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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고유정) 일반부 우수상

아빠의 가방

너무도 무뚝뚝한 아빠는 몇 달 전부터 어깨에 메는 가방을 들고 출근을 하셨다. 나는 그렇게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에 사실 별 관심 없이 생각했었다. 아니면 전 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 같아 󰡐어디 헬스장에 들리셨다가 회사에 가는 거겠지!󰡑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밤늦은 시간에 아빠와 엄마가 공과금과 세금, 생활비,… 등 여러 가지 돈 문제로 말다툼하는 내용을 듣고서야 그 가방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광고기획사를 운영하셨던 아빠가 사업이 잘 되질 않아 오래전에 사업정리를 하시고 아빠는 우리 가족들 모르게 힘든 일을 하러 다니셨던 것이었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노가다’ 일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오래전부터 양복을 입지 않은 채, 구두도 신지 않고, 거의 낡은 운동화와 점퍼를 입고서 아침 일찍 나가셨다. 무심코 열어 본 그 가방 안에는 기름때가 흠뻑 묻은 장갑과 시큼한 땀 냄새가 베여 갈아입으신 옷가지 등이 헝클어져 있었다. 간혹 빨랫감으로 나온 아빠의 웃옷에는 소금 끼로 얼룩덜룩 할 뿐 아니라 퀴퀴한 쉰내가 코를 찔러 댔었다. 그리고는 비누로 몸을 몇 번씩 씻어대는 아빠의 모습은 그 힘든 생활의 둘레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구차한 변명 따위를 하지 않으려는 커트라인 때문이었을까?

며칠 전 새벽녘 더위가 예사롭지 않았다. 달력은 분명 6월을 펼치고 있었지만 텁텁한 같은 더위가 조그만 거실을 찜질방처럼 바꾸어 버렸다. 밖은 이름표가 바뀌어 버린 계절이 싸움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아이러니컬한 계절의 기선제압이 우습기까지 했다. 갑자기 어느 이름모를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을 아빠가 나의 뇌리를 휭 하니 한바퀴 돌더니 멍하니 멈추어버렸다. 지난겨울 그 살얼음 같은 추위 속에서 힘든 일 하시느라 아빠의 얼굴은 빨갛게 멍울져 있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빠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서 이제는 거의 대머리에 가깝다. 모든 것이 힘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차례 풍파를 만난다지만 ‘우리 아빠에게 이렇게 고난이 빨리 찾아올 줄이야’ 상상해 본적도 없다. ‘어떻게 하면 아빠를 도울 수 있을까?’하고 깊은 고민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수시로 떠오르는 아빠의 가방이 생각나서 눈물과 콧물이 뒤엉킨 시간의 둘레에 헤매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안 부위기도 위기로 덮이는 것 같았다. ‘약간은 가정형편이 어렵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많이 힘든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속상했었다. 처음에는 이 어려운 형편이 무슨 말을 해도 곧이들리지 않았다. 아니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잔소리로 바뀌는 듯 하여 어떠한 말을 듣는 것조차도 힘에 부쳤다. 며칠은 풍족한 옛날의 그리움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더니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자연스레 힘든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리만큼 신기해했었다. 그래도 한번씩 옛날의 기억들이 스쳐가곤 했었다.

내 마음도 이렇게 속상한데 ‘아빠,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드실까?’
지금 아빠는 아마도 일정한 직장이 없이 여러 곳에서 일당을 받는 일을 하신다고 뒤늦게 엄마가 귀띔을 해주어서 알게 되었다.

