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더니/접동새는 나와(그 울고 지내는 모양이) 비슷합니다/(그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며(모든 것이) 거짓인 줄을.아으./(오직) 지새는 새벽달과 새벽별만이(저의 충정을) 아실 겁니다/(살아서 임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면) 죽은 혼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아으/(임의 뜻을)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참으로)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임께서 죄 없는 몸이라고 용서하시고 召命하실 줄 알았더니) 말짱한 말씀이었구나.(거짓말이었구나)/(정말) 죽고만 싶은 것이여. 아으/임께서 벌써 저를 잊으셨습니까./임이시어, 돌려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정과정곡(鄭瓜亭曲)」 현대어풀이
정과정곡 또한 다른 속요와의 차별성이 있다. 작가가 미상이라 많은 추측을 가능하게 했던 정서곡과는 다르게 ‘정서’ 라는 작가와 작품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있다. 작가가 유일하게 알려진 국문정착 속가이어서, ‘정서’ 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하는 호기심에 정과정곡을 선택하였다. 정과정곡이라는 제목은 ‘과정’ 이라는 정서의 호를 따서 후세의 사람들이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정과정곡의 저자 《정서》,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길래 후대까지 남은 고려속요의 유일한 작가가 되었을까?
정과정곡은 유배문학이다. 주제가 명확한 충신연주지사로, 유배지에서도 임금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임금에게 돌이켜 사랑해줄 것을 원한다. 유배를 당하고서 임금을 부르는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낮은 직위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서는 17대 인종의 총신이며 그와는 동서간이다. 그러므로 의종에게는 이모부인 셈이다. 이런 관계인데도 정서는 의종이 즉위하자 역모혐의를 쓰고 그의 향리인 동배로 유배된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정서는 재예(재능)가 있었다고 하는데, 문벌귀족사회에서 특출난 인재인 정서를 시기한 다른 문인들이 그를 모함한 것으로 본다.
고려시대는 한문학의 황금기로 국문학은 터부시되었다고 한다. 상층계층의 학자들은 대중들에 대한 우월주의적 입장에서 한문학에 심취하였고, 중국의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있으면서 스스로 즐거워했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고려시대 때 국문학이 부진했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서는 순 우리말로 ‘정과정곡’을 써내렸다. 얼마든지 한시를 지을 능력이 있는 귀족관리계층이 국문학으로 시를 써내려갔다는 것은 주의할만한 의의가 있다. 사회적으로 국문학시가 폄하 받던 시대에 정서의 시는 귀족계층의 틀을 깨는 도전이었을 수 있다. 우리말에 대한 주체의식과 애착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정과정곡의 단골손님, 후렴구 ‘아으’
정과정곡은 임금에게 쓰는 글이기 때문에 단어선택에도 신중했을 것이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없게 신경 썼을 것이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정과정곡에서 ‘아으’라는 감탄사가 세 번이나 나타나는 것을 지나칠 수 없었다. ‘아으’ 라는 감탄사에 어떠한 의미나 기능이 있는지 해석해보고 해석을 찾아보기도 했다.
(1) (나를 모함한 말이) 거짓이며 허황한줄, 아으
(2) 죽은 혼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아으
(3) 죽고만 싶어라, 아으
우선 내용을 살펴보았다.
유배된 상태로 임금에게 쓰는 시인데도 원망의 기색이 적고 오히려 ‘나를 다시 사랑해달라’ 라고 말하는 정서가 ‘아으’를 임금에게 보내는 비난의 뜻으로 쓸리는 없다. (1)을 보면 나를 모함한 말이 거짓이며 허황한 줄 ‘아으’ 하는데, 이것은 유배될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억울함을 뱉어내는 정서의 신음으로 보인다. (2)는 죽더라도 임금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호소로도 보인다. (3)은 과도 허물도 천만 없는 내게 이런 누명이 쓰이다니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말로 결백을 주장하며 임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으라는 감탄사는 향가의 잔존형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9연 맨 뒤 ‘아으’ 라는 말이 있는데, 10구체 향가의 경우 9번째 첫째줄에 아아, 아으 라는 차사를 넣게 되어있다. 그러나 ‘아으’ 라는 조흥구는 향가와 다르게 뒷부분에 나타나는데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
가요의 처음에 감탄사를 배치하는 것은 감정의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이성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지막에 가서는 평온을 찾을 수 있음을 예고한다. 하지만 정과정곡에서처럼 가요의 마지막에 감탄사를 배치시켜 놓은 것은 그 감정의 양을 끝까지 조절할 의사가 없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외침을 내부에서 폭발시키거나 외부로 증폭시켜보려는 심산이라 보겠다. 다시 말하자면, 정서 자신의 열렬한 마음을 감추거나 절제하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나의 억울함을 알아달라’ 고 말하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아으’를 뒷부분에 배치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정과정곡을 재창작한 「백조의 꿈」, 정과정곡과는 어떤 차이가?
