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어느 여름날 오후에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들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언니, 우리 재미있게 놀아."
"난 책을 읽을 거야. 재미있거든."
"난 너무 심심한 걸……."
언니는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몹시 심심했습니 다.
"같이 놀자."
"싫다니까 그러네."
앨리스는 할 수 없이 새끼 고양이 '다이나'를 데리고 나무 위에 올라갔다 내려 왔다 하면서 놀았습니다.
앨리스는 다이나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다이나야, 꿈속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그런 이상한 나라가 없을까?"
"글세. 그런 나라가 있을까?"
"나는 그런 나라에 가 보고 싶어. 그런 나라가 정말 있다면……."
그런데 바람도 불지 않는 풀숲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흰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 오는 것입니다.
"어, 저 흰토끼는……."
놀랍게도 그 흰토끼는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고 있었고, 커다 란 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단 났다, 야단났어. 늦은 건 아닐까?"
흰토끼는 혼자 중얼거리며 바쁘게 앨리스의 곁을 뛰어 지나갔습니다.
앨리스는 놀란 눈을 하고 있다가 흰토끼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흰토끼야!"
안경을 끼고, 옷을 입고, 시계를 가진 흰토끼란 앨리스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이 없었던 것입니다.
흰토끼는 그런데 바람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이윽고 커다란 나무 밑동으로 날 세게 들어갔습니다.
'어, 여기에 굴이 있네!'
뒤쫓아간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리고 흰토끼가 들어간 나무 밑동 의 굴속을 조심스럽게 드려다 보았습니다.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습니 다.
'앗!'
그런데 더 놀랍게도 앨리스가 저절로 굴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앨리스의 치마가 낙하산처럼 둥실 펴지면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이상 하게도 그 굴은 땅속 깊이 넓게 뚫려 있고, 벽마다 여러 가지 장식이 되어 있었 습니다.
'야, 조그만 등도 있고……. 거울도 있고……. 사진들도 걸려 있네!'
벽 둘레의 장식물들을 구경하며 앨리스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두렵 기도 했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윽고 앨리스는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그곳은 낙엽을 깔아 놓은 마루 바닥이 었습니다.
앨리스가 윗몸을 일으켜 보니, 복도 끝에 흰토끼가 보였습니다.
"야단 났어! 늦는 건 아닐까?"
흰토끼는 또 중얼거리며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다려! 기다려! 아니, 저 흰토끼가……."
앨리스는 흰토끼를 뒤쫓아 복도를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흰토끼는 이미 사라졌 고 앨리스는 뜻하지 않게도 넓은 방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방일까?'
커튼이 길게 쳐져 있기에 앨리스는 그 커튼을 열어 제쳤습니다. 그러자 나무로 된 문이 아주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방을 빠져나갈 수 있는 문 같았습니 다.
'자물쇠가 채워져 꿈쩍도 않네!'
앨리스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열쇠가 있어 이 문을 연다고 해도 나는 나갈 수 없을 거야. 어쩌지? 나가는 문 이 이렇게 작으니까…….'
앨리스는 눈물을 닦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방 한 가운데는 유리로 된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열쇠와 마실 것이 든 병이 있는 것입니다. 병을 들어보니, <나를 마셔요.>.라고 쓰여진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무슨 좋은 수가 생길지도 몰라.'
앨리스는 병마개를 열고 주욱 마셨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이상해지더니 앨리스 의 몸이 부쩍부쩍 줄어들었습니다. 끝내는 병과 같은 크기가 되었습니다.
'내 몸이 이 정도로 작아졌으니 저 문을 빠져나갈 수 있겠어.'
앨리스는 무척 기뻐했지만, 문의 열쇠는 유리 탁자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 다. 그것이 손에 잡힐 듯 빤히 보이는데도, 난쟁이처럼 몸이 작아진 앨리스로서는 탁자 위를 기어오를 수 없었습니다.
'힘껏 올라가야지. 낑낑.'
