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글-생각하는 동화> 코너에 2002년부터 각 신문사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을 게제하기로 하였습니다. 말미에 당선소감과 심사평도 실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있다면 연락 주십시오. 동화 등록을 중단토록 하겠습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2006년 동양일보 동화 당선작>

2월 민들레 -최석희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괜스레 눈시울이 찌르르 한 것이 옆에 있는 상자를 발로 뻥 차 보아도 시원치 않습니다.

비닐하우스의 문을 거칠게 열고나옵니다.

차가운 바람이 싸늘하여 몸을 움츠리지만 가슴속은 더욱 후끈거립니다.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아아-----”

아직 녹지 않은 땅을 발로 걷어차 보지만 풀리지 않아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며 크게 소리칩니다.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아아-----”

할머니는 비닐하우스의 저쪽 끝에서 흙을 고르고 계십니다.

돌멩이는 골라내고, 굵은 흙덩이는 부수고, 할머니의 손이 지나는 곳마다 땅은 보드라운 헝겊을 펼쳐놓은 듯 평평하고 매끄럽습니다. 하지만 주무실 때 할머니의 손을 보면 돌멩이보다 더 거칠거칠 하답니다.

“칫,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 참외농사 시작하면 피아노 사준다고 해놓고 ---”

햇볕은 따뜻해도 아직 초봄의 바깥은 손끝을 시리게 합니다.

코끝이 빨갛게 된 하나는 다시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며 할머니에게 한 번 더 눈을 흘기지만 할머니는 본체도 안 하십니다.

비닐하우스 안은 마치 방안처럼 따뜻합니다.

조그마한 컵 안에서 자라던 참외 싹을 할머니는 넓은 하우스의 이랑에 고르게 펼쳐 놓으시고 새싹들의 실뿌리가 잘 내리도록 흙을 고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이곳에서 일하시고, 할머니와 둘이 사는 하나도 덩달아 이곳이 놀이터도 되고 방도 되고 부엌도 되곤 합니다. 할머니가 일하시면 하나는 낮잠도 자고 라면도 끓여먹고 이랑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하나가 일곱 살이 되면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셨답니다.

하나는 일곱 살이 되는 새해 첫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할머니를 졸랐지만 참외농사 시작하면 사주겠다고 미루시더니 이제는 참외 따서 돈을 벌어야 사주겠다고 하십니다.

'저 코딱지만한 싹이 언제 자라서 넝쿨이 되고 꽃이 피어 참외가 열린단 말입니까?'

하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쪽 구석에 펼쳐놓은 멍석 위에 벌러덩 누워 버립니다.

"감기 걸릴라 깔고 누워라"

할머니는 일만 하시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다 보고 계신 모양이었습니다.

“괜찮아요. 피아노만 사주면 감기 안 걸려요.”

옆집 사는 꼬맹이 선미는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아빠가 생일날 피아노도 사주었습니다.

하나의 소원은 선미랑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 입니다.

아니...작은 피아노라도 하나 갖는 게 소원입니다. 하나는 퉁명스럽고 심술궂은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안보이게 돌아누우며 하나는 크게 소리칩니다.

“할머니, 미워이이잉---”

떼구르르 눈물 한 방울이 굴러 내립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들은 체도 안하십니다.

하나는 옆으로 누워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합니다.

거친 멍석 바닥이지만 둘째 셋째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해보니 재미있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다고 뻐기며 선미가 가르쳐 준대로 해봅니다.

“도레 도레 도레도 둘 셋 넷”

“도레미 도레미 도레미 도 둘 셋”

다섯 손가락을 모두 움직여 피아노를 쳐봅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하나는 아예 엎드려 두 손으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은 매끄럽게 움직입니다.

무슨 곡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하얗게 풀어지며 기분이 조금은 나아집니다..

까딱까딱 고개로 박자를 맞춥니다.

비닐하우스 귀퉁이에 노란 꽃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파릇한 잎사귀 위에 조그마한 꽃이 한 송이이더니 하나가 피아노를 쳐주니까 두 송이가 되고 세 송이가 됩니다.

“야 신난다!.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좋은가봐!”

키가 작은 잎사귀에 노란 꽃들이 방싯 웃으며 봉우리를 터뜨립니다.

꽃잎 속에서 또 꽃잎이, 꽃잎 속에서 또 예쁜 꽃잎이, 활짝 웃는 아기처럼 꽃을 피웁니다. 하나는 다가가서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꽃들이 햇볕처럼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이번에는 민들레 초록 잎들이 춤을 춥니다.

톱날모양 뾰족뾰족한 잎들이 오무렸다 폈다 합니다

물속의 물풀이 흔들리는 것처럼...

