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농사꾼이 괭이로 밭을 파 일구고 있었어. 한창 신나게 괭이질을 하다

보니, 괭이 끝에 무엇이 댕그랑 하고 닿는 소리가 나겠지. 무엇이 묻혀 있나 보다

하고 조심조심 파내니까 커다란 항아리가 하나 나오더래. 몸집이 큰 사람도 넉넉

히 들어갈 만큼 큰 항아리더라는 거야. 그런데 군데군데 금이 가고 일그러진데다

가 볼품이 없어서 뭐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거든.

이걸 어쩐다? 내다 버리려니 아깝고, 그렇다고 딱히 쓸모도 없고…….

농사꾼은 망설이다가 그 항아리를 집으로 가져왔어. 집이 워낙 가난하여 그릇이

모자라니 혹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고서 말이야. 그걸 뒤꼍에다 갖다 놓

고, 넣을 것이 없으니까 우선 손에 든 괭이를 넣어 뒀지.

그래 놓고 하루가 지났어. 이튿날 아침에 일하러 가려고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괭이를 꺼내지 않았겠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방금 틀림없이 괭이를 꺼냈는데,

항아리 안에는 괭이가 또 한 자루 들어 있지 않겠어? 하도 이상해서 항이 안에

들어 있는 괭이를 또 꺼내 보았어. 그랬더니 항아리 안에 똑같은 괭이가 또 한 자

루 들어 있더래, 글쎄. 꺼내면 또 들어 있고, 꺼내면 또 들어 있고, 아무리 꺼내도

똑같은 괭이가 수도 없이 들어 있더란 말이야.

야, 이것 참 신기한 항아리로군.

농사꾼은 어떻게 되나 보려고 엽전 한 닢을 항아리 안에 넣었다가 꺼내 봤지.

그랬더니 항아리 안에 똑같은 엽전이 또 한 닢 들어 있어. 그걸 꺼내고 나니 또

한 닢이 들어 있겠지.

옷을 넣었다가 꺼내면 똑같은 옷이 또 들어 있고, 무엇이든지 넣었다가 꺼내면

똑같은 것이 자꾸만 나오는 항아리야. 농사꾼은 보물을 얻었다고 아주 기뻐했지.

이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는데, 이 마을에는 아주

욕심 많고 감때사나운 영감이 살고 있었어. 이 영감이 이 소문을 듣고 나니 욕심

이 나서 견딜 수가 있나.

에그, 아까워라. 그 항아리가 내 것이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돈만 꺼낼 텐데.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텐데. 어떻게 하면 그 항아리를 손에 넣을

꼬.

이렇게 밤낮으로 궁리하던 영감이 무슨 수가 났는지 갑자기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나. 그리고 부리나케 농사꾼 집으로 달려가는구나.

여보게, 자네 집에 있는 항아리를 어디서 얻었는가?

앞산 밑에 있는 우리 밭에서 파냈지요.

영감이 그 소리를 듣더니 입이 함박만해지면서 손뼉을 쳐.

그러면 그렇지. 이제 그 항아리는 내 것일세.

…….

농사꾼이 어안이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

이 사람아. 그 밭을 언제 누구한테서 샀는가?

그야 한 십 년 전에 영감님한테서 샀지요.

그것 보게. 그 항아리는 원래 내 것일세. 나는 자네한테 밭만 팔았지 항아리는

팔지 않았거든.

농사꾼은 억울했지만, 듣고 보니 그럴 듯하기도 해서 항아리를 돌려주려고 했

어. 그런데 사정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경우에 없는 소리라고 거들거

든. 욕심 많고 감때사나운 영감이 얼마나 미웠으면 그럴까.

달라느니 안 된다는니, 여럿이서 옥신각신하다가 원님에게 가서 재판을 받기로

했어. 모두들 항아리를 들고 원님을 찾아갔지. 찾아가서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판

결을 해주십사 했단 말이야. 그런데 원님은 원님대로 항아리에 욕심이 생겼어.

내가 저 항아리를 가졌으면 임금님도 부럽잖게 살 텐데. 참으로 남 주기 아까

운 물건이로다.

드디어 원님이 판결을 내리는데,

너희들 말을 들어보니 양쪽 말이 다 그럴 듯하다.원래 밭 임자는 진작에 항아

리가 제 밭에 묻혀 있었던 것이니 임자가 될 수 있느니라. 항아리를 파낸 사람은

제 손으로 항아리를 얻었으니 또한 임자가 도리 수 있느니라. 그러니 공평하게 하

자면 항아리를 반으로 나누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면 깨져서 못 쓰게 되지 않

겠느냐. 그러니 이 항아리를 나라에 바치도록 하여라. 그러면 서로 싸우는 일도

없어질 것이니 좀 좋으냐.

이러는구나. 억울하지만 백성이 감히 관장의 명을 거역할 수 있나. 농사꾼과 욕

심쟁이 영감은 입맛만 쩍쩍 다시다가 빈손으로 돌아가 버렸지.

원님은 입이 헤벌어져서 항아리를 자기 집 대청에 갖다 놓았어. 그리고 사방팔

방 귀하다는 물건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 귀한 물건만 구해다가 항아리에 집어

넣을 속셈이지.

그런데 이 원님에게는 나이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있었어. 원님 아버지가 대청

에 나와 보니 여태 못 보던 항아리가 놓여 있거든. 무엇이 들어 있나 하고 발돋움

을 해서 큰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니까 자세히 보려

고 고개를 항아리 안으로 들이밀었지. 그러다가 그만 항아리 속에 쑥 빠지고 말았

지 뭐야. 이것 참 큰일났네. 원님이 귀한 물건 구하느라고 분주하게 돌아가다보니,

아범아, 아범아. 나 좀 꺼내 다오.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 얼른 달려가 보니 자기 아버지가 항아리 속에 들

어가 있거든.

아이고, 아버지. 거긴 왜 들어가셨어요?

간신히 아버지를 꺼내 놓고 보니, 항아리 안에서 또 소리가 들려.

아범아, 아범아. 나 좀 꺼내 다오!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니 자기 아버지가 또 거기에 들어 있겠지. 겨우 꺼내 놓으

니까 또 항아리 안에서 소리가 들려.

아범아, 아범아. 나 좀 꺼내 다오!

아버지를 꺼내 놓으면 항아리 안에 또 아버지가 들어 있고, 꺼내 놓으면 또 들

어 있고, 자꾸자꾸 꺼내다 보니 온 대청이 원님 아버지로 가득 찼어. 원님은 아버

지를 꺼내다 말고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알아보려고,

아버지!

하고 불러 보았지. 그랬더니 그 수많은 아버지들이 다 같이,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겠지. 원님은 기가 막혀 아버지를 더 꺼내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

기만 했어.

그런데 항아리에서 나온 원님 아버지끼리 서로 싸움이 붙었구나.

다들 썩 물러가거라. 내가 진짜 원님 아버지다.

네가 문데 원님 아버지 행세를 하려고 드느냐? 나야말로 진짜 원님 아버지다.

뭐라고? 가짜 주제에 큰소리를 쳐? 내가 진짜인 줄 모르느냐?

이렇게 서로 실랑이를 하며 옥신각신하는 거지. 수많은 원님 아버지들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항아리에 부딪치니까 그만 항아리가 와장창 깨

져 버렸지 뭐야. 항아리는 못 쓰게 되었고, 아버지는 대청에 가득하고, 원님은 하

도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푸푸 내쉬고 있더라나.

자료제공: 다음카페<송송송 솟아나는 이야기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