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는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깼어. 마루에 누워 잠이 들었었나봐. 마당엔 아직 한낮의 햇볕이 한창이었어.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참새가 째잭거렸어. 외양간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퇴비 냄새가 났지. 달이는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서 잠시 어리둥절했어.
‘참, 여긴 시골 할아버지 집이지. 며칠 전에 엄마랑 왔지.’
달이는 엄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밭에 가셨나봐. 엄마는 자주 이곳에 와서 밭일을 도와주곤 했지. 그때마다 달이도 따라와서 실컷 놀다 가곤 했어.
달이는 가슴을 쭉 펴고 구석에 있는 요강에다 오줌을 누었어. 그리고 다시 마루에 벌렁 누웠지. 지금부터 무얼 할까 궁리했어. 아무도 없으니 마음 놓고 놀 수 있었어.
‘강아지를 놀려줄까? 암탉 둥지나 뒤질까? 아니면, 토끼들을 마당에 풀어놓고 달리기 시킬까?’
달이의 입술에 미소가 번졌어. 낡은 벽시계가 설레설레 추를 흔들었어.
그때였어.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말소리 같기도 하고 웅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렸다 말았다 하지 않겠어? 달이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기 시작했지. 부엌도 아니고 방 안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어. 귀를 마루에 갖다 대니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어.
‘혹시 마루 밑에서?’
달이는 마루 밑을 살짝 엿보았어.
그랬더니 이게 웬일이야? 마루 밑에는 이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모여 있었어. 암탉 부리와 강아지 먹보, 그리고 집토끼 꾀돌이 말이야. 꾀돌이는 또 토끼집을 빠져나왔나 봐. 하지만 지금은 토끼를 단속할 때가 아니었어. 달이는 들키지 않게 숨을 죽였어.
“얘들아, 준비는 잘 되고 있지?”
토끼 꾀돌이가 주위를 살피며 귀를 쫑긋거렸어.
“그래. 이번엔 절대 당하지 않을 거야. 그 못된 놈을 꼭 혼내주고 말겠어.” 
암탉 부리의 목소리는 조금 흥분되어 있었어. 달이는 귀가 쭈뼛했지.
“하지만 우리 힘으로 해낼 수 있을까?”
강아지 먹보는 걱정스러워 보였어.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문제없어.”
“그래, 우리가 힘을 모아 그 놈을 꼭 혼내주자!”
동물들이 힘차게 말했어.
“그럼 나중에 말이야…….”
꾀돌이가 목소리를 낮췄어.
달이는 마루 밑에 온 마음을 집중했어. 그런데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 자꾸만 달이의 몸이 아래로 기울어졌어. 그러다 그만 쿠당탕!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지 뭐야.
후다다닥!
동물들이 마루 밑에서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모두 달아났어. 달이는 얼얼한 엉덩이만 벅벅 긁었지.
‘날 혼내려는 게 분명해. 하지만 내가 당할 줄 알고?’
달이가 이곳에 올 때마다 친구삼아 동물들을 데리고 놀긴 했어. 계란을 깨기도 하고, 병아리들을 다치게 하기도 했지. 토끼털을 좀 뽑기도 했고, 개에게 간장을 먹이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건 장난일 뿐이었어. 친구도 없고 심심해서 한 일이었어.
달이는 동물들이 어떻게 할 지 궁금했어. 학교 친구들도 달이가 장난칠 때마다 더 큰 장난으로 달이를 몰아붙이곤 했거든. 장난은 점점 심해졌어. 신발을 잃어버리거나 창문을 깨거나 다치기도 했지. 엄마가 알고 혼을 내면 그때서야 끝났어.
잠시 후, 달이는 마당으로 나왔어. 병아리들이 놀고 있는 화단 근처로 갔지. 암탉 부리는 병아리들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어. 아무렇지도 않게 먹이를 찾고 있었지. 하지만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파헤치는 모습을 달이는 유심히 바라보았어. 그늘진 감나무 밑에는 강아지 먹보가 엎드려 있었어. 꼬리로 파리를 쫓고 있었지. 큰 하품을 하면서 달이를 슬쩍 쳐다보았어. 그러다 관심 없다는 듯 눈을 감았어. 하지만 귀를 쫑긋거리며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는 걸 달이는 놓치지 않았어.
