”

울면서 고개를 가로젓는 엄마개구리를 보며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1등을 하면 누가 제일 좋아하지요?”

“그야. 팔짝이가…….”

당연한 듯 대답했지만 힘을 잃은 목소리였다. 그러자 개구리 의사선생님은 엄마개구리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팔짝이보다는 엄마가 더 좋아하지 않았나요?”

엄마개구리는 어물어물 입안에서만 맴돌던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갑자기 콱 막혀버렸다.

“엄마의 위세나 체면 때문에 욕심을 부린 건 아닌가요? 어린 시절 즐거운 추억 하나 없이 경쟁만 하다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세요.”

의사선생님 말에 엄마개구리는 아무 말도 못했다.

“1등은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무리한 운동은 몸에 해롭고 지나친 욕심은 서로를 다치게 합니다. 마음까지도요.”

의사선생님은 무엇이 진정 팔짝이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며 총총히 사라졌다. 의사선생님 말이 자꾸 귓전을 맴돌았다. 엄마개구리는 천천히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엄마 개구리가 어릴 때는 높이뛰기대회에 누가 이기든지 진정한 마을의 축제였다. 1등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오랜만에 만나 하나가 되어 정을 나누는 것이었다. 서로 즐겁게 놀고 그동안의 오해와 미움을 다 떨쳐 버리는 것이 진정한 축제의 즐거움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과열이 되어 지금은 누구도 못 말릴 지경이다. 그동안 팔짝이는 분명히 고달픈 연습을 해 왔던 것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이기기만 위해 더 높이. 더 멀리 뛰지만 정말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따스한 기억이 늙은 고목나무에 피어오른 줄기 하나마냥 새로운 희망 하나가 피어올랐다.

며칠 뒤 아침이었다. 눈부신 아침 해가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일찍 일어난 나팔꽃이 뚜-뚜 나팔을 불어 주었다. 해님을 닮은 듯 엄마개구리 얼굴도 유난히 밝았다.

“팔짝아. 그만해.”

엄마개구리는 팔짝이 이마에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조금만 더 할게요.”

이제 높이뛰기는 팔짝이에게 더 이상 힘든 경쟁이 아닌 즐거움의 일부가 되었다. 팔딱이와 꽃잎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더 기운이 솟아났다. 아픈 다리를 조심히 움츠려 한 발짝 나아갔다. 순간. 숨었던 힘이 반짝 샘솟았다. 넓적한 이파리에 발이 닿았다. 이파리에 머문 이슬방울들이 일제히 떠올라 햇살과 함께 황금빛 마차가 되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햇살은 팔짝이에 의해 맑은 웃음으로. 엄마개구리의 넓은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당선소감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

그날은 제사 준비로 무척 바쁜 하루였습니다.

분주한 손길을 멈추게 한 것은 좀처럼 울리지 않던 휴대폰 소리, 손때 묻은 휴대폰 너머로 고운 목소리는 "당선"이란 말을 전해왔습니다.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서 모든 언어들은 입속에서 동그라미로만 맴돌았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잠재하고 있던 이슬방울들이 결집되어 눈물로 볼가를 적셨으며 모든 붉은 인자들이 모여들어 내 볼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가슴 찡한 동화를 읽을 때처럼….

"성냥팔이 소녀와 플란더즈의 개는 읽지 말아줘, 엄마, 알았지!"

라고 말하던 딸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읽어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찔금찔금거리며 눈가를 적시는 눈물은 이내 주체할 수 없는 소낙비처럼 한참을 봇물처럼 흘러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부끄러운 고백을 동심이라고 미화해 주신 선배 지인님의 칭찬이 무척이나 제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더니 저의 무딘 펜을 춤추게 하였나 봅니다.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두들 다 가지고 있듯이 나도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 하고 지쳐있습니다. 우리의 유년기처럼 맘껏 뛰어 놀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동화라는 매개로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과 작은 감동의 씨앗이 마음속에 자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인간이 된다'라는 힌두교의 경전처럼 좋은 생각, 깊은 생각, 즐거운 웃음을 가진 아이들을 꿈꾸게 하고 싶었습니다.

묵묵히 도와주시며 가장 힘이 되어주시는 어머님, 신랄한 비판으로 채찍질해 준 남편,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 애교있는 딸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듬뿍 담아 이 자리에서 전하고 싶습니다.

칭찬과 격려로 포기하지 않게 다잡아 주신 문우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밤이 새도록 헤아려 봅니다.

끝으로 아직도 서걱거리며 설익은 글을 잡초로 여기지 않으시고 씨앗으로 심어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현실을 통한 미래의 꿈

응모작품을 1차적으로 검증하고 11편을 예심 통과 작품으로 올렸다. 다시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읽고 읽어 5편을 최종심 작품으로 뽑아 놓았다. 최종작품을 보면 감꽃동자, 바람이 피운꽃, 내 나무야 내 나무야. 들꽃처럼 바람처럼. 황금마차 등이었다.

당선작을 뽑기 위해 거듭 읽고 난 뒤 ‘감꽃 동자’는 연변에서 시집을 온 어머니가 가출을 하고 새엄마로 모신(우즈베키스탄)분과의 오순도순한 이야기는 재미가 있으나. 곡비 인용이 지나치게 길어 읽는 이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어 비켜났다.‘바람이 피운 꽃’은 우리 가락을 이어 가려는 속내와 어린이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려는 작의는 좋으나. 동화가 지녀야 할 환상성이 모자라 밀려났다. ‘내 나무야. 내 나무야!’의 주인공 수빈이가 태어남과 함께 할아버지가 심어준 나무를 애정깊게 이어 냈으나. 이야기가 감칠 맛을 놓쳤다.

최종에 오른 ‘들꽃처럼 바람처럼’과 ‘황금마차’를 두고 오랜 담론 끝에 ‘황금마차’를 당선작의 영예를 드리는데 합의를 보았다. 소년소설 쪽으로 보면 ‘들꽃처럼 바람처럼’이 구성면이나 문장력이 예사가 아니었으나 끝 부문에 가 멋진 반전을 갖다 놓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조금만 다듬으면 좋은 작품으로 품격을 달리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