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나라우수작품
일기/생활문/수필
독서감상문/영화감상문
여러가지 독서 감상활동
설명문/논설문
기록문/기행문
동화/소설
편지글
동시/시
토론하기
작가님께 편지쓰기
독서신문 만들기
엄마,아빠가 쓰는 글
글쓰기마당 게시판
100자 책 추천마당
글나라 독서/글쓰기 대회
- 전체 대회 공지
- 편지쓰기 대회
- 백일장 대회
- 독서 감상문 대회
HOME > 글쓰기마당 > 글나라 독서/글쓰기 대회 > 편지쓰기 대회
유연숙 (judyhsh) 일반부 최우수상

- 窓外三更雨 -

주말을 맞이하며 다시 비 소식을 접했습니다. 유난히 비가 잦은 봄입니다.
어머니는 부쩍 분주해진 고향 소식을 전하시면서 모내기를 위한 못자리가 한창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봄가뭄에 전전하며 가뭄못자리를 할 때가 많았는데 올해는 비도 잦아 물못자리도 어렵지 않거니와 오히려 간편하고 튼튼한 밭못자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올해부터는 작은아버지 댁도 친히 농사를 짓지 못하시게 되어 마을 사람에게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체감하시는 것과는 별도로 어머니는 그 옛날,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농사를 부탁하던 때를 떠올리시며 많이 아프셨나봅니다.

하늘로 가신 지 만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어머니와 저희들에게 당신은 가장 큰 화제이고 또한 아픔입니다. 저녁마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보듬는 전화대화 속에도 전설 속의 그 누군가는 살아서 그 대화를 듣기도하고 또한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어머니나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농사일로 분주하지 않을 동안에도 아버지는 늘 머무시던 곳에서 당신의 들녘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유난히 목말랐던 30여 년 전의 그 유월처럼 말입니다.

할아버지 기일조차 집에서 편히 계실 수 없던 당신은 혹여나 내릴지도 모를 비를 대비해 祭床이 차려져 있는 집에 오시지 못하고 ‘안산’이라 칭하던 당신의 들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보의 정확도도 떨어지고 그 예보를 빨리 접할 수도 없던 시절, 아버지는 누군가의 제보만을 믿으시고 가족들과 1년 만에 방문하신 할아버지의 혼령을 기다리시게 하고 그 외롭고 목마르며 더운 밤, 들에서 당신의 논을 마치 보초 서듯 지키고 계셨습니다.

거짓말처럼, 늦은 밤……. 폭우였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비…….
부엌과 대문 사이,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어두워 보이지도 않으시는데 동구 밖을 순환하듯 종종거리시던 어머니는 끝내 앞집 추녀 밑에서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흠뻑 비에 젖은 당신은 간신히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오셨고, 힘들어 보이셨지만 행복한 모습이셨습니다. 자정만 넘기지 않으면 된다는 위안, 목말랐던 대지가 폭우에 촉촉이 젖어가는 위안으로 메마른 땅에 부딪혀 떨어지는 빗방울의 향연을 들으며 모였던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기념하며, 혹시 들에 나간 아들을 위해 폭우를 부르지 않았을까 감사하며 祭를 올렸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곤히 주무셨을까요. 그리고 오늘밤 아버지 묘소에도 비가 내려앉겠습니다. 촉촉이……. 당신도 그 밤을 기억하실까요.

아버지!
이즈음 이사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다 보니 집에 대한 고민이 많아집니다. 아버지도 계시지 않은데 서로 혼자 살면서 이렇게 각자 살 이유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불편한 어머니를 멀리 두고 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요. 돌아보니 어머니 47세 되시던 해부터 하나하나 떠나보낸 딸이 이젠 아무도 당신을 돌아보지 않고 매일 저녁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오래된 넓은 집에서 무슨 꿈을 꾸실지……. 온통 슬픈 상상만 하는 비 오는 밤입니다.

언니만 다섯인 제게 여섯 살 때부터 결혼으로 언니를 하나하나 떠나보냈던 기억은 적잖은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스물네 살, 마지막으로 막내언니를 떠나보낼 때까지 저는 언니들 결혼소식을 접하면 한동안 앓았답니다. 형부라는 사람이 생기고, 한 두 해 후에 조카들이 생기고, 저와 부모님만 남게 되는 현실이 그렇게 앓을 만큼 아팠던 그때의 나…….
그런데 이젠 저마저 어머니를 떠나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홀로 잠에 들 서로를 염려합니다. 물론 어머니 곁엔 늘 아버지가 함께하시는 걸 알지만요.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이렇게 어머니를 떠나 있으면서도 오늘도 꿈꾼답니다. 아무도 안 떠나는 집, 잠깐 떠나더라도 결국엔 돌아오는 집, 모두 돌아가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집…….
제 소설 속의 주인공은 하루도 혼자서 밤을 보내지 않습니다. 결혼을 한 가족들도 떠나보내지 않고 모여 사는 방법을 어떻게든 고민해 많은 가족들과 함께 염려하고 살아갑니다. 소설 속의 노인은 아무도 떠나지 않아 늘 행복하고 늘 북적거리지만 그 상황을 즐거워합니다. 현실 속에 하지 못하는 일을 덩그러니 ‘허구’에 엄마를 모셔 놓고 저는 매일 밤 행복하게 잠에 듭니다.
‘엄마는 외롭지 않아. 엄마는 늘 떠나지 않고 돌아오는 가족들 때문에 행복해, 나의 엄마는, 그리고 늘 아버지가 지키고 계시잖아. 괜찮아…….’

사랑하는 아버지! 이젠 아버지를 꿈속에서밖에 뵐 수가 없지만, 아버지의 永眠이 아직은 심장이 갈라지고 가슴이 저릴 만큼 아프지만 혹시 먼 훗날에 만날 때는 어머니나 제가 힘들어하고 불편해하는 비가, 오늘처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아프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비이지만 아버지가 가장 행복하게 맞으셨던 비, 아버지의 묘소에 달게 내리는 그 비를 이젠 사랑하며 아버지의 現身인 양 행복해하며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한 줄기 눈물로 만날 그날에는 환히 웃으시며 맞아주세요. ‘수고했구나, 이젠 수고로운 짐 내려놓고 함께 쉬자.’ 말씀하실 아버지를 오늘도 꿈에서 반가이 뵙길 바랍니다. 그때도 여전히, 안녕히 계십시오.

계사년 3월 열하루
아버지의 막내딸 올립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