달이는 뒤뜰에 있는 토끼집에도 갔어. 새끼 토끼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귀여웠어. 아빠 토끼 꾀돌이는 풀을 먹느라 입을 오물거렸어. 아무것도 이상한 것은 없었지. 하지만 빨간 두 눈이 유난히 반짝였어.
‘시치미 떼면 누가 속을까봐?’
달이는 주머니에서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새총을 꺼냈어. 고무줄을 힘껏 당겨보았지.
‘장난감 총을 가져오는 건데, 엄마 때문에 못 가져왔잖아. 하지만 이것도 제법 쓸 만하겠어. 할아버지는 이걸로 날아가는 참새도 잡았다는데 나도 할 수 있어.’
달이는 총알로 쓸 돌멩이를 모았어. 모든 준비를 마치자 마루에 앉았지. 마루 밑에 귀를 기울였어. 조용했어.
얼마나 지났을까. 마당의 감나무에 새 두 마리가 앉았다 날아갔어. 감나무 가지가 조금 흔들렸지. 달이가 가을에 먹으려고 점 찍어둔 감들은 잘 크고 있었어. 접시꽃에게 벌들이 찾아왔고 채송화 밑 개미집도 여전히 북적댔어. 땅거미가 지고 있었지.
“때가 됐어.”
“그래, 그 놈을 혼내줄 때야. 다시는 우릴 건드리지 못하게 하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달이가 재빨리 움직였어. 
“아야!”
신발을 신으려던 달이는 깜짝 놀랐어. 발바닥이 무언가에 찔린 거야. 살펴보니 운동화 속에 뼛조각이 들어 있지 않겠어? 마루 끝에 강아지 꼬리와 암탉의 날개깃이 살짝 보였다 사라졌어.
“흥! 내가 이런 것에 놀랄까봐.”
달이는 새총을 힘껏 쥐었어.
창고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 쳐다보니 먹보가 창고 속으로 사라졌어.
‘나를 그 쪽으로 유인하려는 계획이군.’
달이는 조심조심 창고로 다가갔어. 창고 문이 조금 열려 있었어. 달이는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화다닥.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어. 순식간에 커다란 물체가 달이를 덮쳤어. 달이는 그만 넘어졌지. 바닥을 짚은 팔이 아팠어. 달이를 덮친 물건은 벽에 기대있던 멍석이었어.
그때, ‘꼬꼬꼭’ ‘멍멍.’ 저쪽 구석에서 소리가 나더니 시커먼 물체가 쌀가마 뒤로 사라졌어. 달이는 얼른 일어나서 따라갔지. 달이 발에 뭔가가 걸렸어. 도리깨가 넘어졌어. 망태기도 떨어졌지. 먹보가 짖는 소리는 더 커졌어. ‘퍼드덕 푸드덕’ 부리가 이리저리 날았어.
갑자기 엎어진 망태기가 움직였어. 창고 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거야.
‘그 속에 숨었구나. 어딜 도망가려고?’
달이는 망태기를 향해 몸을 날렸어. 망태기 밑에서 힘찬 요동이 느껴졌어. 강아지를 안았을 때완 느낌이 좀 달랐어. 토끼보단 덩치가 컸지. 팔 밑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털의 느낌이 낯설었어.
‘뭐야?’
달이는 창고 밖으로 사라지는 털북숭이 꼬리를 따라 나갔어.
그것은 족제비였어. 가끔 뒷산에서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온다는 할아버지 얘기가 퍼뜩 떠올랐어. 강아지와 동물들도 어느새 족제비를 둘러쌌어. 토끼 꾀돌이는 이빨에 족제비 털이 묻어 있었어.
