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깊은 바다로 떨어져 내렸답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내지도 않고... 아니 소리낼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그저 숨죽여 살아남아가고 있었다.....

그저... 살아남아가고 있었다..... 하나의 작은 빛의 모양으로......

인어공주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내 딸아... 나와 함께 가자꾸나...

이곳에서 비참하게 죽을 바에는 차라리 나와 함께 가서 아름답게 사라지자꾸나.....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 딸아.....'

'아버지... 전 이곳에서 죽을 거예요...

그를 사랑한 건 저였어요. 그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전 기쁜걸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아버지가 돌아섰다. 눈물 흘릴 수 없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눈물을 훔쳤다.

그가 웃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 아니 마녀가 웃고 있다.

칼을 들고 들어온 인어공주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말로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설명이라도 하는 듯이 간절한 눈물을.

뛰쳐나간 그녀를 알고 있으면서도, 뛰어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열린 문 사이로 보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며칠 뒤는 그의 결혼식. 인어공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는 행복하기만 했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줘야 그녀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 미친듯이 울고, 울었다......

목소리를 앗아가고 모든 것을 포기한 인어공주의 마지막 희망까지 거두어버린 마녀.

마녀는 왕자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간절히.

그녀도 인어였지만, 인어였기에 용서되지 않는 끔찍한 모습때문에 바다를 증오하며 깊은 곳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다른 인어들의 시선과 이기심을 증오하며..... 깊고 깊은 저주로 자신을 마녀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인어공주의 품에 안겨 육지로 올라가는 왕자를 보며 마녀의 가슴이 살아났다.

스스로도 죽어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인어의 심장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잿빛을 띠고 있던 그녀의 가슴은 이내 부드러운 분홍색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를 얻고 말았다. 그의 몸도, 마음도, 사랑도.

마녀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드디어 결혼식날-.

아름답지만 가엾은 마녀는 왕자의 품에 안겨 미소짓고 있었고, 그는 마녀의 손에 마침내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결혼을 축복해주었고 바다 깊은 곳에서 사람들의 기쁜 탄성을 들으며 인어공주는 홀로 기도했다. 그와 그가 사랑하는 이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달라고....

자신과 함께 떠나자던 아버지에게......

그 때- 빛이 반짝였다.

저 높은 곳의 수면위에서 빛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하지만 화난듯한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낯설지만 그리운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인어공주-?

 넌.. 행복하니..?

 아니면, 네가 사랑했던 사람을 진정 이대로 포기하고 말거라는 거니....?

 너의 사랑은 그정도였나?

 대답해. 너의 사랑은 그정도였나?

 이정도로 포기할 만큼 작고 보잘것 없는 것이었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때문이다. 마녀와 자신 중 누가 더 그를 사랑하는지.

자신의 가슴은 진정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난 널 믿었다.

 소중한 내 딸인 네가 겨우 이정도의 힘겨움으로 사랑을 포기하다니.

 이런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여기 남아있다니.

 더이상, 너에게 해 줄 말이 없구나.'

눈물..... 흘릴 수 없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빛이 눈물대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더 그를 사랑하는 줄 깨달았기에.... 자신의 마음은 이미 미움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너무 늦게.....

그리고 그녀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그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녀를 아프게 하고 소외시킨 건 우리였으니까... 이제 누리지 못했던 행복들을 그녀에게 주세요...

 저의 행복도 그녀에게 다 주세요....

 저의 마음이 미움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저의 사랑이 몸과 함께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그를 사랑했던 것은 나였으니까.... 이제 못다한 사랑을 그에게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 말을 그들에게 전해주세요..... 제발.. 아주, 아주,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내가 지켜봐 주겠다고.....  꼭... 전해주세요......'

마지막 눈물. 아니 빛이 흐르며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버지의 품으로...?

아니면... 어머니와 진정한 사랑을 찾으러 간 것일까...?

- 인어공주가 진정한 사랑을, 행복을 품에 안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