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단 동물 중에서 가장 재주가 뛰어난 것은 원숭이였다. 앞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렵한 몸매가 언제나 원숭이의 자랑이었다. 원숭이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같은 서커스단 동물인 코끼리의 코를 보고 늘 이렇게 흉을 보았다.

"아이들 즐겨 부르는 동요에도 나오지만, 너는 그 코흘리개 코가 그래 진짜 손이라도 되니? 코로 아이들이 주는 과자를 받아 먹다니, 참 안 됐다. 너는 그리고 그 코를 제대로 씻기나 하니? 난 네가 물 속에 텀벙 코를 집어넣는 건 봤지만 앞발로 비벼 깨끗하게 때를 씻어내는 건 보질 못했다."

원숭이의 말에 코끼리는 '흐응'하고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네 앞발보다 내 코가 더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단다."

"그게 뭔데?"

"무거운 통나무 드는 거."

"미련맞게 그런 무거운 통나무는 왜 드니? 나처럼 줄타는 재주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사는데 아무 걱정이 없는데."

원숭이는 그러면서 문득 고향인 남아프리카 열대의 야자숲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포획망을 설치해 원숭이들을 마구 잡아갈 때, 다른 친구들은 더 깊은 숲속으로 도망을 쳤지만 그는 호기심 때문에 기웃거리다 포획망에 갇혀버렸다.

그 후 원숭이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며 자기도 감히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래서 사람을 '털없는 원숭이'라고 부르며, 자신도 원래는 사람과 조상이 같을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원숭이는 사람들한테 잡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숭이는 서커스단 단장한테 칭찬을 받았고, 맛 있는 바나나를 제공받는 것이 늘 즐겁기만 했다. 무대에 나가 줄타기 재주를 부리고 나서 인사를 할 때, 아릿다운 소녀가 던져주는 바나나를 받아먹는 것이야말로 정말 황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열대 야자숲의 나무 위에서 잠자는 친구들이 불쌍하게 생각됐다.

그런데 덩치만 큰 코끼리는 늘 고향인 인도 생각만 하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원숭이는 그걸 보고 또 놀려댔다.

"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너는 덩치만 컸지 생각이 좁아. 사람들한테서 네 고향 인도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거긴 소한테나 천국인지 다른 동물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댄다. 고향에 가봤자 일만 죽도록 하다 죽는 거야. 그래, 너 거기 가서 코로 무거운 통나무나 나르면서 살고 싶니?"

"원숭아! 너는 재주는 많은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물론 여기 서커스단에서 재주나 부리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사람들한테 박수 갈채도 많이 받으니 좋겠지. 그러나 부모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어 미치겠다. 요즘은 고향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

코끼리의 말에 원숭이가 깡충 뛰어 코기리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러니까, 코끼리 너는 미련하다는 거야. 나는 요즘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단다. 나처럼 좀 고상한 생각을 해봐."

"너는 아무리 해도 사람이 될 수 없어. 그것만 알아둬. 누구나 생긴대로 노는 거야. 원숭이면 원숭이답게 놀아."

코끼리의 충고에 원숭이는 발칵 성질을 냈다.

"야, 코끼리! 너나 네 코의 생김새처럼 놀아라. 인도 가서 무거운 통나무나 실컷 나르는 게 너한테는 제일 어울리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래도 사람이 될 거야. 요즘 나는 팬이 하나 생겼다. 예쁜 소녀지. 매일 삼촌을 졸라 서커스 구경을 오는데, 그 소녀는 쇼가 끝날 때까지 나만 쳐다보고 있어. 쇼가 끝나면 무대 뒤로 찾아와 꽃다발도 주고, 맛 있는 과자도 주고 그러지. 나는 그 소녀를 친구로 만들고 말거야."

"꿈 깨라, 꿈 깨!"

코끼리는 너무 어이가 없다는 듯 또 '흐르릉' 코웃음을 쳤다.


다음 날 쇼를 할 때였다. 원숭이의 줄타기 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주 높은 공중에서 원숭이는 자유자재로 놀았다. 가는 줄 위에서 공중돌기도 하고, 물구나무 서기도 하고, 껑충 뛰어 떨어지는 척하다가 앞발 하나로 줄을 잡아 위기를 모면하는 묘기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음 차례 준비를 하고 무대 뒷편 출입구에 나와 있던 코끼리는, 원숭이의 쇼가 전 같지 않고 무척 불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원숭이의 눈길이 전혀 딴 곳에 가 있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 원숭이가 팬이라고 말했던 관중석 맨 앞줄의 소녀에게 윙크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 줄이나 잘 탈 일이지 윙크는 무슨 얼어죽을 윙크야? 원숭이 주제에."

코끼리는 늘 원숭이에게 놀림받은 것도 있고 해서, 속으로 이렇게 비꼬아주었다.

바로 그 때였다. 원숭이가 줄 위에서 공중돌기 재주를 넘다가 그만 앞발로 잡아야할 줄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서 '아앗!'하는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잠시 후 또 관중석에서 '휴우'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깜짝 놀란 코끼리는, 그 때서야 눈을 떴다. 자신의 코 위에 원숭이가 얹혀 있었다. 코끼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대로 뛰어나가 떨어지는 원숭이를 코로 받아냈던 것이다. 정말 위기일발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것도 원숭이와 코끼리가 함께 하는 쇼인줄로 알고 열광의 박수를 보낸 것이었다.

쇼가 끝나고 나서 원숭이는 서커스단 단장에게 된통 야단을 맞았다. 그리고 코끼리는 매우 칭찬을 받았다.

그 날 밤 원숭이가 코끼리에게 찾아와 말했다.

"야, 코끼리!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네 코는 우스운 게 아니라 정말 훌륭한 손이야. 그 동안 너를 놀려댄 것 사과한다."

"네 똥구멍이 왜 빨간지 이제 알았다. 네 조상이 나무 위에서 재주 부리다 떨어져 가시나무에 엉덩이를 찔렸기 때문이야. 그 때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조상 대대로 빨간 똥구멍이 된 것이지."

코끼리가 이렇게 놀려댔다.

원숭이는 이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꽃다발을 갖다준 소녀와 친구가 되겠다는 꿈도 버리고, 코끼리와 영원한 친구가 되길 맹세했다.





임광용/이야기사랑방(http://novelky.home.dreamx.net)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