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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숙 (judyhsh) 일반부 우수상
시간을 넘어선 조우(遭遇)를 기다리며....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시간을 넘어선 조우(遭遇)를 기다리며
-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에게 오늘의 뉴스다.”
김현승 시인의 ｢창(窓)｣의 일부분이다. 창이 의미하는 부드러움과 소박함, 그 일상성이 좋다. 창을 뽀득뽀득 소리나게 닦으면 내 눈과 마음이 닦이듯, 파란 하늘이 온전히 비춰지는 맑은 창처럼 내 마음도 청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오랜만에 잿빛 구름을 걷어 버리고 나온 햇살의 가벼운 움직임, 책장의 보풀조차 따라 일어나 햇살이 공중에서 지나가는 길을 보여주며 함께 동동거리는 풍경, 창호지 바른 문을 건너왔지만 환하고 따스하기가 바깥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이리저리 방바닥을 명랑하게 굴러다니는 햇살. 바로 ‘청장서옥(靑莊書屋)’이라 불리던 ’아정(雅亭)‘의 서재 풍경이다. 주인공의 저서"耳目口心書"라는 책이름처럼 귀와 눈으로 듣고 본 것, 입과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한 것을 모은 이 책을 대하면서는 눈앞에, 혹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책이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마음으로 애쓰며, 눈으로 궁금해 하며, 설레며, 소리 내어 읽었다.

조선후기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자 그룹 정도로만 배우고 알았던 이들(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을 청나라에까지 四家詩人으로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경서(經書)와 사서(四書)에서부터 기문이서(奇文異書)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난 인물들이었음을 알게 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한때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과 눈꺼풀의 섬세한 떨림이 있었을 이 땅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모습을, 책을 통해 이만큼의 상상이 가능하도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읽는 내내 주인공이 홀로 글을 읽으며 지낼 수밖에 없던 외로움을 함께 느끼며 그의 심연을 따라 안타까워도 하고, 혹은 당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분노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이 느낀 굶주림의 고통과, 날 때부터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실학(實學)의 본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으며, 그래도 막막한 세월 그를 견디게 해주었던 그의 막역한 벗들과 따뜻한 스승(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릴 줄 아는 깊이 또한 지녔던 정조임금을 行間에서 만나는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은 내게 두고두고 되풀이하여 읽을 수 있는 책,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책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문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곳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얼로 인한 신분의 굴레도, 출신성분의 차이도, 시각장애도 없는 하늘의 ‘청장서옥(靑莊書屋)’이나 ‘유리창 거리’에서는 漢書를 이불 삼고 論語를 병풍 삼아 마음껏 책에 묻혀, 책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편안하게 젖어 계시리라. 이백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雅亭과 보르헤스가 만나 그들을 열광시켰던 보석 같은 책들이 그리스 신전의 열주처럼, 혹은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한꺼번에 눈길을 돌려 도열해 있을 것만 같은 책의 바다, 그 무궁한 지혜의 공간에서 넘실대는 바다를 건너고 굽이치는 산맥을 넘으며 책을 통해 문학을 논하고 시대를 평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상을 이미 넘치게 받은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세상의 변두리가 아닌 하늘의 중심에서 逍遙遊하시기를…….
그리고 그 어느 날, 날마다 책속을 누비느라 행복하면서도 고단했던 발걸음을 멈추고, 눈부신 햇살조각이 비추는 가운데 나와도 반갑게 遭遇할 수 있기를…….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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