“내가 아니라 이 족제비를 막으려던 거야?”
달이는 잠시 멍해졌어.
“달이, 너 뭐하는 거야? 우릴 도우려면 새총을 쏴!”
꾀돌이가 소리쳤어.
“저 녀석을 어떻게 믿어? 내가 해결할 거야!”
먹보가 어르릉거리며 말했어.
“맞아.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건 족제비와 같아.”
부리가 털을 부풀리며 말했어. 달이는 찔끔했어.
먹보가 먼저 족제비에게 달려들었어. 족제비의 사나운 소리와 먹보의 어르릉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뒤엉켰어. 부리도 날카로운 발톱을 날렸어. 붉은 핏방울이 마당에 떨어졌어. 족제비는 역시 만만치 않았어. 모두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어.
달이는 정신을 차렸어.
“내가 도울게. 믿어줘. 내가 새총으로 쏠 테니 이리로 몰아!”
달이는 새총을 겨누었어.
“그래,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해!”
꾀돌이가 말했어.
먹보는 용감하게 족제비 앞을 가로 막으며 짖었어. 부리는 털을 부풀리고 꾀돌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지. 상처를 입은 족제비가 멈칫했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이는 새총을 쐈어. 돌멩이 총알은 안타깝게 빗나가고 말았지. 족제비는 성이 나서 으르렁거리며 달이를 노려보았어. 금방 달려들 것 같았어.
달이는 허둥거렸어. 새총을 마구 쏘았지. 총알 하나는 세워둔 자전거에 맞아 둔탁한 소리가 났고, 또 하나는 가마솥에 맞아 튕기며 요란한 소리가 났어. 하나는 암탉에게 날아갔어.
“아이쿠!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 장난만 잘 치지 다른 건 잘하는 게 없구나.”
부리가 돌멩이를 피하며 소리쳤어.
결국 족제비는 달아났어. 달이와 동물들이 뒤를 쫓았지만 담벼락에 난 구멍 속으로 사라졌어. 텃밭을 지나 산으로 달아났을 거야. 달이는 신나서 만세를 불렀어. 토끼는 ‘펄쩍’ 뛰어올랐고, 강아지는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어. 암탉은 ‘퍼더덕’ 담벼락 위로 날아올랐지.
“너희들, 대단한데?”
달이가 웃으면서 말했어. 누군가와 함께 해본 건 처음이었어. 달이는 뿌듯했어.
“칭찬은 고맙지만 우린 널 좋아하지 않아.”
부리가 새침하게 말했어. 먹보도 꾀돌이도 고개를 끄덕였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좀 심했던 것 같아. 난 심심해서 그랬는데 미안해.”
달이는 진심이었어. 누구에게 사과를 하면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어.
“너 외톨이지?”
먹보의 말에 달이는 찔끔했어. 사실 달이는 친구가 없었어. 친구가 되고 싶어서 장난을 걸면 늘 싸움이 되고 말았어. 아이들은 달이를 싫어했어. 그럴수록 달이의 장난은 점점 심해졌던 거야.
“우리가 친구해주면 안 괴롭힐 거야?”
“당연하지. 앞으로 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주고 새끼들도 보살펴줄게.”
달이의 말에 동물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어.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좋아, 그럼 달이를 우리 팀으로 받아줄게.”
먹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어. 달이는 인디언들이 춤추며 내는 소리를 냈어.
“달아!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소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섰어. 일을 마친 할머니와 엄마도 뒤따르고 있었지.
“또 무슨 장난을 친 거니?”
엄마는 동물들에게 달려가 다친 곳을 살폈어. 엄마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달이를 노려보았어.
“엄만 내가 만날 말썽만 부리는 줄 아나봐. 우리가 족제비를 물리쳤다구! 동물들에게 물어 봐.”
달이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어. 뛰어난 새총실력을 자랑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
동물들은 멍멍, 꼬꼬댁, 폴짝폴짝 마당을 돌아다녔어.
벽시계가 ‘데엥 뎅’ 노래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