하지만 유리는 반들반들하고 미끄러워서 도저히 오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탁자 아래에 비스켓이 든 상자가 보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살펴보았더니, <나를 먹어요.>라고 쓰여진 종이 쪽지가 보 였습니다.
'좋아.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 봐야지.'
앨리스는 그 비스켓을 먹었습니다.
'아니, 내 몸이 왜 이렇게 커져?'
앨리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이 아주 커져서 이제는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 였습니다.
'어쩌나? 이제는 너무 커져 버렸어. 자물쇠로 문은 열 수는 있겠지만 발끝밖에 못 나가겠는 걸.'
앨리스는 끝내 엉엉 울었습니다.
"어쩜 좋아. 엄마! 엄마!"
이 방에 갇혀 있다간 집에 영영 못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에서 나갈 수 없게 됐어. 그 흰토끼는 벌써 어디론가 가버렸는 걸. 큰일난 거야.'
눈물 방울이 뺨을 타고 내리더니, 어느새 앨리스의 발 밑에는 그 눈물로 인해 커다란 연못이 생겨났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나, 이를 어째!'
그런데 눈물이 만들어 놓은 연못에서 무엇인가 동동 떠다니고 있는 게 보였습 니다. 그것은 <나를 마셔요.>라고 쓰여져 있던 작은 병이었습니다.
'아직 병 속에는 조금 남아 있을 거야.'
앨리스는 병을 집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습니다. 금새 효과가 나타 났습니다. 앨리스의 몸이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앨리스에게 이젠 연못이 넓은 바다와 같았습니다.
"어머, 빠져 버렸네. 난 이젠 어떻게 되는 거야!'
앨리스는 사나운 물결에 휩쓸려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쇠 구멍으로 휙 밀려서, 방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밖의 넓은 들판에서는 불가사리와 까마귀와 여러 동물들이 흠뻑 젖은 몸을 말 리고 있었습니다.
앨리스는 있는 힘을 다 해 겨우 육지에 다을 수 있었고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 갔습니다.
"안녕! 새처럼 생기셨는데……. 누구세요?"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새가 앉아 있기에 앨리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 보 았습니다.
"내 이름은 '도도'야."
"혹시, 흰토끼를 보셨나요?"
그런데 도도가 대답하는 대신 뒤에서 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흰토끼는 없지만, 디?댐이라면 여기 있어."
앨리스가 되돌아 보니 그 곳은 숲의 입구인데, 우스꽝스러운 꼴을 한 두 남자 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야아, 야아. 우리는 쌍둥이 형제."
"나는 디."
"나는 댐."
그들은 쉬지 않고 춤을 추며 떠들어댔습니다.
앨리스는 자꾸 떠들기만 하는 그들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 다. 그러자 깨끗하게 다듬어진 정원이 나타났고 통나무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그 리고 이층 창문이 활짝 열리며 얼굴을 내민 것은 그 흰토끼였습니다.
"흰토끼야, 마침내 너를 찾았어!"
앨리스가 큰 소리로 흰토끼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흰토끼는 앨리스를 보고 무 척 당황해 하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너무 늦었어, 마리안!"
"난 마리안이 아니라 앨리스야."
"마리안, 서두르지 않다가는 시간이 늦겠다. 이층의 장롱 서랍에 있는 내 장갑 을 가져다 줘."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흰토끼가 자기를 잘못 알아본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그래도 흰토끼가 시키는 대로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디 있을까? 어, 이게 뭐야?'
흰토끼의 장갑을 찾던 앨리스에게 상자 속에 든 사탕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 서 무심코 입에 넣었더니, 이런,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나, 내 몸이 자꾸 커지네?'
앨리스의 몸이 커지면서 손과 발이 집밖으로 삐어져 나왔습니다. 지붕이 터지 면서 머리도 불쑥 삐어져 나왔습니다.
"괴물이다! 나 좀 도와 줘!"
