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들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여자는 약간 굳은 표정으로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라 할말을 찾지 못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와는 달리 여자가 먼저 입을 떼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오셨나 본데, 이왕 이렇게 오신거, 잠시만 들어왔다 가세요” 여자는 휠체어 바퀴를 드르륵 굴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 네..” 나는 약간 멈칫거리며 여자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도와주는 아줌마가 없어서 차 대접할 처지도 안된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여자는 조금은 힘겹게 바퀴를 굴리며 주방으로 가서 커피 포트에 물을 끓였다. 나는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의 쇼파에 앉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여자에 시선에서 봤을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느껴졌을까. 나는 여태껏 한 달이 넘게 위 아래층에 살면서도 이웃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머지 남을 헤아리지 못하는 교양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여자가 달그락 거리면서 주방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한 구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텔레비전 옆에 있는 사진첩에서 낯익은 얼굴의 사진을 발견했다. 온전하게 양 다리가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의 사진은 다름 아닌 이집 여자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남편으로 보이는 한 사내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자는 왜 양 다리가 사라졌을까... 혼자 생각하던 중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여자가 한손으로는 쟁반을 들고 한손으로는 휠체어 바퀴를 힘겹게 굴리면서 오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일어나 커피잔이 있는 쟁반을 들어 테이블로 옮겼다. 여자는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테이블 앞 까지 왔다. “커피가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커피는 따뜻할 때 먹어야죠. 드세요. 죄송하지만 집에 드릴 것이 커피밖에 없네요.” 여자가 말했다. “몸도 불편하신데 이렇게까지 신경써 주셔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네요..” 짙은 커피향이 코끝으로 밀려 들어왔다. 커피를 한모금 마신뒤 나는 말문을 떼었다. “제가 그동안 너무 이웃에게 신경을 안 쓰고 산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을때, 저는 그 소리가 왜 나는지도 모른 체 갖가지 추측만 하면서 짜증만 냈지,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는 몰랐었어요. 몸이 불편 하셔서 그런 것도 모르고... 너무 죄송하네요.” 여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저는 제가 몸이 불편한걸 아시는 줄 알았네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런걸 알면서도 그러시는줄 알고 제가 전화상으로 실례가 많았군요.” 내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 할때 였다. 저쪽 멀리 끝에 있는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 누가 왔어?” 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얼굴빛이 하얀 여자아이가 나왔다. 연한 금발의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예쁜 핑크색 머리띠를 한 채 역시나 엄마를 닮아 예쁜 얼굴을 가진 아이는 하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짧은 팔로 힘겹게 휠체어를 굴려 거실로 나왔다.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고는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지금까지 당당했던 모습과는 달리 얼굴이 붉어지더니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 아이는 휠체어를 굴리며 나오다 약간 멈칫 하더니 이윽고 밝은 얼굴로 나에게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혼자   바퀴를 굴려 우리가 있는 테이블까지 왔다. 여자가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 딸이예요.” 순간 나는 많이 놀랐다. ‘세상에, 어쩜 가엽기도 하지.. 딸도 다리가 없다니.. 더군다나 한쪽 팔이있어야 할 곳에는 팔도 없다.. ’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두르며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난 진심으로 그들에게 동정을 느꼈다. 나는 불쌍하다는 말 대신에 “딸이 참 예의바르고 예쁘군요.”라고 말했다. 여자가 갑자기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고마워요.. 내 딸을 보고 예쁘다고 말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군요..” 어린 여자아이도 순간 울고 있는 엄마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여자는 왜 자신이 두다리를 잃었는지, 딸은 왜 장애가 있는지를 다 말해주었다. “ 지금으로부터 벌써 12년 전이네요... 미국의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에서 내 남편을 만났죠. 지금은 헤어졌지만요. 나와 남편은 행복했어요. 외국인인 나의 남편은 나 때문에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했죠. 결혼을 하고 난뒤 얼마 후, 나는 아이를 낳았어요. 빨리 내가 낳은 예쁜 아기를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왠일인지 의사의 표정이 밝지 않았고, 일주일 뒤에야 내 아이를 볼 수 있었죠. 아기는 내가 상상했던 예쁘고 귀엽기만한 아기가 아니였죠. 왼팔은 없고 그나마 오른팔만 비정상적으로 조금 자라있고 두다리가 없는 모습의... 그런 아이였어요. 순간 나는 너무 놀라고 어이없던 나머지 기절해 버리고 말았어요. 내가 상상했던 아이가 아니었던거죠. 그때 나는 젊었고. 내가 바라던 정상적인 귀엽고 예쁜 아기가 아니여서 엄청난 실망을 했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가지고 풍족하게 살던 나에게 장애인인 내 아이는 나에게는 걸림돌과 같은 존재였어요. 주위사람에게 아기를 낳았는데 장애아더라.. 라는 말을 하기도 싫었고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올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내 아이를 보고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사랑한다라는 말은 아이에게 못해주고...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을 감싸 안는 법을 몰랐어요. 나보다 어리고 연약한 장애를 가진 내 아이를 감싸 안을만한 그릇이 못됬어요.  나란 사람은요. 참 못난 사람이었죠. 하지만 남편은 나와는 달랐어요. 장애아인 아이를 보고도 방긋 웃으면서 말했죠. 이 아이는 참 사랑스러운 아이야. 아마도 훌륭하고 예쁜 아이로 키울수 있을꺼야.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어요. 아이 때문에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죠.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남편은 말했어요. 부모로서 아이를 책임 못지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고... 엄마니까 내가 많이 감싸주고 도와주면서 길러야 한다고. 내가 계속 이런 아이는 내아이가 아니다고 고집을 부리자 남편은 나에게 실망했던거 같아요. 하지만 그 때도 나는 깨닫지 못했죠.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의 충격에 나는 세살난 아이를 데리고 자살을 하려고 일부로 자동차 사고를 냈죠. 그때 나는 두다리를 잃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그것보다 더 기적적인 것은 내 아이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는 사실이죠. 나는 내가 딸과 똑같이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되고나서야 깨달았어요. 내가 얼마나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엄마로써 딸에게 너무 미안해요. 지금도. 하지만 내 딸은 항상 밝게, 그리고 착하게 자라주었어요. 엄마를 미워하지도 않고요. 나는 여자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물이 흘렀다. 그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남편이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일만을 기다렸다. 몇일뒤, 남편이 3박 4일의 출장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윗층 여자와 여자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뒤 나는 남편과 상의를 하여 윗집 모녀에게 소리가 잘 나지 않는 부드러운 바퀴의 실내용 휠체어와 고풍스러운 양탄자를 선물 하기로 했다. 돈이 조금 들긴 했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였다. 윗층 사람들에게 나의 따뜻한 마음과 더불어 지난날 위층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선물을 줌으로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주문한 휠체어가 오기를 기다려 남편과 함께 휠체어와 양탄자를 가지고 윗층의 벨을 눌렀다. 나는 윗층 모녀에게 부드러운 바퀴의 휠체어와 멋진 양탄자를 선물하고 돌아왔다. 밝은 웃음의 윗층 모녀의 얼굴을 보고 나와 나의 남편은 참 뿌듯했다. 그 뒤로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위층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도깨비가 사라졌다며 좋아라했다. 나는 항상 봉사활동을 끝낸뒤 내 취미인 감미로운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도 전처럼 할 수 있었다. 남편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만족해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위층과 친하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이웃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일이었기 때문이다.

※ '소음공해'는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소음공해를 읽고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