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을 앞두고 O.T가 있던 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하나 둘 강당으로 모였다. 나와 몇몇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수학여행 책자를 받고 주의사항과 안내사항을 전달받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미치도록 수학여행이 기대된 것은. 보충수업이 귀에 안 들어 온 것은 물론, 웅비 때는 너무 공부가 안돼서 무엇을 싸갈지 목록표를 만들고……. 그런 걸 보면 정말 수학여행은 수학여행인가보다.
모닝콜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는 크로스백에 캐리어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커다란 가방 한 두 개씩 들고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가긴 가는구나 싶었다.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서는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어떻게 앉을지 정하지 않은 것. 우리 반은 40명이라 비는 자리도 없는데 혜연이가 혼자 앉겠다고 하는 바람에 더 난감했다. 일단 대충 앉고, 출발하고 나서 선생님과 같이 앉으려고 힘들게 짐을 옮기고 나서야 자리가 정해졌다. 매끄럽지 못한 출발이었지만 금방 잊고 태은이가 열심히 구워온 CD를 들으며 즐겁게 도로를 달렸다.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휴게소도 들리고 재미없게시리 자고 있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영화도 한편 보니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낙안 민속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도 먹고 구경하라고 한 시간 주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다. 마을 구경을 다하기는커녕 시간에 쫓겨 점심도 급하게 먹고 그저 사진 몇 장 찍은 것뿐인데 시간이 다돼서 아쉬웠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지겹도록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짐칸에 실었던 캐리어 가방을 내리면서 비로소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는 것을 실감했다. 배에 오를 때는 더욱이.
제주도로 향하는 3시간 동안 있을 실을 배정받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돈 모아 산 과자를 처음 풀었다. 과자를 먹는 동안 어느덧 배는 출발해 육지에서 꽤나 멀어져 있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나 그 흥도 잠시, 실컷 사진을 찍고서 실로 들어오니 여기저기서 배멀미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물론 그중에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질어질 한 것이 그때부터는 거의 꼬박 제주도 도착 할 때까지 뻗어있었다.
이놈의 제주도는 왜 이렇게 먼 건지 하루 종일 이동한 끝에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내 도착했다. 그렇게 힘들게 갔으면 아름다운 풍경이 반겨줘야 덜 억울한데 어두워서 풍경이라곤 보이지 않고, ‘이동’뿐인 첫날 일정을 마치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숙소밖에 없었다. 그동안 수련회에 수학여행에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꿈같은 숙소는 처음이었다. 상상 이상의 멋진 시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점은 씻는데 불편함이 없다는 것. 마지막 수학여행을 이렇게 멋진 곳에서 보내게 되어 기뻤다.
한 40분 잤나? 잔 것 같지도 않게 자고 일어나니 아침 먹을 시간이 머지않았다. 숙소는 10점 만점에 10점이었지마는 밥은……. 그래도 맛있게 먹고 어제 잠 안자고 열심히 입어본 끈에 결정한 옷을 입고 제주 민속촌 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유채꽃 있는 곳에서 단체사진 찍고 들어가자마자 사진 찍느라고 정신없었다. 곳곳에 만발에 있는 유채꽃들이 너무도 예뻤다. 민속 박물관이라고 널뛰기도 있고 그네도 있고 투호던지기도 해보고 사물놀이 하는 것도 구경했다. 아 어찌나 장구를 치고 싶던지 결국에는 일출 랜드에 가서 치라고 놓여있는걸 쳐봤다. 그마저도 아줌마들 양보해 드린다고 조금밖에 못 쳐서 아쉬웠다마는. 일출 랜드에서 딱히 기억나는 건 미천굴에서 탑 여섯 바퀴 돌고 소원 빈 거랑 거기에 있던 용 그림 정도. 그보다도 고대하던 승마한 것이 기억이 난다.