집밖에서는, 창문과 지붕을 뚫고 불쑥 삐어져 나온 앨리스를 보고, 흰토끼가 비 명을 질러 댔습니다.
흰토끼의 비명 소리를 듣고 도도가 달려왔는데, 도도는 그러나 조금도 당황하 지 않았습니다.
"저런 괴물은 연기를 쐬이면 금방 도망칠 거야."
도도의 말에 흰토끼는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워 올렸습니다.
앨리스는 연기를 맡기 싫었습니다. 쿨룩쿨룩 거리며 팔을 뻗어 사방을 더듬었 습니다.
'어머나, 당근이 손에 잡히네!'
앨리스는 흰토끼네 밭에 심겨져 있는 당근을 뽑아 슬쩍 깨물었습니다. 틀림없 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역시 그 큰 앨리스의 몸이 차츰 작아졌습니다.
'어머나, 마치 개미처럼 되어 버렸는 걸.'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앨리스는 흰토끼에게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도망을 쳤습니다. 한참을 도망친 후 앨리스는 자유롭게 된 것이 기뻐 풀숲으로 팔짝팔짝 뛰어 들어갔습니다.
'영락없는 정글이구나. 어디가 어딘지 통 알 수 없네.'
앨리스는 벌레만큼 작아져 있기 때문에, 가느다란 풀 한 포기도 커다란 나무처 럼 보였습니다.
풀 포기 뒤에 숨어 있으니 옆으로 이상한 벌레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벌레는 빵으로 된 날개를 달고 있는 것 같네.'
'저 벌레는 유리같이 말갛게 비치는 몸뚱이를 하고 있어.'
'어, 저기 날아다니는 것은 잠자리일까, 말일까?'
앨리스는 여러 벌레들을 참 신기한 듯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이번에는 꽃들 이 활짝 피어 있는 오솔길로 찾아갔습니다.
"아가씨, 어디 가죠?"
목련꽃이 앨리스에게 물었습니다.
"글세……."
"집으로 가는 건가요?"
"목련꽃아, 이 길이 집으로 가는 길 맞아? 어쨌든 나는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고 싶단 말야."
"저도 모르겠네요."
"쳇!"
앨리스는 다시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커다란 버섯 위에 앉아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감자벌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안녕, 날씨가 좋군요."
앨리스가 상냥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 그래. 놀기 좋은 날씨야."
"난 원래의 크기로 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감자벌레 씨!"
"그건 아주 쉽지. 나도 변하니까 말이야."
"어떻게요?"
"나를 봐라."
감자벌레는 자랑을 하듯 별안간 나방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어딘가로 팔랑팔 랑 날아가며 말했습니다.
"이 버섯을 먹어 보렴. 한 쪽을 먹으면 몸이 커지고, 다른 한 쪽을 먹으면 몸이 작아진단다."
그 말을 믿고 앨리스는 버섯의 양쪽 가장자리를 한 조각씩 뜯어서, 시험삼아 먹어 보았습니다.
'어머나, 너무 커져 버렸네!'
정말 앨리스의 몸이 훌쩍 커져 버렸습니다. 숲속에서 가장 큰 나무가 바로 턱 밑에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어? ……. 내 머리 위에 새 둥지가 있나 봐.'
앨리스의 머리 위에는 새 둥지가 얻혀 있었습니다. 키가 갑자기 쑥 커지면서 나뭇가지의 새 둥지가 앨리스의 머리 위에 그대로 얻혀진 것입니다. 한가롭게 알 을 품고 있던 새들은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서 허둥거렸습니다.
"우리의 둥지를 내려 줘."
"그래.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앨리스는 새 둥지를 나뭇가지에 옮겨 놓고,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버섯을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앨리스는 원래의 몸 크기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이, 다행이야. 이 크기가 아주 적당해. 남은 버섯은 주머니 속에 넣어 두어야 지.'
그런데 나무 위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봐요, 아가씨! 어디 가는 거지?"
앨리스가 깜짝 놀라 쳐다보니, 고양이가 방글방글 웃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이어 말했습니다.
