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 도대체 이게 뭔데 날 괴롭혀?"
"아.. 진짜.. 되는 게 왜 하나도 없니. 진짜 차라리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
요즘 내가 대학생이 된 후, 독서실 총무로 알바를 하면서 고등학생들이 많이들 내뱉는 말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내가 제작년에 그 시절을 겪어봤기에, 누구보다도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위엄있고 공부 빼고는 할 것도 없는, 입시는 전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부담감이 큰 그러한 것들 말이다.
"미진아, 힘드니?"
"하... 진짜 저한테 왜들 그러세요! 힘들어 미치겠는데!"
"혜정아, 잘 되어가니?"
"하.. 몰라요, 몰라."
아이들은 내가 격려 한 마디만 건네려고 해도, 살벌한 눈빛을 띄고 날 쳐다본다.
"와, 진짜. 컴퓨터 부셔버리고 싶네." 날마다 노트북을 챙겨와 인터넷 강의를 듣는 아현이였다.
"저기.. 아현아, 흥분하지 마렴."
"언니가 뭔데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세요?"
"아효.. 아니야. 아현아, 힘내라."
"수빈아, 뭐하니? 공부하는 거야?"
"아, 진짜 언니, 저 건드리지 마세요. 공부하려는 거 안 보이세요?"
"하.. 그래. 미안해, 정말."
나는 지쳐보이는 고 3 학생들을 위로해주기 위해서였는데.. 이 친구들은 그것마저도 싫나보다.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들은 여전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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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날 저녁 7시,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독서실로 들어왔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은 냉랭했고, 싸늘했다. 6월 평가원을 하루 앞둔 이들이였기에,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갔다.
"애들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요. 내일이 당장 평가원인데, 뭘 먹어요."
사실 나 역시도 그렇게까지 공부해 본 적은 없었기에,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맞아요. 내일 결과 나오는 대로 수시 원서 지원할건데."
"그렇구나, 진수야. 진짜 최선다해 보자."
"언니 저는 배고파요.. 아침 점심 다 굶고 해서.." 민경이었다.
"아.. 안먹었구나. 그래. 사올게."
"네."
"그런데, 민경아, 전부터 널 보면서 궁금했는데.. 넌 꿈이 뭐야?"
"의대 가고 싶어요."
"오호, 가려는 이유가 뭔지 알고싶다~." 꿈을 대학으로 말하는 학생들이 내심 안타까웠다.
"그냥, 뭐. 엄마가 가래요. 의대가면 그나마 잘 산다고."
".... 그렇구나. 그런데, 언니 생각에는 그나마 잘 사는 거? 그런 거 따위 하나도 없는 거 같더라. 다 자기 원하는 거 하고 사는 거고. 물론, 의대 가는 거 좋지. 사람들 치료해주고. 그게 사회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누구나 경영학도, 의사가 되라는 법은 없잖아?"
"하.. 그래도 일단 의대를 가야 돈을 벌죠. 엄마도 강요하고.. 경제가 이리 안 좋아갖고 직업 못갖는 사람도 많다면서요. 뭐, 익히 들어서 알고 있죠, 뭐. 돈..."
"민경아, 나는 사실 있잖아, 목표가 오로지 서울대밖에 없었어.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선생님이 나보고 지역아동센터 자원봉사를 권유하시더라고. 그래서, 했지. 완전 재미있고 애들 가르쳐주고 도와주는 동안 계속 행복했어. 그걸 고 3 되기 전까지 계속했거든. 그 때 나는 교대를 가서, 임용고시를 보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리라고 다짐했었어. "
"우와, 멋있네요."
"헤헤. 민경이 너가 진짜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좋아. 그래서 공부를 해서 의대를 가겠다면 말이지. 그런데 너가 의대를 가고 싶은 게 아닌데, 돈때문이거나 강요받아서 그대로 하는 것은.. 언니 생각에는 그다지.."
"말이 길어졌네. 배고프지? 돈은 별로 없지만, 너랑 애들 떡볶이라도 사줘야지."
"와, 감사해요."
배고프지 않다던 학생들은, 떡볶이를 보자마자 잽싸게 달려들었다.
"그려, 먹으면서 해야지. 배고픈데 억지로 하다보면 안 돼. 어떻게 아느냐? 나도 그랬었거든. 히히."
"하하."
학생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랑 민경이면 남았다.
"하.. 언니, 사실 저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를 써서 세상을 감동시키는 시인."
"우와, 멋있다, 민경이~ 그러면 문예창작과나 서사창작과 쪽으로 가는 게 어떨까?"
"저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시인되면 돈 잘 못 번다고.. 휴.."
"민경아? 너가 세상을 감동시키는 시인이 되고 싶다면서~. 혹시 의대를 간다음에 대학원을 그 쪽으로 갈 생각이야?"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러면?"
"하.. 돈...."
"야, 김민경! 진짜 언니 말 들어보지 못할까! 자꾸 돈,돈 거릴거야?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리고 내 말에 대답 안 하고, 자꾸 돈, 돈 거리고."
"아, 죄송합니다."
"하.. 민경아. 미안해. 내가 이럴 입장이 아니지. 사실 나도 그것때문에 고민 많이 했었거든. 초등학교 교사도 안정적인 직업이라고들은 하지만, 마냥 그런 것만도 아닌 거 같아서. 서울대를 나와서 기업쪽에 취직할지, 아님 공립초등교사가 되어서 살지. 사실 지금도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될 지 조차 의심스럽기도 해."
"하..... "
"그래, 민경아, 힘~내고! 공부해야되는데 자꾸 말 걸어서 미안하고..."
"아니예요, 언니. 제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욕심이 조금은 없어진 듯요,"
"그래그래~ 돈만 생각하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거 못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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