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나라우수작품
일기/생활문/수필
독서감상문/영화감상문
여러가지 독서 감상활동
설명문/논설문
기록문/기행문
동화/소설
편지글
동시/시
토론하기
작가님께 편지쓰기
독서신문 만들기
엄마,아빠가 쓰는 글
글쓰기마당 게시판
100자 책 추천마당
글나라 독서/글쓰기 대회
- 전체 대회 공지
- 편지쓰기 대회
- 백일장 대회
- 독서 감상문 대회
HOME > 글쓰기마당 > 글나라 독서/글쓰기 대회 > 독서 감상문 대회
정지영 (gipsy25) 일반부 우수상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슬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슬픔>
- 한강, <채식주의자>을 읽고 -

아, 입이 없는 것들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 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그렇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식물은 입이 없구나. 그리고 나는 입이 없는 식물들을 죽인 사실이 불안해서 인지 그 이후로 한 번도 집에 식물을 두거나 길러 본 적이 없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채9)를 가진 영혜는 이제 말이 없다. 그녀는 남편(채식주의자), 형부(몽고반점), 언니(나무 불꽃)의 시선에 의해 바라봐진다. 연작 소설로 이어진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는 죽음 가까이 이른다. 그녀가 점점 식물이 되어가는 이유나 기원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그 상처는 그녀의 몸속에 녹아 있으며, 마치 몽고반점이 꽃으로 화하듯, 처음엔 고기를 거부하고,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되어 갈 뿐이다. 소설에서 그녀가 점점 식물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상처의 기원은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과 꿈으로 드러난다. 한편,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현실에서는 채식을 하지만, 꿈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죽고, 죽이는 '강한 욕망'을 반복한다.

그녀의 최초 '고기'에 대한 상처는 그녀가 고기를 거부하자 강제로 먹이려는 '그녀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유년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여러 바퀴를 올려 죽게 만든 후, 그날 저녁 거리로 그것을 낸다. 이후에 다시, 그녀는 저녁을 재촉하는 남편 때문에 손가락을 베고, 그때 떨어져 나간 칼조각을 씹는 남편을 본다. 남편은 그녀에게 화를 낸다. 남편이 칼조각을 씹게 된 것은 그녀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녀를 문 개를 죽게 만든 것 역시, 그녀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칼조각을 씹게 되고, 개는 아버지에 의해 처참하게 죽는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고기' 탓이라고 여기며 '의도적으로' 채식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의도하지 못할 때는 꿈에서처럼 '동물적 본능'이 살아난다. 그리고, 끝내, 병원에서 벗어난 그녀는 손아귀로 죽인 새 한 마리를 들고 있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선택한 것은 음식이 성과 연관된다거나 육식이 폭력적이라는 것처럼 여성의 상처와 연관되는 일반적인 것이다. 여기서 ‘꿈’은 아직 채식으로 덜 진화된 그녀의 억압된 것을 표출하는 ‘소망 충족’으로 볼 수 있다. 꿈은 육식(상처), 채식(치유)으로 이원화된 세계를 과도기적으로 엮는다. 영혜는 그 세계조차 견디지 못하고, ‘몽고반점’에서 이미 식물이 된 그녀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고기가 가슴에 걸려 있다.’, ‘모든 것이 고기 탓이다.’ ‘육식’과 관련된 최초의 상처, 자신이 문 개를 죽이고, 그 개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처벌해야 하는 대상을 처벌한 과정에서 들어온 ‘죄의식’은 그녀의 몸을 철저히 혹사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마치 ‘꽃잎’(장선우)의 소녀(이정현)가 살기 위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던 죽은 어머니를 안간힘을 다해 떼어 놓고, 이후에 미쳐 자신의 팔목을 돌로 문지르며 자해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영혜의 상처가 ‘광주’처럼 시대가 공감할 만하고, 맥락상 이해될 만한 것인가. 그렇다면, 밀양(벌레이야기)의 ‘신애’는 어떤가. 영혜의 상처가 남편은 교통사고로 죽고, 하나 뿐인 아들은 유괴당해 죽은 ‘신애’의 것과 비교가 될 만한가. 영혜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공포로 음식을 거부하며 점점 죽어 간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왜 그리 아프다는 말인가.

영혜에 비해 인혜는 그녀의 상처의 기원이 된 ‘아버지’를 견뎌낸다. 그렇다면, 상처는 다른 몸의 기생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그러나, 자매는 인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에 의해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의 상처로 존재하기도 한다. 육식과 채식, 어느 것이 상처이고 치료인가는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영혜는 ‘자신이 믿는 건 자신의 가슴뿐이라며 둥근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채43)라는 독백을 하지만, 자신이 점점 말라가는 것조차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건가’(채43)라며, 다시 의문을 품는다.

영혜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꽃이다. 영혜는,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르는 한 그루 나무다. 영혜는,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의 구절처럼 병든 세상을 아픔 없이 견디는 자들에 대한 조용한 흐느낌이다. 거대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들로부터 점점 오그라드는 한없이 떨고 있는 그녀들인 영혜는, 서서히 꺼져만 간다.

* 한강, <채식주의자>
* 박영근 詩, 저 꽃이 불편하다
* 연작 중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씀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