"배 고프지? 저 쪽으로 가 봐."
"거기에 무엇이 있나요?"
"거기 가면 늘 장난기 많은 3월 토끼가 다과회를 열고 있단 말야. 빨리 가 봐."
앨리스는 고양이가 가르쳐 준 곳으로 좀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커다란 식탁이 놓여 있고 3월 토끼와 낡은 모자 장수가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어서 와요, 아가씨. 이리 앉으세요."
"고마워요."
앨리스가 자리에 앉자 3월 토끼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생일이 아닌 날을 축하 하기 위해 파티를 여는 거예요."
"어머나, 우리는 보통 생일날을 축하 하는데요."
"그 점이 다른 거죠."
3월 토끼와 모자 장수는 자랑을 하듯 말을 이었습니다.
"생일은 일 년에 한 번 뿐이지만, 생일 아닌 날은 하루 빼고는 일 년 내내 매일 이잖아요."
"그러니까 날마다 파티야. 자, 생일이 아닌 날을 축하 하자구!"
앨리스는 그곳을 빠져 나오며 말했습니다.
"별 일도 다 많네요. 저는 가야겠어요."
앨리스는 한참을 걸어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제멋대로 된 안내판들 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리로>, <저리로>, <아니, 이리로>, <가다가 되돌아 오길>
앨리스는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올바른 안내판일까?'
한참을 그냥 걷다 보니, 이상한 개가 나타났습니다. 얼굴은 빗자루로 되어 있 고, 꼬리는 먼지떨이로 되어 있는 개였습니다.
'참 이상한 개 다 보겠네.'
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앨리스가 걷고자 하는 앞길을 빗자루와 먼지떨이로 깨끗이 청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앨리스가 지나가면, 그 발자국을 깨끗이 지우 는 것입니다.
앨리스는 마침내 막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 도 없었습니다.
앨리스가 울쌍을 짓고 있자 나무 위에서 고양이가 내려왔습니다.
"이봐요, 아가씨! 길을 잃었나?"
"으응. 나 큰일 났어. 고양이야, 이곳을 빠져나가는 길 좀 가르쳐 줘."
"걱정 말고 나를 따라 와."
고양이는 앨리스를 큰 떡갈나무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발로 나무를 툭 건드렸습니다.
"어머나, 나무 줄기가 벌어지네?"
나무 줄기가 벌어지면서 그 속으로 긴 오솔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에는 아름다운 궁전이 보였습니다.
"저 곳은 하트의 여왕님 궁전이란다."
"내가 저 궁전에 들어가야 해?"
"글세. 아뭏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할지 모르니까……."
고양이가 알려준 대로, 앨리스는 오솔길을 걸어 궁전 쪽으로 갔습니다.
'참 이상한 곳이야. 카드 모양으로 된 사람들인가?'
남자 셋이 궁전 앞에 있는데, 그들의 생김새는 영락없이 트럼프의 카드와 같았 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페인트통을 들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어서! 여왕님께서는 흰 장미를 싫어하신단 말야."
"맞아. 나무를 잘못 심었다는 걸 아시면……."
"큰일 나지. 어서 페인트칠을 서두르자구."
그들은 여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흰 장미에 빨간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그러면 흰 장미가 빨간 장미꽃이 되리라 믿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윽고 요란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빠바바바빵~!'
앨리스가 돌아보니, 바로 그 흰토끼가 나팔을 불고 있었습니다.
"어머, 흰토끼야! 안녕!"
"떠들지 마. 하트의 여왕님께서 행차하신다!"
흰토끼는 앨리스에게 아는 체도 않고 소리만 질러 댔습니다.
이윽고 트럼프 병사들을 수없이 거느리고 하트의 여왕이 나타났습니다. 여왕은 문득 앨리스를 발견하고는 엄숙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거기 있는 꼬마 아가씨, 너는 누구냐?"
"저는 앨리스입니다."
