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 미술관에 다녀왔다. 이중섭 미술관은 이중섭 생가의 바로 위에 위치한 소박한 미술관으로, 이중섭의 원화 몇 점과 복사본 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화가 별로 없는 이유는 이중섭의 원화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이중섭의 상당수의 그림이 훼손되거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술관을 둘러보기 전 먼저 이중섭의 생가에 갔다. 이중섭의 생가로 보존되고 있는 곳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한 채의 초가집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유명한 화가들의 생가는 넓고 밖에 풍경도 잘 보이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집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상상을 비난하기라도 하듯, 아주 많이 소박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중섭은 이 허름한 초가집 한 채도 살 돈이 없어서 이 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는 것이다. 이중섭은 작은 방 한 칸 약 1.4평 남짓의 방과 부엌 약 1.9평의 공간에서 4식구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공간에서의 생활이 이중섭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표현되곤 한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일 것 같다.
이중섭의 생가를 둘러본 후 우리 가족은 그 위쪽에 위치한 이중섭의 미술관에 들어갔다. 이중섭의 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국에서의 생활 후 병들고 영양실조에 걸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이중섭에게 보낸 친필 편지와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친필 그림 편지였다. 아고리가 발가락에게 보낸 편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아고리는 이중섭의 별명이고 발가락은 그의 아내의 별명이라고 했다. 이중섭의 별명이 아고리인 이유는 일본어로 아고가 ‘턱’이고 리는 이중섭의 성 ‘이’씨라고 이중섭의 턱이 길다는 이유로 아내가 이중섭에게 붙여준 애칭이자 별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의 별명이 발가락인 이유는 이중섭이 아내의 발가락을 치료해주면서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한 마음을 알 수 있는 별명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고리'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는 '한 동안 편지가 없었는데, 그 후 편안히 지내시는지요?'로 시작해 아내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편지에서 ‘서울에서의 전람회에서 처럼 대구에서의 전람회도 호평받기를 바란다’ ‘좋은 성과 거두기를 기원한다.’ 등으로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중섭 또한 일본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중섭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기에 다소 비현실적인 남편의 이상만을 따라가며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려운 형편 때문이었지만 이중섭은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고 외로움 때문인지 건강 문제로 몇 달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그의 슬픔과 외로움은 사실 배고픔이나 고달픔에 있지 않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곁에 없다는 점에 비롯되었던 것 같다.
어른 한 명이 눕기에도 비좁을 것으로 보인 작은 방에서 4식구가 함께 살 때 더없이 행복했다는 이중섭의 소박한 마음이 너무 마음 아팠다. 먹을 것도 없고 거처하기 힘든 곳에서 그림만을 그려야 했던 이중섭, 그리고 그를 두고 일본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그의 아내. 후대에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받은 이 화가의 외로웠던 생애가 너무 마음에 아파 코 끝이 찡해졌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의 끝편에 자리잡은 이중섭이 그림 그릴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은박지같은 껌종이에 그렸다는 그림을 보았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이중섭의 그림을 은박지에 옮겨 그리는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렸던 은지화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그때는 그림을 감상할 틈 없이 그냥 가장 쉬워 보이는 그림을 선택했는데 미술관에 와서 직접 그림들을 보니 쉬운 그림만 찾는 내가 한스러웠다. 아무쪼록 이중섭의 여러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다음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에는 삼매봉도서관에 있는 미술관에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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