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언뜻 보면 별로 대단한 점도 아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누구나 다 “그게 뭐 어때서? 나도 맘 만 먹으면 할 수 있는걸.”하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말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예전 일을 되돌아보면 나도 종종 스스로가 생각하기를 말이 너무 많고 경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고 남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교시부터 나는 다시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다. 옛말에 ‘입은 한 개고 귀는 두 개인 이유는 말하기보다는 좀 더 잘 듣기 위해서다.’라는 말이 있다. 스님들이 침묵수행을 하거나 수년 째 면벽참선을 하는 이유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위한 것일까?

  어찌됐든 모모는 다른 사람 말을 들어줄 줄 알았고 사람들은 그런 모모와 함께 있으면 이상스레 마음에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려 자주 모모를 찾았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사람들이 모모를 찾지 않게 되었다. 시간 저축 은행에서 온 회색인간들의 농간에 휘둘려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두렴움, 당혹감에 휩싸여 시간을 절약한답시고 오히려 시간을 잃어버린다. 사랑이나 즐거움 같은 감정들은 모두 무의미 해지고 사람들은 오직 일의 능률만을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난 이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왜 일을 하는가?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누는 기쁨, 슬픔, 즐거움, 하다못해 고통 같은 감정도 없는 지경에 이르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삶 이후의 세계를 탐험하러 떠나겠다. 최소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긴장감은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세상에서도 모모는 자신만의 특유의 재능, 즉 사람들의 말을 들어 주는 것으로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사한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모는 회색 사람들의 최대의 적이 되는데, 그들은 방해물을 없애기 위해 모모 또한 다른 이들처럼 -자신이 무얼 하는지, 왜 하는지 모른 체 살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술수를 쓴다. 하지만 오히려 모모는 그 일로 겉포장이 아닌 회색인간의 내면을 보게 되고 회색 일당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마지막에는 결국 모든 회색인간들이 처음에 왔듯이 다시 무(無)로 돌아감으로써 모두들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꽃 한 송이를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 사회도 이 이야기처럼 사막하게 변해갈 지도 모른다. 우리 아파트만 봐도 그렇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뭘 좋아하는지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그래도 난 최소한 옆집에 새로 이사 온 가족들과 어떤 할머니가 산다는 것은 안다.) 심지어는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시루떡을 돌리지도 않는다! 이웃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어떻게 혼자 살아가려는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다들 제 갈 길 바빠서 지나가는 이웃 주민들에게 정답게 인사하는 모습은 동화책의 공상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국인 특유의 ‘정’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똑같이 늘어선 빽빽한 빌딩들, 아침마다 사람들을 토해내는 지하철, 자기 말만 떠들어대는 이야기꾼들. 이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즐겁게 운동장을 뛰어노는 어린이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