정과정곡은 궁중에서 속악으로 쓰여 기녀들 뿐 아니라 사대부에게도 학습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과정곡을 재창작한 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 언제나 물을 그리여워/못에 들어 살아 여너니/ 저어 동산 깊은 수풀은/ 하마 이슷하여이다//남이아니 괴여준다 한들/ 남이 아니 괴여준다 한들/ 내 그를 슬허타 하리/ 내 그를 어찌타 하리// 맑고 고요한 물 위에 떠/ 빈 배인 양 떠돌아 우니노니/나는 하이얀 내 나래로/티끌도 없는 순수한 나의/ 우주를 그리노라/ 제절로 살아 예는 내 맘을 /뉘가 알까 저어하건만/ 때로는 높이 소리쳐 홀로/ 빈 심금을 울려라
「백조의 꿈」 원문
내 언제나 물을 그리워해/연못에 살았더니/저 동산 깊은 수풀은/ 하마 비슷하다//남이 서로 바라는 것을 이해하고 들어주지 않는다한들/남이 아무리 서로 바라는 것을 이해하고 들어주지 않는다한들/내 그를 어찌하리/ 내 그를 어찌하리/ 맑고 고요한 물 위에 떠/ 빈 배인 양 떠돌아 우노니/나는 하이얀 내 날개로/ 티끌도 없는 순수한 나의/ 우주를 그리노라/ 제절로 살아 사무치는 내 마음을 /누가 알까 저어하건만/ 때로는 높이 소리쳐 홀로/ 빈 심금을 울려라
「백조의 꿈」 현대어풀이
정과정곡을 어떻게 재창작 했을지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백조의 꿈에서 화자는 ‘백조’ 라는 동물에 투영해 이야기를 한다. 정과정곡에 비해 더 추상적으로 변한 표현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남이 괴여주지 않다한들 어찌하리’ 라는 부분에서 화자의 탄식은 우울하다. 말그대로 온연히 혼자인 화자가 허공에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과정곡에서는 말하는 대상인 ‘임금’ 이라는 청자가 있지만, 백조의 꿈에서는 청자는 주변에 있지 않아 더욱 외로움을 심화시킨다. 실제로 유배지에서의 정서의 모습은 외로운 백조의 모습과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백조의 꿈은 정과정곡을 재창작하면서 정서의 억울함보다는 세계로부터 격리된 채의 외로움에 집중한 것이다.
하지만, 백조의 모습이 주는 다른 느낌도 있다. 바로 고상함이다. ‘나는 하이얀 내 날개로 티끌도 없는 순수한 나의 우주를 그리노라’ 정서는 비록 유배되었지만, 국가의 상층부에서 일을 하고 유서 있는 집안이었기에 품위와 고상함이 있다. 때문에 시라는 고상한 방법을 통해 울분을 풀어내는데 우아하고 고상한 백조의 모습과 겹쳐진다. ‘하이얀’, ‘티끌도 없는’, ‘순수한’ 이라는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백조의 꿈의 저자는 ‘과도 허물도 천만 없습니다’ 는 정서의 억울함과 결백함을 이해한 후 시를 쓴 모양이다.
백조의 꿈의 저자도 ‘아으’라는 후렴구를 감정의 분출로 해석해서인지 ‘때로는 높이 소리쳐 홀로 빈 심금을 울려라’ 라는 구가 있다. 정과정곡에서 ‘아으’는 유배될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억울함을 뱉어내는 정서의 신음, 죽더라도 임금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호소, 과도 허물도 천만 없는 내게 이런 누명이 쓰이다니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말로 결백을 주장하는 감정의 분출로 해석했다. 백조의 꿈도 ‘아으’ 라는 후렴구가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에 이런 구를 넣은 것이 아닐까 예상해보았다.
정과정곡의 애절한 서정성이 그의 시에서 제거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동양정신의 한 축인 고고함을 창출해낸 것은 백조의 꿈이 이끌어낸 성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정과정곡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에 이와 비교해 백조의 꿈은 애절한 서정성이 제거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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