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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과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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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종<숙명여대 교수.문화관광학>
나의 가까운 지인이 들려준 얘기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가라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별의별 대답이 다 나온다는 것이다.
곰발바닥 요리.제비집 요리.이탈리아 요리.김치 등등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답을 낸다는 얘기다. 각자의 경험속에서 다양한 입맛을 축적하고 살다보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의 정답은 정말 찾기 힘들다.
평생 찾는 어릴 적 음식맛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의 움직일 수 없는 정답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어렸을 적 엄마가 해준 음식맛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바로 이 어릴적 음식맛에 길들여져 평생 그 맛을 찾으며 살아간다.
듣고 보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어린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평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현상학자 바슐라르의 책에서도 나온다. 바슐라르는 어린시절에 맞닥뜨린 물.불.흙.공기 같은 4원소가 생의 무의식을 대부분 지배한다고 역설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 속에서 자란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그가 살던 고향마을의 인심하며 나무.숲.새.물.흙의 추억을 곳곳에 담고 있다. 도시로 나온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만하면 세련된 도회감각도 완벽하게 익혔을 만한데 시어(詩語) 곳곳에 숨어 있는 4원소의 꿈은 날개 접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경기도 남양만의 바닷가에서 자란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은 낡은 교사 한켠에 문학반을 만들고 독서지도를 해주셨다.
선생님은 화창한 5월만 되면 학과공부를 소홀히 한다는 교장선생님의 질책도 아랑곳 않고 우리를 산으로, 바닷가로 끌고 다녔다.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은 선생님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얘들아 바람의 살결을 만져보자" 고 하신 일과 풀밭에 귀를 대고 "대지의 심장소리를 들어보라" 고 주문한 일이다.
그때 나는 비로소 세상이 내뿜고 있는 아름답고 찬란한 향기와 맞닥뜨렸다. 소금기가 배었지만 한없이 보드랍게 만져졌던 바람의 살결에 관한 추억이 결국 나에게 문학에 대한 꿈을 간직하게 했다.
"너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다" 라며 언제나 자신의 가슴에 나의 얼굴을 대고 글솜씨를 칭찬해 주셨던 선생님과의 추억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때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과 바람에 대한 문학적 감성 훈련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뷔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쯤 전혀 다른 인생의 항로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순간이 영원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유년기의 체험이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 60.70년대를 살아온 오늘의 중장년층들은 유년기에 문화적 감성과 교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선생님을 잘 만난 나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예일 뿐이다.
따라서 문화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교육받고 자라온 오늘날의 기성세대가 수용하는 문화의 범위란 극히 한정적이고 덜 세련되고 조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선진국들보다 책이 안팔리고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이 관객 저변확대를 해나가지 못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같은 문화.사회학적 환경탓도 기인한다.
유년기 문화체험 운동을
온거리가 예술작품 투성이인 서구 선진국가에서 어린시절을 몸으로 부딪고 자라온 시민들과 우리의 경우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기성세대에게 높은 문화의식을 갖게 해주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시절에 항상 문화적 충격과 맞닥뜨리게 하는 수준높은 문화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시민을 육성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어린시절 어쩌다 선생님과 함께 본 연극 한편의 추억 때문에 그 시절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커서도 자연스럽게 연극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유년기 문화체험 운동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린시절에 먹어 본 음식맛을 평생 찾아 헤매듯 이 삭막한 세상의 은밀한 곳에서 내뿜고 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우리의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는 것도 바로 선생님들의 의무다. 오월은 그런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계절이다. 선생님들 만세.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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