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할 줄 몰랐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나타날지는 몰랐다. 내 옆의 이연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 뭐..뭐야! 당신, 무슨 속셈인거야? ”
그는 이제야 상황파악이 됬는지 뒤늦게서야 놀랐다.
“ 얘들아, 무슨 속셈이라니. 지금 나도 피해자야. 난 대학교를 다니는 21살 최아현, 풋풋한 여대생이라고. ”
그는 아직 믿기치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 참.. 너희도 의심이 많구나? 나도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계속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내 얘기를 안 들어서 놀랬어. 점원도 계속 ‘ 주문하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 외치고 있고.. 5시간을 내내 그랬다니까? 그래서 이상하다 싶어서 집에 갔더니 엄마는 계속 설거지만 하시고, 아빠는 계속 텔레비전만 보시고, 텔레비전에는 같은 방송만 나오고, 왠지 시간이 공백이 된 기분이랄까? ”
그녀가 말한 ‘시간의 공백’ 이란 단어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 아, 그건 그렇고 너희 왜 이 사건이 시작 된 건지 단서라던가, 찾아보았니? ”
“ 네, 당연하죠. ”
“ 뭔데? ”
“ 어.. 그게.. 길고양이.. 참치.. 시간.. 1교시? ”
“ 문장으로 좀 이야기 해봐. 단어로 끊어서 얘기하면 이해할 수가 없잖아. ”
어쩔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아까 편의점에서 무엇인가를 사서 실험해 보기로 했던 것 같은데. 그 것이 기억이 나지 않고, 단어만 특정 단어만 몇 가지 생각난다. 더 생각해 보려하지만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 모르겠어요.. 이연주 넌 기억나? ”
“ 뭐가? ”
“ 우리 아까 그.. 길고양이.. 참치.. 시간.. 1교시 그거 있잖아. 실험하기로 한 것. 편의점에서 사와서. ”
“ 우리가 언제? ”
“ 아까, 편의점 들어가기 전에. ”
“ 우린 그런 얘기한 적 없는데? ”
“ 그런가? ”
생각해보니까 그런 이야기한 적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아까 무슨 이야기 했지? 그녀가 말했다.
“ 얘들아 단서 찾아봤어? ”
“ 아.. 아니오. 아직 ”
대답을 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비워진 느낌이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동시에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아니 기분 탓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와 합류하여 나, 이연주, 편의점 알바 언니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시작이었을 것이다. 내 몸이 소멸되기 시작한 날이.
시간이 꽤 지났다. 사건이 지나고 약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사건이 언제 시작되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만 아는 사실이지만, 밤 12시부터 9시까지 사이 시간이 없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그녀도 알까? 그와 그녀는 잠잘 곳을 신중히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난 별 상관 없었다. 난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시간이 없는 것을 아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한 달동안 지내면서 바뀐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아직 길거리에는 먹을 것이 충분하다. 우리 동네에 슈퍼가 한 군데만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표류하는 것처럼 식량문제는 필요 없을 듯 싶다.
우리 셋은 계속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때 였다. 그 때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 너희들은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이 무엇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
“ 저요? 저는 그냥.. ”
“ 저는 지구 시공간에 문제가 생겨서 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저 우주 시공간 사이에서 어떠한 큰 일이 벌어났는데 그 영향이 이 지구에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
아.. 이연주, 그는 역시 사차원이다. 아니면, 똑똑한 건가? 그 때 우리가 대화하고 있던 장소 옆에 한 가족이 슈퍼마켓 옆 골목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자매 이렇게 있었는데, 그 중 자매가, 자매 중 11살로 보이는 동생의 등 뒤에 사람 손이 보였다. 은도를 들고 있던 한 남자의 손이 보였다. 잠시 후 여동생의 왼쪽 어깨에는 은도가 차갑게 천천히 꽂혔다. 어깨에 피가 조금씩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였다. 난 그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난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의 팔을 잡고 말을 더듬었다.
“ 저..저...저.... ”
“ 뭐라고? ”
내 눈에 보인 것은 왼쪽 어깨에 은도가 꽂힌 11살 여자어린이. 그 아이는 조금 서있었다가 이윽고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내 왼쪽 눈 밑에도 피가 묻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여자어린이가 쓰러지고 난 뒤 이었다. 그리고 은도를 찌르고 어떤 한 남자가 우리가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빠르게 도망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 저.. 저기 저 남자를 쫓아야 되. 거기 누구에요? ”
내 말을 듣자마자 이연주는 그 남자를 쫓았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왼쪽 어깨를 내 겉옷으로 덮어주었다. 내 옆의 편의점 알바 언니를 보았는데, 왜인지 그녀는 흡족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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