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어머니의 그륵 중. 문득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주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한다.
꽃은 그저 이름만 던져 두었을 때는 된소리가 들어가 읽힘이 예쁘지 않았다. 여느 작가가 꽃의 향기에 취해 아름다움이라는 숨을 불어넣고, 희망이라는 숨을 불어넣고, 사랑이라는 숨을 불어넣어 비로소 꽃이라는 단어가 뜨겁게 살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아무래도 하나하나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일이 이름에 대한 최고의 예우요, 미덕이 아닐까 싶다.
두툼한 국어 개정사전을 옆에 놓고서 까지 이야기를 쓰진 않지만, 나에게 있어선 정의가 내려진 사전은 남에게 내보이는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비밀스러운 용도가 있었다. 나는 심각하고 어려운 단어의 사용하는 작가들이 작게는 소설의 품위 크게는 사람의 인격 까지도 왈가왈부 하게 해주는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수업시간에 주워들은 전문적인 용어를 사이사이에 그럴듯하게 집어넣고선 후에 사전에서 찾아보면 완벽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말임을 알고 황급히 지우고는 했다. 미래의 붉어질 얼굴을 숨기기에 충분한 똑똑함을 가지고 있다. 웃음이나 행복 같은 단어는 쉽게 쓰이고 쉽게 불려진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의 중요한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되도록 그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댔었다. 어제 핀 사전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있다. 그리고 오늘,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사무적인 사전 위에 덮개어 감성사전이라는 책이 있다.
감성사전의 첫 페이지를 피면 ‘언어는 생물이다’ 일곱 글자가 딱 적혀 있다. 일상에서 떨어진 호박꽃, 철새, 갈대 하는 단어들이나 또는 일상에 붙어있지만 쓰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수면제, 먼지, 자유 하는 것들을 다시금 개인의 언어로 장식한 세계 유일의 사전이다.
이를 테면 사랑의 정의.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 때 샘물처럼 고여든다. 그 샘물이 마음 안에 푸르른 숲을 만든다. 푸르른 낙원을 만든다. 온 우주를 살펴보아도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낙원을 만든다.’ 사람들이 ‘강 유미’ 석자를 부를 때, 단순히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주며 부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거다. 뜨겁게 부른다는 건, 무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전에 없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일이며, 그제서야 마음을 담아 부를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웃음이나 행복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겠다. 내가 남들에게 뜨겁고 싶은 만큼, 그 애들도 마찬가지 일테니까. 아끼는 개나리색 다이어리를 펼쳐내어 책 하나를 무작정 펼쳐들고선 쉽게 쓰이지만 가벼운 취급을 받을 게 아닌 이름 하나를 수면 위로 건져 낸다. 어머니의 그륵처럼 지금까지 살면서 온 몸의 촉각과 피부로 느꼈던 그 애의 진짜 이름을 적어 본다. 단순한 정의에서 탈피하는 순간이다. 제 2의 감성사전을 만드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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