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교훈을 얻고 싶어서도, 책의 감상에 빠지고 싶어서도 아닌 독후감 수행평가를 하기 위해서라는 그리 멋지지 못한 이유였지만.
하지만 결국 수행평가는 다른 책으로 냈는데
그것이 아까워서 일까, 이 책이 겨우 ‘독후감 수행평가’라는 이유로 읽혀졌던 것이 아까워서 일까.
이곳 글나라에 못썼던 이 책의 독후감을 쓴다는 핑계로 책을 다시 빌려 읽으면서 글을 써내려가 본다.
책을 처음 빌렸던 그때를 천천히 되짚어보며…
이 책을 골랐던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순전히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장영희 에세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우리에겐 기적이 된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책의 제목과 표지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내용도 보지만, 아니, 물론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보고 책의 내용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일단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쭉 고른 뒤에 내용을 살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책을 고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나의 경우 이렇게 고른 책들이 내용까지 좋았던 경우가 많았기에 꽤나 이 방법을 신뢰하는 편이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새롭고 즐겁다.
마치 얼굴도 예쁜데 성격까지 착한 여자 같은 느낌이랄까. 에이, 나도 뭔말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장영희 교수가 예전 월간에서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조금씩 다듬어 에세이집으로 다시 만든 것으로 신체의 장애를 더불어 암 투병이라는 그리 편하지만은 못한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삶에 대한 고마움, 보람, 즐거움을 놓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고, 또 전해 주고픈 장영희 교수의 긍정적이고 따스한 마음이 담겨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일단 지금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라는 사람.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 같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지, 세상이 밝다고 믿는지 등등…
그리고, 책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장영희 교수를 그저 한 사람의 사람 그 자체로 보려고 했다. ’장애를 극복한’같은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그저 장영희 교수님으로. 아마 교수님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이 글이 ‘감상문’인 만큼,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한 부분,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써야겠는데, 물론 없다는 건 아니고 반대로 너무 많아서 다 못 쓸 것 같다.
그래서 그 중 하나인 <진짜 슈퍼맨>을 소개할까 한다.
방금 나왔던 ‘수식어’와 관련이 있는, 영화 ‘슈퍼맨’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용이다.
대부분 알고 있을 듯하지만 영화 ‘슈퍼맨’에서 초인적인 힘과 육체를 보여줬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승마도중 척추를 다쳐 전신마비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몸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 ‘진짜 슈퍼맨’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자신의 칼럼의 소재로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던 도중, 장영희 교수는 도서관에서 ‘뉴욕 타임스’에 실린 리브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내용은 교수가 찾던 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환상속이 아니라 현실 곳의 슈퍼맨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겹습니다. 왜 저의 상처에도 역할이 주어져야 하는 건가요.”
듣고 나니 정말 그랬다. 갑자기 맞닥뜨린 장애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그를 ‘슈퍼맨’이라 칭하며 적지 않은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리브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장영희 교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뒤이어, 자신의 대학교 친구였던 윤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 건강하지도 않은(심장이 약했다고 한다) 몸을 아끼지 않았던 대학시절의 윤이, 결국에는 잦은 옥살이 생활로 인해 전신마비 뇌졸중에 걸렸다고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거의 8년 만에 그 윤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비록 몸은 병으로 인해 나이보다 늙어 보이고 혼자서는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만큼 약해졌지만 그녀의 씩씩함만큼은 8년 전 ‘서강대 잔 다르크’라 불리던 윤이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길, 하루는 실수로 심장과 기계를 연결하는 튜브가 빠져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주위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잘 싸워 주리라는 기대를 저버려서, 싸움에 이기지 못해서…”
놀랍게도, 윤이가 한 말은 리브가 인터뷰에서 그 다음에 했던 말과 거의 일치했다.
“한번은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런데 갑자기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지의 싸움에 실패해서, 싸움에 이기지 못하고 포기해서…”
현재 크리스토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윤이도, 나에게 이런 고마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장본인, 장영희 교수 또한 내가 이 책을 알기도 전에, 이 책이 발간되기 몇 달 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모두에게 애도를 표한다.
또한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줬고, 전해주고 있는 그들에게 ‘진정한 슈퍼맨’이라는 칭호를(비록 리브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어울리는 걸) 붙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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