수학여행 일정에 승마 체험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승마장에 가니 내가 그리던 말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탈 것이지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참 기다리다 남자들부터 하나둘 말에 오르기 시작했다. 재밌게 타는 애들을 보니 온몸이 근질근질~ 드디어 말과의 첫 대면이다! 떨리기도 하고 약간은 무섭기도 하고 들뜬 마음이 대부분인 복잡 미묘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의 파트너는 백마였는데 백마한테 나의 몸무게를 싣고 나니 너무 미안해졌다. 왠지 한 발 한 발을 힘들게 내딛고 있는 듯한 느낌에 안쓰러워졌다. 그러나 기분만은 저 아름다운 제주도 하늘을 훨훨~! 그토록 타보고 싶었던 말이라 차나 기차, 비행기…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에 의해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그 자체가 나를 한껏 들뜨게 했다. 천천히 걸어서 한 바퀴 돌고 트랙을 돌때는 살짝 뛰었는데 신나 죽는 줄 알았다. 조금 더 빨리 돌면 더 재밌었을 텐데, 말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이 안탄 애들은 후회할거다 아마. 사진도 못 찍고 한 번 더 타고 싶었지만 여자애들은 우리밖에 없어서 그러진 못하고, 탔다는 데에 만족하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 성산 일출봉으로 향했다.
성산에 도착했을 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넓은 들이 펼쳐진 곳이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일출봉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멋있었다. 학년 단체사진 찍고 일출봉에 올랐는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내일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에 오르는데 일출봉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없을 것 같았던 계단을 모두 딛고 올라가서 찍은 사진의 감격이란. 한라산에 올라 사진 찍은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말이다.
한라산에 오르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에서 한라산까지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니 희뿌연 안개 속이었다. 바람막이를 입었음에도 어찌할 수 없는 추위가 엄습해오는 가운데 한 명 한 명 도시락을 나눠주곤 본격적으로 한라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서 꽁꽁 얼었던 손발도 어느 정도 올라가니 살짝 녹았다. 처음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가 예쁜 눈꽃들이 보일 무렵에서야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눈꽃에 대한 감탄도 잠시,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탁 트인 곳에 나왔을 때는 거기가 고지인줄 알았다. 조금만 더 가면 길이 없을 것 같았는데, 가도 가도 길인 것이 차라리 나무들로 에워싸여 있을 때가 좋았다. 생 바람을 맞아 손은 벌겋게 얼고 너무 추워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난 약하지 않았다. 울기는커녕 보란 듯이 산장까지 올라갔다. 기왕이면 백록담까지 올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마음도 들었다. 산을 올라오는 동안 꽁꽁 언 얼음 밥을 먹으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까마귀와 친해졌다. 밥을 주니 그걸 먹다가 부리에 밥풀이 묻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까마귀와 더 놀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 매점으로 들어가 밥을 좀 더 먹고는 아쉽지만 몸이 다 녹기 전에 산을 내려왔다. 조금 쉬었다고 긴장 풀린 다리는 내려오는 내내 부들거려서 혼났다. 심할 때는 내 몸이 아닌 것 만 같았고, 미친 듯 땅바닥만 쳐다보고 그저 걷기만 했다. 산에서 다 내려와서 버스 있는 곳까지 2.5km를 더 가야 했을 때는 정말이지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1km를 남겨두고 다른 애들은 힘들게 걸어 내려갈 때 나는 운 좋게도 봉고차를 얻어 타고 내려간 덕에 다 풀렸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몸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가뿐히 서커스 구경도하고 야간 이벤트행사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리조트에 도착했다. 전직 개그맨 출신인 레크레이션 강사의 재밌는 진행과 아이들의 끼가 더해져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마지막 밤을 보낸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기자랑은 8반 친구들의 충격정인 여장쇼와 윤창호 선생님의 노래. 6반의 gee도 재밌었지만 8반애들의 공연을 볼 때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의 예상대로 8반이 일등을 차지하고 야간 이벤트 행사는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시간은 애석하게도 그렇게 우리를 마지막 날로 인도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첫날보다 조금은 줄어든 짐을 싸가지고서는 리조트를 나섰다. 아름다운 주상절리의 경치로 마음을 달래고 그곳의 물 만큼이나 깨끗하게 아쉬움을 씻어냈다. 나는 공항에 도착했을 때 버스 아저씨께서 해주신 마지막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작은 돌 하나도 제자리에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그 한마디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나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비로소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수학여행이라고 생각하니 좀 씁쓸하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임과 동시에 항상 제자리에서 아름답게 있을 시간이란 걸 알기에 슬프지만은 않다. 훗날 그대로 남아있을 이때의 추억을 찾을 날을 기약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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