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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현 (raylomo) 고등부 최우수상

치유,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위한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를 읽고-

그 날은 유난히 서늘했던 늦여름이었다. 방학도중 찾아간 학교 도서실에서 나는 첫사랑에게 잔인한 이별선고를 받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다행히도 텅 비어 눈물을 세상에서 숨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과 처음 만나게 된 건, 개학 이후 도서실에 들어온 신간들을 정리하면서였다. 희고도 따뜻한 공간 위에 단발소녀의 고운 옆모습이 그려진 표지. 그 이지적이고도 새초롬한 모습은 나로 하여금 손을 뻗게 하기에 충분했고,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라는 제목은 상처받은 내가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빠져들 듯 그 책을 빌렸고, 어린 내가 그 심오한 주제에 대하여 완전히 알지 못할지라도 그 책의 내용은 첫사랑의 아픔으로 허덕이던 날 감싸주었다.
그 이후, 나는 아주 특별한 두 번째 연애를 하게 되었지만, 참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현실을 넘지 못한 채 넉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우연히 찾아간 서점에서 낯익은 소녀가 보인다 싶더니, 운명처럼 다시 그 책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는 내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영원할거라 믿은 사랑의 죽음, 그 앞에서 태연할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뒤돌아보면 나 역시 보통 사람들과 똑같았다. 실연당했던 그 순간의 나는 죽을 듯이 힘들었고 떠나간 사랑의 허무감에 혼이 빠진 사람처럼 지내고, 울고, 또 분노했다. 특히나 첫 번째 사랑이 떠나갈 땐 몰아치던 분노가 더욱 심했었다. 그리고 분노가 멎은 후 내게 남은 건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추한 분노 자체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나서는 이런 죄책감이 서서히 치유되어가기 시작하였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분노가 당연한 거라고, 내가 이렇게 슬픈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며 책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꼭 내 상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책의 내용은 지친 내게 전하는 이성의 위로 그 자체였다.
만일 내가 여전히 그와 함께 했었더라면, 내가 이별의 순간에 똑같이 얼굴 붉히지 않았더라면.. 이런 후회들이 세상의 말처럼 어리석은 미련이 아니라고 책은 내게 알려주었다. 오히려 그런 아름다운 순간들은 내일을 위한 마음의 양분이라고.
물론 실연 후의 상처가 책으로만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아픔이 무뎌진 어느 날 아침, 더 이상 베갯잇을 적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성숙해진 것인가. 그렇기에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시려졌다. 사랑이라는 공통분모 아래서 겪는 세상 사람들의 사연이고 가슴 아픈 나의 이야기니까. 그러나 성숙해진 우리는 실연이 녹은 새로운 자아라는 봄에서 다시금 기지개를 편다. 마치 내가 두 번째 실연에서 담담히 답하며 그를 떠나보냈던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연인을 보내며 내가 느낀 것은 나는 아직 상대의 깊은 사랑을 바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헤어지며 그들이 내게 전한 모진 말 중의 하나는 정말 지겹다는 것이었다. 왜일까, 어째서 그들은 내게 그런 말을 했어야 했을까. 난 그들을 위해서 모든 걸 헌신했다고 믿었는데, 하지만 바로 그런 의존어린 희생이 문제였다는 것을 한 사례를 읽고 깨닫게 되었다.
책에 실린 어떤 여자의 이야기, 어린 시절 관심과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과 단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하는 그녀. 그래서 항상 상대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그것을 위해선 한없이 희생하고, 그걸 알아주지 않는 그에게 분노하고 매달리는, 그런 그녀.
그녀의 이야기에서 난 어렴풋하게 나를 보았다. 사랑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사랑하는 그들을 옥죄어 옆에 두기만 급급할 뿐 그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도 깨닫지 못 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서 그렇게 마음이 아팠나보다. 그녀가 너무나 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에.
물론 유년기가 무조건 순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몇 번이고 거절당하고 상처 입는다.
나의 경우엔 나를 믿고 책임감을 부여하는 사람만 있을 뿐, 진정으로 내가 기대어 쉴 수 있던 버팀목 같은 사람은 없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또한 불안은 뿌리 깊게 박혀있지만, 성숙해진 나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슬플지언정 화내지 않았다. 왜냐면 주변 사람들은 멀리 있기에 날 챙겨주지 못하고 그저 표현이 서툰 것뿐이란 걸 자란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 역시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깨닫고 나서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단다.