한 달 여전부터는 아빠가 허리를 다쳐서 부황을 뜨신다. 시커먼 피가 쏟아지는 아빠의 허리를 보고는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옛날 같으면 좋은 식당에 가서 점심을 사드시고 하셨겠지만, 지금은 가정형편상 주머니 사정이 좋질 않아서 엄마가 조금씩 주시는 용돈으로 버스비도 겨우 융통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에게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알고 이것저것 사달라고 졸라 대곤 했었다. 워낙 인정이 많으신 아빠는 그 어려운 형편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아이스크림도 사주시고, 간혹 통닭도 시켜 주시었다. 그로인해 엄마에게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버릇없이 구는 못된 년, 철없는 가시내, 이 가시내가 집안 형편도 모르고.’ 하면서… 그럴 때 엄마의 회초리를 뺏어들곤 나를 꼬옥 안아주시며 눈물이 글썽글썽 하시던 아빠. 옆집 아주머니가 “너그 아빠 어디 다니시노!” 하고 물으시면 ‘큰 회사에 다닌다’고 얼버무렸다. 아빠 직업이 창피해서가 아니라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음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 앞에 놓여 있는 하얀 도화지에 무엇부터 그려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내가 그 하얀 도화지를 황금색 물감으로 듬뿍 듬뿍 멋있게 채워 그려 놓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고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의 사랑에 정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세상에서 제일 흔한 거짓말이라지만 오늘 만큼은 나도 거짓말 같은 흔한 거짓말을 해보고 싶다.

󰡐아빠, 엄마 ! 너무 너무 사랑해요. 늘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어느 날 집 밖 창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시는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 가여워 보이고 슬퍼 보였다. 마음속으로 ‘아빠 힘들어도 이겨내세요. 부디 용기를 잃지 마세요.’ 하고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말았었다. 그 힘든 와중에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구석구석 우리가족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17평 남짓한 조그만 가방 같은 전셋집이지만 이 조그마한 우리 집이 난 너무도 좋다. 조각보처럼 아기자기한 우리 집, 누추하지만 내 방에서 나는 늘 행복을 느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매일 아침이면 내 방문을 두드리며 “회사 가야지” 하는 아빠의 굵은 목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며 나도 아빠와 같이 가방을 챙긴다. 지금 우리 집은 몹시 어렵지만 우리 가족사랑은 오늘 더욱더 유난히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기적 소리를 낸다. 엄마는 거의 반사적으로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뜨거운 주전자를 기울여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그리고 찬밥 한 뭉치 말아서 저녁을 급히 땜질하는 엄마의 거친 손이 갑자기 분주해 지신다. 미역국 끓이고, 생선 굽고… 늦은 시간이지만 아빠가 새벽에 나가시는 관계로 차려드리지 못한 생신 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일을 해야 하고 하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복잡하고 빠르게 스쳐갔었다.
엊그제였다. 우리 아빠의 54번째 생신. 책상 앞에 놓인 탁상 달력을 확인한 후에 뭔지 모를 섬뜩한 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천백원짜리 소주에 꾹 눌려서 컴컴한 방 한 켠에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빠의 모습은 우리가족을 지키기 위한 따뜻한 생활충전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초라한 아빠의 생신 상을 차리면서도 커다란 행복을 주는 아빠가 우리 곁에 항상 자리해주어서 좋았다.
‘우리 아빠, 우리 엄마’ 내 삶에 두 분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재산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우리아빠가 힘들어 할 때마다 피로회복제 같은 아첨 섞인 말을 하곤 한다.
“아빠, 엄마 덕에 행복해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어느 날 TV토크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면 부자라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인기 가수 한 분이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사람이 가장 부자인 것 같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했었다. 그래서 곧장 나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아빠, 어디예요?”
갑자기 묻는 내 목소리에 아빠는 홍두깨처럼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아빠가 돈을 못 벌어서 우리 딸. 용돈도 못 챙겨주고…, 뭐 사고 싶은 것 있나? 말해봐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 갔고 갈께!” 아빠는 했던 말을 또 묻고, 재촉하듯 전화를 끊었다.

‘마음 편하지 않는 거친 일로 고생하시는 우리 아빠, 앞으로는 아빠에게 좋은 일만 생기게 해달라고, 우리 엄마 지치게 하지 마시고 웃는 일 만 있게 해달라고, 우리 집에 복이 펑펑 넘치게 해달라고, 이 어려운 형편을 이겨내고 있는 우리가족모두에게 앞으로 행복한 날만 있게 해달라고, 우리 가족 서로를 아끼며 그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대신하여 오늘도 푹 처진 아빠의 가방에오래 동안 서로의 마음속에 깊게 심어 달라고 … 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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