그때 하나의 귀에 언듯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이 - 추워...., 나도 들어가게 해줘....”

두리번거려도 모두 방글방글 웃는 꽃잎들뿐인데 하나는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더 신나는 곡이야”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고 발가락까지 박자를 맞추어 봅니다.

그때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또 들립니다.

“아이 추워-, 아이 추워- ”

하나는 피아노를 치다말고 여기저기 자세히 살펴봅니다.

활짝 피어난 꽃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예쁘다고 뽐내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을 열고 내다보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 또 다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 추워-, 나 좀 봐 줄래--?”

소리가 나는 곳은 발아래 비닐하우스 문턱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곳에...”

사람들이 수 없이 들락거리는 비닐하우스 문턱 밑에 아주 조그마한 민들레가 자리를 잡고 초록 싹을 틔우고 가느다란 줄기를 뽑아 올려 봉긋한 꽃봉오리 까지 맺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이면 좋을 텐데 하필 문턱 아래 추운곳에 자리를 잡았을 까?

불쌍합니다. 하나는 밖으로 나옵니다.

“어머 아기 민들레구나”

“안녕!! 하나야!”

배시시 웃는 아기 민들레의 얼굴이 오돌오돌 떨립니다.

“아휴- 추워서 하얗게 질려 있네? 어떻게 하지?

너를 하우스 안으로 옮겨줄 수도 없고 --”

하나는 말꼬리를 흐립니다.

“그런 걱정 하지마, 나는 비록 문틈 비좁은 곳에 태어났어도 감사하단다.”

하나가 들여다 보아주니 민들레는 기운이 나는지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하나는 언제 나를 보아줄까 기다림도 있고 문이 열릴 때 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녹여 주곤 하거든.

저 응달 좀 보렴

아직도 얼어 있는 땅속에서 내 친구들은 떨고 있잖니?

나는 행복하단다. 하나는 어쩌면 그렇게 피아노도 잘 치니?”

“고마워 앞으로 열심히 배워서 더 잘 할께!”

하나는 두 손을 모아 아기 민들레를 감싸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서 입김을 ‘후- 후-’ 불어 주었습니다. 민들레는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야 하나야”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얘가 추운데서 잠이 들었나 보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할머니가 다가와 흔들어 깨웁니다.

“아 내가 잠이 들었었구나. 아기 민들레는?” 하나는 벌떡 일어나 쏜살 같이 문을 열고 문턱 아래를 봅니다.

가슴이 콩당 콩당 두근두근 아기 민들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꿈이었다면...

영문 모르는 할머니는 하나를 바라다만 봅니다. 비닐하우스 문틀 밑에 키 작은 민들레가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야드르르한 톱니모양의 이파리에서 가느스름한 꽃봉오리까지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습니다.

“아기민들레야- 아기민들레야- 너 거기 그대로 있었구나”

하나는 너무나 반가워 두 손으로 민들레를 감싸줍니다.

“왜 그러니? 하나야 오늘 아침 청소를 하며 뽑아 버리다가 두었는데 무슨 일이야?”

“할머니 이 꽃은 내 꽃이야! 건드리지마”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다시 호미를 들고 일을 시작하십니다.

“아기민들레야- 아기민들레야- 춥지 않니?”

아기 민들레가 불쌍하고 가여워서 아까 꿈속에서처럼 입김을 ‘후후’ 불어넣어 줍니다. 아기 민들레는 행복하다는 듯 겹겹의 꽃잎을 흔들며 가만히 피어납니다. 흰빛 꽃잎이 여린 노랑으로 조금씩 물들어 갑니다. 아기 볼이 빠알갛게 물드는 것처럼

하나는 매일매일 민들레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미가 피아노 학원에 다녀와서 자랑하면 민들레에게 약 오른다고 이야기하고 문턱에서 혹시 누군가가 민들레를 밟지나 않을까 가느다란 꽃봉오리가 다칠까봐서 민들레 곁에 앉아 있습니다.

하나 마음속에 속상한 비밀 이야기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 학원도 가고 싶고 피아노도 갖고 싶은데 속상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신다는 아빠 이야기도 합니다.

술 많이 잡수시는 아빠가 밉다고 갓난아기 하나를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어디론가 가신 엄마의 이야기도 합니다. 집에 안오신지 일 년도 넘는 아빠 기다리시느라 마루의 전등을 잠 잘 때도 켜두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합니다. 허리가 아파서 밤마다 신음 소리를 내시는 할머니에게 잘해드리고 싶은데 매일매일 짜증만 내는 나쁜 아이라고 할머니는 못 듣도록 말할 때는 눈으로만 말합니다.

그러면 민들레는 하늘하늘 꽃잎을 흔들며 하나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하나 때문에 행복하다고.....’

