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그저 제목이 멋있고 표지의 그림이 예뻐서였다.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 한권을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책상에 앉자마자 바로 책을 읽었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 상태로 미루고 미루다 가방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이 불쌍해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하나, 둘… 책장을 넘기던 나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잡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고?" 차마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멸종위기의 동물’에 대해 쓴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멸종위기만을 다룬다기 보다는 점점 심각해지는 우리나라의 생태계를 여러 동물들의 관점으로 보여주며 동물박사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그 겉표지를 보면 이 책에 나오는 54마리의 동물의 이름이 보인다. 굳이 동물의 가짓수가 54마리인 이유는 총 108종을 알아볼 것이기 때문에 반절인 54종을 미리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108가지 이야기 중 54가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호랑이’, 정확한 제목은 ‘돌아갈 야생이 없는 호랑이’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장 강한 동물'로 호랑이와 사자를 꼽을 것이다. 또한 호랑이와 사자가 싸웠을 때 과연 누가 이길지는 모두 한번쯤은 가져봤을 궁금증이다. 하지만 사실 초원에 사는 사자와 밀림에 사는 호랑이는 싸우기는커녕 마주칠 일도, 동물원이 아니라면 평생 서로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자와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와 타이온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이들의 존재가 '가장 강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의 희생양이라 생각한다. 라이거와 타이온은 그저 과학자들의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호랑이와 사자의 잡종이다. 이들은 밀림의 왕자도 무엇도 아닌 사람의 손길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한 마리의 구경거리일 뿐이다.
역사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민족에게 매우 친숙하고 신성한 동물이라 여겨지는 호랑이 또한 이 정책의 피해자, 아니, 동물이다.
그들이 호랑이를 마구잡이로 포획하는 바람에 그 수가 급격히 줄게 된 것이다.
후에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수십 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휴전선으로 인해 통로가 차단되며 호랑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산림청에서 호랑이의 개채수를 늘리기 위해 흔히 말하는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를 백두대간에 풀어놓자는 제안이 나왔다는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 나와 달리 이 책의 저자 박병상 박사는 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리산 야생 반달가슴곰을 수천 개의 덫으로 맞이한 사람들이 호랑이를 가만히 둘 수 있을까" 하면서.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에는 반달가슴곰이 나온다. ‘벼랑 끝에 선 반달가슴곰’이라는 제목으로.
반달가슴곰의 몸값이 최대 1억 원이 넘어가면서 많은 반달곰들이 밀렵꾼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반달곰들은 지리산에 숨어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그런데 반달곰들의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번에는 반달곰을 잡기위해 올무로 지리산을 뒤덮은 것이다.
위기를 느낀 자연환경생태보존회가 하루에 300개도 넘는 올무를 거뒀지만 아직도 몇몇 군데에 존재하는 거둬지지 않은 올무가 남아있는 반달곰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안전이라는 변명 아래 자신의 횡재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듯한 그들에게 시베리아 야생호랑이는 거저 주는 돈다발이나 다름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호랑이를 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나라의 생태계는 호랑이를 받아들이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때서?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은 내가 읽은 이야기가 다섯 가지 정도를 넘어가면서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땅과 산을 수십 토막 난도질한 도로에는 호랑이들보다 수십 배는 더 무서운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고, 호랑이들이 살만한 산골짜기는 스키장, 골프장으로 바뀌어 호랑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다.
호랑이 한 쌍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면적은 무려 사백 제곱킬로미터나 되는데,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그만한 생태계가 남아있지 않다. 슬프고도 안타가운 이야기다.
아마 호랑이들은, 아니, 이 책에 나오는 54가지의 동물들은, 아니, 지구에 있는 모든 동, 식물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람들이 하루빨리 생태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호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책을 끝까지 읽은 뒤 덮으면 보이는 책의 겉표지 그 뒷면을 보면
[콩 세 알 심으면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만 싹트기를] 이라는 옛 말이 있다. 이 책에 있는 모든 동식물들이 건강히 살아 숨쉬던 그 때 그 시절의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자연을 소중히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현재 우리의 생태계는 언제 어디서 그 모습을 감출지 모를 만큼 위태롭게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잘 들여다보자, 그리고 보살펴주자. 생태계를 가장 심하게 훼손한 동물은 우리지만, 가장 빠르게 복원할 수 있는 동물도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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