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3월 한달을 보내고, 처음으로 우리학교 고운도서관에 가보았다. 내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고 책도 많았다. 평소 독서편식이 심한 나는 그날도 역시 사회과학분야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사회과학분야중에서도 특히 여성학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나는 책들 가운데 읽고싶은 책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세 권정도 고르고 빌리려고 했으나 대출가능권수는 한권뿐이었다. 고심끝에 '여자의 탄생'이라는 책을 골랐다. 여성학관련 책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틀에 걸쳐서 이 책을 읽었다. 이때까지 내가 읽었던 여성학책들을 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아, 이 부분은 좀 오버한거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는 여성학의 논리를 이용해 정확하게 현실을 찝어내고 비평하고있다. 정말 멋진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여자의 일생을 시간순대로 나열해서 그 시기에 차별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평한다. 이 책에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부분이 있다. '여자, 결혼하다'와 '여자, 아줌마가 되다'이었다. 명절이나 가족모임때 가족들이 모이면 부인은 남편의 손아랫형제들에게 아가씨, 도련님과 같은 호칭과 더불어 존댓말을 써야한다. 우리엄마도 그랬고 외숙모도 그랬고, 아마 우리 외할머니, 할머니도 그랬을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썼던 호칭들에서 가부장적사회제도가 아직 없어지지않고있다는걸 느꼈다.
또, '안경끼는 신부는 왜 없는가' 이 부분도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주변사람들의 결혼사진을 보면 한명도 안경낀 신부가 없었다. 나는 그걸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다. 결혼식을 위해 안경낀 신부들은 안경을 벗는다. 예뻐보이고 싶은건 자기만족이지만, 예쁘다는 그 미의 기준은 결국 남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볼록한 이마, 브이라인, 크고 쌍거풀진 눈, 오똑한 코, s라인 등 이런 미의 기준에 맞춰서 여자들은 뼈를 깍고 살을 찢어서 실리콘을 넣고있다는 생각에 비참했다.
성차별이 옜날에 비해선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남자에게 남자다움,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강요하는건 아직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성차별의 대표적인 예이다. 남자아이가 부엌놀이나 인형놀이를 하면 '고추떨어진다', 여자아이가 로봇을 좋아하고 칼싸움을 좋아하면 뺏아서 인형을 안겨주는 어른도 있다. 나도 종종 여자애가 왜그렇게 참지를 못하냐, 덤벙대냐,등 남자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한다. 여자는 항상 참아야되고 덤벙대는건 남자의 몫이라는 법 있나?
아직 한국은 여자가 살기엔 힘든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제3의 성이라 불리는 아줌마이다. 억척스럽게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을 왜 남자들은 무시하는가. 가끔 여자운전자와 남자운전자가 시비가 붙으면 남자운전자는 '집에가서 밥이나 하라'며 욕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운전자가 밥할 재료를 사러 장을 보고 오는 길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임윤경작가님이 이 책에서 드신 예 중에 아는 주부가 딸의 견학에 따라갔다가 법원에서 남학생에게만 판사옷을 입혀서 그분이 왜 남자에게만 판사옷을 입히냐며 따졌다는 일화가 있다. 요즘은 사법고시합격자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상황인데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강당에서 짐을 옮기고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학생은 그냥 들어가서 쉬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아, 이게 성차별인가?'라고 생각했던게 기억났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고, 똑똑했더라면 '왜 남학생들을 안합니까?'라고 물을수 있었을텐데. 내가 결혼해서 딸을 낳는다면 그때의 나처럼 행동하지 않도록 성평등의식을 잘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성차별을 뽑을려면 남성에게만 의존하려하지않는 여성들의 노력과 남성들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 뒤 내가 사회에 나갈때 쯤에는 지금보다도 성평등의식이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