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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yheenamu) 일반부 우수상

따뜻했던 고마운 선생님께

며칠 동안 몹시 변덕스런 봄 날씨를 보였는데 오늘은 내리 쬐는 햇볕이 참 따뜻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저는 선생님의 많은 제자 중 아픈 손가락, 제자 영희예요. 제 편지를 보시며 반가워 해 주실 선생님을 떠올려 보아요.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30년 전이예요. 사범대학을 갓 졸업하시고 처음 발령 받으신 곳이 바로 우리 학교였죠. 선생님께서는 3년 동안 시골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 고군분투하신 것을 친구들 모두 잊지 않고 있어요. 저희를 졸업시키신 후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고, 초등학교 여선생님과 결혼 하셨으며, 지금은 교감선생님이라는 소식도 들었어요. 얼마 전, 동창회 카페에서 보았던 사진 속 선생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선생님 얼굴을 잊을 수 있겠어요?

외롭고 힘들었던 학창시절, 힘이 되어 주셨던 선생님!
중학교 때는 야간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을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 아버지마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선생님! 몇몇 친구들과 조문 오셨을 때, 그때 바로 우리 집의 궁색한 살림살이를 눈치 채신 거지요? 놀라신 듯했어요. 선생님께서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였던 저를 어떻게든 돕고 싶으셨던 마음이 크셨다는 것을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그 후 학교 사환으로 일하며 공부했던 선배가 그만 두어 선생님은 1학년인 저를 일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셨죠.
“대학을 꼭 갈 건데 일을 하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지 않나요?”
라며 못하겠다고 분명히 말해서 당황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대학을 가고 싶다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어요. 하지만 며칠 지나 일을 하겠다고 번복하여 다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어 드렸지요.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아무리 대학이 가고 싶더라도 당장 수업료를 못 내면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졸업을 하기 어려웠던 처지를 생각하고 마음을 바꾼 저를 선생님은 따뜻하게 위로해 주시며, 일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도 꼭 가라고 하신 말씀에 더 용기를 갖게 되었었어요.

선생님! 혹시 사환 일이 힘들지 않아 보여 월급 받으며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 제자의 진로에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자책을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모든 것은 제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대학을 못 갔던 것은 바로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뿐 이예요. 결코 선생님 탓은 아니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그 일은 저보다 세 살 아래인 동생까지 공부 할 수 있는 기회였죠. 제 동생 영실이 기억나시죠? 영실이는 지금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열혈엄마랍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에 마음이 늘 먹먹합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영희야, 대학 못가서 나중에 나 때문이라고 원망하지 마라. 제발, 일 그만둬라.”라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년 동안, 밤엔 다리에 쥐가 났고 코피는 왜 그리 자주 나오는지. 공부와 병행하는 사환 일은 힘들었지요. 타종, 등사, 청소 외에도 사택연탄불까지 봐 달라는 여선생님들. 시험 보는 기간, 코피를 흘렸을 때 속상해 하시며 일부 선생님들을 향해 심하게 나무라셨던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느 날은 직원조회 시간에 영희가 너무 힘드니 일 좀 적게 시켜 달라고 아주 간곡하게 부탁하셨다는 얘기를 다른 선생님께 들었어요. 그때 저는 어린 마음에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선생님의 따뜻함이 느껴지며 눈물이 쏟아져 그것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답니다.

늘 울타리가 되 주셨던 선생님! 선생님이 저에게는 얼마나 든든한 보호자였는지 모르실거예요. 그 날 이후로 유난히 잔심부름을 잘 시키던 여선생님이 선생님 눈치를 보며 달라졌던 것을 모르시죠?
선생님! 기억하시는지요? 2학년이 된 해 가을날 저녁, 선생님보다 늦게 퇴근하던 제 손에 어머니 갖다 드리라며 들려주신 물오징어를요. 수학여행 갔을 때 모자 쓴 친구들을 보시고 모자를 사주려고 하시던 일, 전 모자를 싫어해서 안 쓴다며 한사코 거절 했었지요.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죠. 친구들도 모르게 마치 오빠처럼 자상하게 살펴 주셨어요. 전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주고자 하신 것은 오징어, 모자 같은 물질이 아니고 힘이 나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을요. 선생님의 따뜻함이 제 마음속에 들어와 삭막했을 시간들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어요.

선생님! 몇 번이나 제 안부를 물으셨다고요? 친구가 제 얘기를 어떻게 전해 주던가요? 대학은커녕 결혼도 못하고 직장도 안정되지 않은 삶을 선생님께 고스란히 들키고 말았던 거지요? 저는 자랑스럽게 성장한 제자의 모습으로 찾아뵈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나 봐요. 선생님 기대에 닿고자 했던 욕망이 저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지요. 이번 이월에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문학사, 사회복지사 학위로 졸업했고 가을학기에 문예창작학과로 대학원에 진학할거예요. 48살에.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또 지난해에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드디어 6월에 결혼합니다.
많이 기뻐하실 선생님! 축하해 주세요?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제 편이셨던 선생님의 사랑에 힘입은 것입니다. 늦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저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어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많이 뵙고 싶어요! 온 천지가 초록으로 생기발랄해지는 6월이 오면 새로운 가족이 된 사람과 함께 꼭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시길 기원 드려요.
제자 영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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