떠나간 사랑, 홀로 남은 나. 그 사랑 속 그들은 내게서 어린애를 보고 그 아이의 고집에 지쳐 떠나갔다. 물론 그 문제는 내 스스로 알고 있다고 해도 쉬이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죄책감이 남았다. 난 내 사랑을 스스로 죽게 만든 것이니까. 허나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도, 나는 오랜 내 불안을 잠재웠고 좀 더 키가 크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는 아직도 완전히 자라지 않았으며 아마 영원히,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다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다 크지 못할 키, 부단히 노력해 성장하고자 하는 이유가 뭘까 라며 고민할 수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있다. 우리의 마음속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어리기에 언제나 불안하다. 그런 그 아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단 하나, 다시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것이 사랑이라더라.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고 또 자신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런 든든한 사랑아래 그 아이는 다시 행복해져서 성장할 용기를 갖게 된다는 책의 한 구절. 우리가 끊임없이 그 아이를 키우려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 달콤함을 찾아 빠져들려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말 중에, ‘사랑받는 능력과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을 곱씹으며 내가 걸어온 사랑의 여정을 뒤돌아 바라보니, 그곳에서는 너무 어려 휘몰아치는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때의 나는 비록 어렸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새 이만큼이나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지나 온 추억들은 밤하늘 아름다운 별빛마냥 내 마음에 총총히 박혀 가끔씩 힘들고 괴로운 시절, 그 시절에 영롱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이 얼마나 멋진 축복일까, 우리가,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나는 18살, 다른 또래보단 적다면 적은 만남이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나눴던 애정 어린 순간들은 결코 다른 또래들보다 덜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내가 나눴던 사랑이 비록 아팠을지언정 헛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이러한 사랑에 대한 믿음에 더욱 힘을 실어다 주었다. 이 책을 쓴 작가 김혜남 님은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그만큼 인간적인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원초적이고도 예민한 감정을 더욱 쉽게 풀이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간혹 상상해본다. 만약 그날 도서실에서 실연당하지 않아서, 이 책을 영영 못 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아마 나는 사랑에 대해 지금같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전의 사랑들이나 앞으로의 그들을 더욱 열심히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내겐 소중하다, 무릇 좋은 책이란 독자로 하여금 한없는 공감을 불러내는 책이 아니던가. 사춘기의 한 끝을 단아히 장식해준 이 책에게 나는 감사한다.
가끔씩 사랑을 할 때나 사랑에 빠지기 전, 이게 바른 사랑일까, 진짜 내 운명일까 하는 의심도 많이 들었었다. 그런 사랑에 대한 잡다한 의심들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일 거다. 적어도 나는 책을 읽기 전, 세상에는 이상적인 사랑의 정석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뿐이고 운명적인 소울메이트는 존재하기에 평생의 과업은 그 운명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그것이 바른 사랑인줄로만 믿었다.
물론 그것이 틀리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런 나의 태도에 이 책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사랑의 모습은 정말 많은 것이 있는데, 두근거리는 떨림이 미운 정 고운 정 오만 정으로 뒤덮혀져 더 이상 달콤한 떨림이 없어지는 것이 왜 사랑이 아니냐며, 그리고 정을 왜 권태로 치부하며 고민하고 있는 상대와 얘기도 없이, 노력도 없이 끝내버리는 거냐며. 그런 교훈을 던져주며 더 깊이 사랑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제야 감상어린 고백을 하자면, 나는 두 번째 사랑의 죽음에 버티다가 또 버티다가,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해 사랑했던 그 상대에게 있는 대로 화를 내고 말았다. 비록 그것은 내 인내의 끝을 보여주는 일이었지만, 아마 그 일 이후로 그 상대는 나에게 남은 최소한의 호감조차 산산조각 나서 더 이상 나를 떠올리지도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물론 내 행동이 많이 후회되지만, 사랑이 말해주니까. 누군가는 감흥 없고 지루한 일이라며 흉을 볼지도 모르지만, 책이 전해준 말처럼 세상엔 사랑만큼 달디 단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의 힘, 그것들의 뿌리라고 믿기에 나는 바란다. 비록 사랑불능자라도 언젠가는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또 다짐한다. 이전의 사랑이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가슴 아픈 추억들로 딛고 일어서 언젠가 만날 또 하나의 사랑을 더욱 더 사랑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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