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가는 작자미상에 배경설화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정석가를 지은 계기나 단서를 찾아볼 수 없지만 내용의 성격과 형식적 장치상 고려속요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고려속요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출저를 알지 못하는 정석가는 어떻게 전해지게 되었을까?
-색깔이 다른 정석가의 1연
정석가는 총 6연으로 나뉘어져 있다. 정석가를 읽다보면 그 중 1연이 유독 어색한게 느껴진다.
‘징(鄭,鉦)이여 돌(石)이여 지금 계시옵니다. 징이여 돌이여 지금 계시옵니다. 태평성대에 노닐고 싶습니다.’
「정석가 (鄭石歌)」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1연이 화자가 말하는 전반적인 내용과 맞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은 민간에서 불리다가 궁중음악으로 변한 흔적이다. 왕실의 권위를 올리기 위해서 궁중 악곡으로 채택된 노래 앞머리에 새로 지은 서사를 올려놓는 경우가 있는데 정석가의 첫 연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민간에서 불리는 작자미상의 노래는 사라질 위험이 많았지만, 궁중음악으로 쓰이면서 현대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제목이 정석가인 이유는 뭘까?
원문을 보면 1연에서 ‘딩’과 ‘돌’이라는 소재를 이용한다. 이 때 ‘딩’은 ‘징’을 말하는 것이고, ‘돌’은 돌로 된 악기인 경을 일컫는 것이다. 징과 경이 궁중에서 자주 쓰이는 금석악기였기 때문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 금서악기들의 한자들을 보면 각각 ‘징 정’, ‘돌 석’이라고 표기된다. 작품의 제목인 ‘정석가’와 대응된다.
또는 징과 돌이라는 악기를 의인화해서 징과 돌의 노래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혹은 악기를 연주했을 때 나오는 소리를 의성어로 ‘딩’, ‘동’ 이라고 표현했다는 견해도 있다. 다른 견해로 ‘정석’이 화자가 연모하는 대상의 이름이라는 것도 있다.
정석가는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해서 임을 향한 영원한 사랑을 소망한다. 다른 고려속요들은 이별이나 기다림 그리움에 관해 말하는데 정석가는 차별성을 띈다. 이 시는 절망적 상황이 되어 비극을 느끼는 타고려속요와는 다르게 사랑의 영원함을 외치는 화자가 있다. 말도 안되는 가정을 통해서 화자의 소망을 말하는 점에서 특이함을 느껴 정석가를 선정하게 되었다.
주제는 위와 말한 바로 같지만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가 된다. 보통 여러 연으로 나누는 것은 장면의 전환으로 이용이 많이 되는데 정석가에서는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논리가 한정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상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시의 배열이 단순해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화자가 임과 헤어지겠다고 말하는 상황들
(ㄱ) 구운 밤을 심고서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
(ㄴ) 옥으로 연꽃을 새겨서 바위 위에 접붙이고 그 꽃이 세 묶음이 피어나야
(ㄷ) 무쇠로 무관의 제복을 제단하여 철사로 주름을 박은 옷이 다 헐어야
(ㄹ) 무쇠로 큰 소를 만들어다가 소나무가 있는 산에 놓을 때 그 소가 철로된 풀을 먹어야
마지막 연은 색다른 가정의 형식을 보이는데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하고 누군가에게 물음을 건네는 형식을 보인다. 실현될 리 없는 허무맹랑한 가정을 통해 임과의 이별할 마음이 없는 화자를 볼 수 있다.
다섯 가지의 가정을 통해 우리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구운 밤 다섯 되를 심어 그 밤이 움이 돋아야 임과 헤어지겠다, 라는 연을 볼 때는 농담인가? 싶기도 하다. 희화적인 요소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을 계속해서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공연한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는 것을 몇 연이 지나고 나서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다.
-미스터리한 정석가를 향한 추측들
정석가에는 비극적 체험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상황에서 슬픔을 이야기하는 가시리와는 달리 임과의 어떤 심리적 갈등도 나타나지 않고 임이 어떤 사람인지 제시되어 있지도 않기에 오히려 화자의 상황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때문에 정석가의 의도에 대한 해석은 다양성을 띌 수 있다. 해석자의 입장에서 몇 개의 가정을 해봤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인 사랑하는 임에 대한 시라는 해석에 기반하여, 만약 이 시를 임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가정했다.
1) 임이 출세나 돈벌이를 위해 멀리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경우
2) 이제 막 혼인을 하고 다짐의 증표와 선물로써
3) 임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 같아 임의 변심을 막기 위해
4) 임을 너무 사랑하는 상태를 임에게 알리기 위해
편지를 쓰는 동기는 이 정도로 추려진다. 이것을 편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6연에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년을 외로이 산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누군가에게 묻는 듯한 의도가 있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년을 외로이 산들을 보면 헤어짐이 가정이 되어있는 듯한 표현에 2와 4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가정이 허무맹랑한 것임을 비추어봐서 ‘천년을 외로이산들’ 이란 표현도 임과의 사랑이 너무나도 행복한 지금에는 허무맹랑한 가정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다.
정석가는 꾸준히 첫2구가 반복이 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운율을 형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석가의 작자도 정석가를 쓴 계기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지금 작가가 정말로 운율 형성과 감정 강조를 위해 시구를 반복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2의 경우를 상상해보건데, 먼저 작가가 윗줄을 쓰고선 선물해서 배우자에게 밑줄을 써 완성된 사랑과 다짐의 증표일 수도 있겠다고 추측해보았다.
그래도, 1의 사례가 가장 가능성 있는 사례라고 본다.
이것이 임에게의 편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노래라고 가정했을 때, 맨 마지막의 물음은 자신을 위한 자문자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임과 연락을 할 수 없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상황에서 임과의 믿음이 끊어질 리가 없으니 임과 헤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자문자답으로 스스로 시를 쓰며 위로를 하는 것이다.
혹은 임은 사실 죽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가정도 해봤다. ‘헤어지다’ 라는 표현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 이런 가정은 너무 비약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화자의 상황에서 분명히 어떠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를 쓴 게 아닐까 싶은데, 죽은 임에게 보내는 여성화자가 정절을 맹세하며 쓴 시일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헤어지지 않겠다’ 라는 말이 죽음도 우리를 헤어지게 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반영한 표현일 수도 있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
6연에는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라는 표현이 나온다. 끈은 얇고 가벼운 속성이 있지만 바위에 떨어지는 것으로는 끊어지지 않는다. 구슬은 겉으로는 끈보다 단단해보이지만 바위라는 거대하고 투박한 물체에 부딪히면 깨지고 만다. 왜 많은 소재 중 구슬과 끈이라는 재료를 가져온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일상에서 잘 볼 수 있는 소재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구운 밤, 옥, 연꽃, 쇠, 철사, 소나무가 있는 산 등 시에 나타난 것들도 모두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므로 구슬과 끈도 그런 성질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려면 우선 가능한 상황을 먼저 불러와서 꼬아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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