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모양은 가늘고 옆으로 길엇다. 내 네 번째 손가락에 햇빛이 우연찮게 닿았고, 남편은 그게 꼭 가락지 낀 모양 같다며 즐거워했다. 나는 가만히 손가락을 바라보다, 그 자리를 더듬었다.
“사람의 심리는 간단합니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신뢰를 주고 싶다면 말이죠.”
요새 텔레비전이다, 라디오다 출연하는 심리학자의 말이 주파수를 건너 흘러나온다. 사람의 심리를 하나로 묶어 편견이다, 착각이다 하는 데. 나는 그 사람이 임상실험을 통한 결과물을 유창하게 브리핑 하는 걸 볼 때마다 부인과의 관계가 심히 궁금해져오곤 하는 거다. 더불어 주변 지인들의 관계도 학자가 말하는 ‘심리’ 로 충분히 잘 다루고 있는 지 궁금하다.
만약 아주 예외의 사람을 제외하고 실제로 심리연구가 들어맞는 다면, 그리고 내 남편이 예외의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이미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이음새에 기름칠을 할 수 있도록 기꺼이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겉모습과 말이, 단편적인 부분의 허상이란 걸 알았을 때, 나는 화가 나서든지 술김에 라서든지 응집된 무언의 분노를 표출 하고야 말았다.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그 심리학자’ 에게.
“아니, 아주머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너, 임마! 니가 사람 맘을 그렇게 잘 알아? 얼마나 잘 알 길래 그렇게 가지고 놀아!”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자랑처럼 옆구리에 낀 ,심리학자의 머리채를 잡고 늘어진 건 그의 부인이 걱정 되서가 아니었다. 내 남편도 어느 술집에서 그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우리 가족은,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파탄 직전의 가족 같았다. 남편의 외도는 우리 둘의 관계에서 사연 하나 없이 시작되었다.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모른 채 했다. 그렇게 모른 척 한다고 끝나는 일이 었으면 난 스무번이고 백번이고 해 줄 수 있었다.
술집 주인의 신고로 결국 경찰서 까지 끌려온 나의 눈에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들어왔다.
“왜 그랬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어이없는 듯 실소를 뱉었다.
이윽고, 경찰서로 심리학자의 부인이 들어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면서 부인은 남편의 생채기 난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이봐요. 당신 장난 해요? 내일 텔레비전에 나올 사람을 이렇게 햘퀴어 놓으면 어째요?”
“그럼, 테레비에 출연할 사람이 밤늦게 까지 술집에 있어도 되나?”
심리학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당신 기획 피디랑 회의하러간다 그러지 않았어? 하니 심리학자는 피디가 억지로 끌고 가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고 변명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였는 지 내가 본 일이 부인에게 전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였는 지 심리학자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싸늘한 한기가 드는 집 안에 들어서고, 남편은 뭔갈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 심리학자, 정말 인간 말종이었지? 텔레비전에서 볼 때랑 다르네. 어떻게 부인을 두고선.”
그 말에 남편에게 눈을 맞추었지만, 남편의 눈은 날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맞아…….”
남편의-오래 같이 있지 못한 남들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미세한 불안감을 보니 심장이 내려앉았다. ‘역시나 했는데, 맞나 보구나.’
“우린 그렇게 살지 말자.”
그 말에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 모든 신경을 끊어버리기로 했다. 어쨌든 남편은 남들 눈에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깨부수고 싶어하는 점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허울뿐인 관계라도 관계가 한순간에 깨어져버리는 것 보다는 낫다는 무사 안일주의 였다.
남편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햇빛이 닿은 자리를 더듬었다. 남편이 날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준다고 한 그 날 끼어준 반지의 자리였다. 하지만 남편은 내 결혼반지가 어디 갔는지 조차 몰랐다. 애초에 남편의 반지도 어딘가로 숨겨진 지 오래인 걸 알면서도 남편을 시험해보려 반지를 뺀, 내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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