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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은 (jjse1103) 고등부 우수상
대선을 가까이 두고 있던 초겨울이었다. 길거리에는 입후보 포스터가 골목마다 붙어 있었고 수시로 선거 유세 트럭이 지나다니며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댔다. 낡아서 녹이 슨 우체통에는 선거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집안의 유권자는 엄마뿐이다. 엄마는 시답잖은 듯 우편물을 식탁 한구석에 내려놓고 바느질거리를 다시금 집었다. 엄마도 투표 좀 해. 지금 엄마 나이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대통령 하는데, 투표라도 해야지. 엄마는 내 잔소리에 지겹다고 화를 내는 대신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 학교 다닐 때 친구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어.”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던 엄마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고 엄마는 구멍 난 양말만 바라보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초등학교 때, 자기 꿈을 쓰는 종이에 대통령이라고 쓴 친구가 있었어. 그땐 어렸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통령 됐대?”
“못 됐지. 다른 대학 가면서 장난으로 대통령 되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죽기 전에 전화 받을 수 있으려나 몰라.”
“될지 누가 알아? 이번에 됐으면 좋겠다. 어릴 적 꿈 대통령, 멋있잖아.”
“그렇긴 해. 걔는 자기가 대통령 되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제일 먼저 도와준다고 했었어. 그땐 다 가난했거든. 위로였지.”
엄마는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누렇게 바란 벽지마저도 끝부분이 다 뜯어져 있고, 장판은 기운 듯 쪼가리를 맞춰 놓은 모양새였다. 방은 한 칸짜리 단칸방에, 그마저도 비가 온다 치면 물이 뚝뚝 새는, 지긋지긋한 가난.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소망도 자그맣게 읊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밥을 먹던 도중이었다. 엄마의 휴대전화가 간만에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전화 한 통 올 일이 없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단칸방은 너무도 비좁고 요즘 휴대전화는 너무 좋아서 나는 의도치 않게 전화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엄마의 학교 동창인 것 같았다. 요즘 뭐 하고 지내니 하는 안부에서부터 시작해 중고등학교 동창 얘기도 나오고…… 말은 한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엄마가 전화를 끊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가 누구에게 온 것이냐 여쭐뻔할 정도로 조용했다. 내가 밥을 반 그릇도 넘게 비우고 나서야 전화기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억누르는 목소리였다.
“아직 집이 많이 힘드니?”
“……”
“나, 대통령 선거 나가. 도와달라는 거 절대 아니야. 너한테는 그냥 얘기하고 싶었어. 당선되면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언제 할지 모르겠어서.”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섰다. 겉옷도 하나 걸치지 않고 갔기에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집에 돌아온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엄마는 감기가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전화 다음 날이 대통령 선거일이어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의사는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고 엄마는 투표소에 갔다. 단 한 번도 선거일에 집 밖을 나간 적 없던 엄마에게 있어서 대단한 변화였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부터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십 분에 한 번씩 끊기는 싸구려 티브이를 봤다. 선거 방송은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결과는 엄마 연배의, 여성 후보의 당선이었다. 수많은 대통령 후보 중 단 한 명의 여성 후보였기에 엄마의 친구일 것이라 확신했다. 엄마는 티브이를 응시하다 넋이 나갔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이불 위에 풀썩 누웠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티브이의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이제는 ○○대 대통령인 그녀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카메라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그녀가 지난밤의 통화 상대인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구도의 것으로 전환되었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리포터의 낭랑한 목소리에 그녀는 뜸을 들였다. 전화 속의 정적과 같았다.
“누구 하나 괴로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엄마는 울었다.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라면 낡고 헤진 문 사이로 불어야 할 칼바람이 쥐 죽은 듯이 멈췄다. 선거권 하나 없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새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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