‘비록 춥고 좁은 문턱 아래더라도 꿋꿋이 살겠다고’

여린 노랑의 얼굴을 개나리색으로 물들이며 민들레는 하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도 이제는 할머니에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선미 때문에 약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종이건반을 구해 멍석 위에서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하나의 귀에는 종이건반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두 손으로 연주하는 소리가 제법 들을 만합니다.

아기 민들레도 아름다운 화음이라고 칭찬하며 꽃잎을 흔들며 ‘짝짝짝’ 박수를 쳐줍니다.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파릇해지는 민들레처럼, 좁고 위험한 곳에서도 항상 웃고 있는 민들레처럼, 하나는 실망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의 귀에 민들레의 응원 소리가 들려옵니다.       <<끝>>

<심사평>
소재 단순하지만 ‘편안한 호흡’에 점수

창작은 허구이다. 동화도 물론 허구이다. 그러나 동화의 허구가 다른 장르와 다른 것은 판타지가 허용되고 감동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같은 문학창작 중에도 유독 동화에 대해 잣대를 달리하는 것은 그 대상이 어린이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동화의 독자가 반드시 어린이에 국한하지는 않는다. 성인도 독자가 될 수 있고 극중 주인공이 성인일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도 동화에만 특별히 적용되는 잣대가 있다. 그것은 수레의 양 바퀴나 비행기의 양날개처럼 ‘문학’과 ‘교육성’이 공존해야 된다는 점이다. 1차 예선을 거친 작품은 모두 12점. 모두 나름대로 공들여 쓴 작품들이었다. 이 가운데 ‘꿀벌과 개미마을에서 생긴 일’(김형태·서울), ‘2월 민들레’ (최석희·음성), ‘깨몽이’(최은묵·대전), ‘뇌의 눈물’(이해원·청주), ‘고추 따간다’(최은영·서울),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엄마’(김태양·울산), ‘딸기우유를 먹는 날’(윤혜영·거제) 등 7점을 골랐다.

작품들이 나름대로 특징은 갖고 있었지만 한눈에 확연하게 들어오는 작품이 없어 서너차례 이상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딸기우유를 먹는 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엄마’, ‘2월 민들레’ 세 편을 골랐다.

‘꿀벌과 개미마을에서 생긴 일’은 메시지는 좋으나 표현방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깨몽이’와 ‘고추따간다’는 동화적인 발상이 긍정적이나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소품이라는 점에서, ‘뇌의 눈물’ 역시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신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제껴졌다. 마지막 세 작품 역시 각각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딸기우유를 먹는 날’은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승운이가 시골학교로 전학와 새 친구를 사귀게 되는 과정을 다뤘는데 자신을 괴롭히던 민우의 아버지도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다는 사연을 알게 되면서 가까워진다는 내용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엄마’는 최근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이주가정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문제의식이 돋보였다. ‘2월 민들레’ 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고있는 하나가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비닐하우스에서 아기민들레를 발견해 친구가 된 후 마음넓은 아이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딸기우유를 먹는 날’은 두 아이의 우정이 돋보이면서도 민우 아버지의 등장 등이 어색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엄마’ 역시 태풍과 할머니의 죽음 등이 자연스럽지 않아 손이 가지 않았다. ‘2월 민들레’ 는 위의 두 작품에 비해 소재가 단조롭고 주제가 약했지만 무리없이 읽힌다는 점에서 결국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새로운 작가의 등장을 축하하며 선에 올랐던 응모자들도 모두 좋은 작가가 될 소질들을 갖췄음에 더욱 분발 바란다.

<당선소감>
시무룩한 일상이 문득 소리를 내며 걷힙니다.

손에 만져지지 않는 글 쓰기를 끌어안고 몸살 앓는 아내가 못내 불안해도 내색 없이 바라봐주는 남편의 얼굴이 환합니다.

우등상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쁩니다.

상 받아 오면 제일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기뻐해 주실텐데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흰구름 어린이집 꼬마들의 환한 웃음꽃이 추위를 녹입니다.

원장님도 좋은 상 받았다고 자랑을 했더니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상 받는 게 이렇게 좋은 걸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상을 줘야겠습니다.

그들은 내 삶의 꽃밭입니다.

사랑의 물과 칭찬의 거름을 듬뿍 주기 위해 동화를 쓰겠습니다

동양일보가 서랍속에 채곡채곡 쌓여있던 제 작품들에 빛을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으로 새기며 발걸음을 옮기렵니다

내 일처럼 기뻐해주는 짓거리 시 문학회, 시울림 문학회 문우들과 함께 걷겠습니다.

<<다음카페 文藝感性에서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