"음. 앨리스라구? 지금부터 크리켓 대회를 시작할 참이다. 그러니 너도 함께 가 도록 하자."
"크리켓이라니……."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크리켓 대회장으로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시합이었습니다.
"저 홍학을 잡아 와. 홍학이 라켓이거든. 그리고 이 아기 곰을 공처럼 치는 거 야."
홍학으로 아기 곰을 쳐서 트럼프 병사가 엎드려 만든 문을 빠져나가게 하는 시 합인데, 홍학도 아기 곰도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좀처럼 되질 않았습니다. 그 렇지만 여왕은 재미있는지 크리켓 시합을 열심히 했습니다.
"어머, 창피스러워!"
여왕이 홍학 라켓에 치맛자락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호호호."
그 꼴이 너무 우스워서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여왕이 크게 화를 냈습니다.
"저 앨리스를 붙잡아 당장 사형에 처하라!"
"녜?"
"빨리 사형에 처하라!"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앨리스가 어쩔 줄 몰라하자, 평소에도 점잖은 임금 님이 앨리스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러기 전에 재판을 해야 하오. 우리 나라는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니까."
그리하여 앨리스는 트럼프 병사들에게 이끌려 광장으로 갔습니다. 죄인처럼 무 릎이 꿇렸습니다.
그런데 여왕이 재판석에 앉자마자 소리쳤습니다.
"목을 베어라! 이것이 재판이니, 빨리 저 앨리스의 목을 베어라!"
앨리스에게 큰일이 났습니다. 앨리스는 슬피 울다가 생각을 가다듬고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버섯 조각을 꺼내 몰래 씹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앨리스의 몸 은 금새 부쩍부쩍 커지는 것입니다.
"오, 저런 괴물이 있나!"
"세상에!"
임금님도, 여왕도, 또 트럼프 병사들도 앨리스를 올려다 보며 겁에 질려 버렸습 니다. 트럼프 병사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괴물이다! 빨리 붙잡아 목을 베어 버려라!"
여왕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렇지만 앨리스는 이제 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교만하고 잘난 체 하는 여왕님! 나는 앨리스예요. 나는 당신네 따위에겐 붙잡 히지 않아요."
앨리스는 손을 뻗어 트럼프 병사들을 휙 쓸어버렸습니다. 병사들은 와르르 흩 어지면서 도망을 쳤고, 여왕은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아니, 내 몸이 왜 작아지는 거야!'
앨리스의 몸이 갑자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끝내는 아주 조그맣게, 트럼프 병사들과 같은 크기로 줄어 버렸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저 앨리스를 잡아라!"
트럼프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쳤습니다. 앨리스는 있는 힘껏 도망을 쳤지만, 아 무리 달려도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나가는 문은 어디에 있단 말야?'
뒤쫓아 오는 트럼프 병사들의 수는 자꾸만 불어났습니다.
"앨리스를 놓치지 말고 붙잡아라!"
"붙잡아라! 죽여라!"
뒤를 돌아 보니, 트럼프 병사들뿐만 아니라 3월 토끼도 뒤쫓아오고 있었고 모 자 장수, 도도, 고양이 등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것들 모두가 앨리스를 뒤쫓아오 는 것입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앨리스는 정신없이 도망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귓가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만 잠에서 깨거라. 앨리스야."
앨리스는 눈을 뜨며 식은땀을 닦았습니다.
"어머나, 제가 꿈을 꾸었나요?"
"그래. 이젠 집에 돌아갈 시간이란다."
앨리스가 주위를 살펴보니, 맨 처음 언니와 함께 있던 그 들판의 큰 나무 그 늘이었습니다.
"앨리스, 무슨 꿈을 꾸었길래 그러니?"
"휴, 참으로 이상한 나라에 다녀 왔어요."
앨리스는 새끼 고양이를 안고 언니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면서도, 그 이상한 나라에서 겪은 일들이 또렷하게 기억이 났습니다.
<동화작가 김문기>
|
|
|
|
|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