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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yheenamu) 일반부 최우수상

사랑하는 내 동생에게

해가 저물며, 이제 막 그친 봄비로 싱그러움이 더해진 봄밤이 나를 자꾸 밖으로 불러낸다. 비를 흠뻑 맞고 흡족한 듯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연등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어. 마치 연등에서 연꽃향이 퍼지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길 양옆으로 꽤 먼 곳까지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빛나는 연등을 보며 지난 시간들을 생각했어.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 언니 덕분인 것 같아서 언니가 고맙다’는 내 동생!
‘살면서 언니만큼 본받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고 한 내 동생!

절에서 우연히 종무소 일을 거들었을 때,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지. 절집에서, 절이라는 또 다른 사회의 연장선에서 일했던 십오 년이 넘는 시간은 처음에는 다른 누구를 위한 시간도 아니었고, 가족들이나 나 자신을 위한 기도의 시간도 아니었어. 사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 그냥 어쩔 수 없이 일하며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너의 그런 고백은 무의미로 끝날 수 있는 그 많은 소모된 시간들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했단다. 사회에서 낙오되고 절집으로 숨어든 듯, 나의 존재가치에 회의적인 때에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게 해 주었단다. 그런 생각은 절집에서 만난 다른 많은 인연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지. 마음이 아픈 누군가가 눈곱만큼이라도 위로를 받았다면 더 할 수 없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나에게 다가오는 상처 받은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른단다.

우리 집 막내! 칠남매의 막내로 유난히 작고 예쁜 네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은 모두 너를 사랑 했단다. 네가 얼마나 앙증맞게 작았는지 오빠, 언니들이 조그마한 너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서 들고 다녔지. 물론 나도 너처럼 너무 어려서 기억은 못해. 다만 너의 앨범 속에서 보았을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재롱을 부리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타인에게도 사랑을 많이 베푼다는 말을 믿는단다. 이런 믿음은 너를 보면서 확고해졌지.

한 번도 돈이 많았던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살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어려워 졌어. 네가 초등학교 6학년,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어. 학교에서 월급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나에게 행운이었지. 나의 학창시절은 다리에 쥐가 나고, 코피 쏟는 날이 많았지만 너까지 내 힘으로 공부시킬 수 있어서 좋았단다. 엄마와 오빠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난 너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 너를 지켜주고 싶었고, 네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단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어. 너도 똑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야. 혹시 너와 내가 전생에 모녀지간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연인이었을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너한테 진짜 미안해! 네 도움을 받아가며 법원공무원이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3년이 되던 해에 포기하고 말았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법 공부를 하다는 것이 좀 버거웠어. 하지만 제일 두려웠던 것은 한해만 지나면 나이제한에 걸려 다시 그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는 거였어.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 거야. 피폐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 때의 상처가 컸기 때문이었어. 그때 많이 실망했지? 농협에 근무했었던 너는 늘 내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항상 이십만 원이 넘도록 채워 주곤 하였는데. 합격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지 못하여 네 뒷바라지가 빛을 바라게 한 거야. 정말 미안했단다.
마흔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하겠다며 남자 얘기를 꺼내는 언니에게 보인 너의 반응은 기쁨에 가득 찬 외침이었지. 지금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남자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며, 환호성을 지르는 거였어. 직업은 무엇인지, 돈은 잘 버는 사람인지, 혹시 절에서만 오래 살아 순진한 언니가 남자 꼬임에 넘어간 것은 아닌지.......이런 부정적인 심사가 담긴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지. 네가 변함없이 나의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어. 오랜 시간동안 나의 인생에서, 모퉁이를 돌고 돌아 비로소 만나게 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형부라고 불러 주어 고마웠단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얼굴을 네가 보았어야 하는데.......

사실 많이 쑥스럽고 부끄럽기도 해. 하지만 네가 결혼 준비하는데 기꺼이 함께 해주니 내가 늙은 신부라는 사실을 잊어 먹곤 한다. 지난주, 형부의 굳센 고집으로 진행된 웨딩스튜디오 촬영을 마친 후 형부 앞에서 울고 말았어. 네가 스튜디오에 김밥과 과일을 싸 들고 찾아와준 정성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비로소 내가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어. 마음은 여리고, 몸집은 작은 너에게 그동안 많은 의지를 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넌 모를 거야. 항상 내가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내 동생이 이제 모든 것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고마운 내 동생! 이제 못난 언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으렴. 오랜 시간 많은 길을 돌아서 이제 내 자리를 찾아 온 느낌이 드는구나. 못난 언니를 늘 이해와 사랑으로 바라봤던 넌 항상 나에게 “왜 그랬어? 무슨 일이야? 그러지마!”이런 부정적인 단어를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동생이었어. “어 그랬어? 힘들겠다! 편하게 생각해! 모든 일이 잘 될 거야!”이렇게 말해주는 심지 깊은 동생이었지. 절에서 오래 산 나보다도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아는 지혜로운 동생이었어.

너는 항상 고마운 존재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것이 무엇인지 아니? 그것은 바로 네가 건강하고 행복한 자기의 삶을 충실히 잘 꾸려가고 있다는 거란다. 앞으로 나도 너를 닮은 밝고 따뜻한 삶을 살겠다고 약속할게. 지켜봐 주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결혼을 앞둔 못난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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