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자녀와 아내를 외국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혼자 살면서 돈을 벌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홀로 남아, 자녀가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여 영어에 능통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하느라 외로움도 견뎌야 했고, 경제적인 책임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만이 아니다. 1970년대,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 남자들인 아버지들은 ‘오일머니’를 벌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던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때였다. 다행히도 중동에서 석유로 돈을 벌어 건설 붐이 일어나 우리나라 남자들이 많은 외화를 벌어올 수 있었다.
2000년대와 1970년대의 아버지들은 각각 다른 이유이지만, 가족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외로움과 그리움을 홀로 견뎌야 했다. 윤정모의 ‘내가 낚은 금고기’를 읽고, 가족 안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물건의 가치에 밀려 자신의 존재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주인공을 보고, 과연 물질이 가족 안에서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맺게 하는가도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낚은 물고기’의 ‘나’는 가스 폭발 사고로 경비직을 잃고, 돈을 벌러 중동으로 간다. 처음에는 아내에게서 오는 편지를 무척이나 기다리지만, 점점 아내에게서 오는 편지가 두렵다. 편지에는 남편의 안부와 그리움이 절절한 내용보다는 귀국할 때 친척들이 사다 달라는 선물 목록들로 가득하다. 어느새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그는 새로운 물건을 사다들이는 사람이 되어 있다. 중동에서 아파도 고국으로 강제 귀국될까봐 아프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기본급이 적어서 잔업을 해야 수당이 있어 어느 정도 돈이 많아진다. 그것도 부두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이라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열흘 정도 작업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하루 숨막히는 탁탁한 공기를 견뎌야 하고 기후가 달라 호흡 장해를 일으켜도 참아야 한다. 당연히 고국의 가족들은 중동으로 간 아버지의 아픔을 알 리 없다.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으로 고가의 음식과 물건들을 사기에 바쁠 뿐이다.
책 속에 ‘내가 일 년 동안 고대한 희망은 오직 인간으로 귀국하는 것 뿐이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주인공이 진정으로 가족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많은 선물을 사다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 남편, 아들, 동생으로서 너무 너무 보고싶고 그리운 존재였다는 것, 돈을 벌어다 주고 좋은 것을 사줄 수 있어서 대접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를 '돈'과 맞바꿨지만, 가족에게 자신이 '돈'이나 '물질'처럼 대접받고 싶진 않을 것이다. 자신이 계속해서 돈과 물질을 제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의미는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아버지는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 가족들을 편하게 해야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과연 '아버지'의 자리를 '돈'과 맞바꿀만 할까? 아니다. 기러기 아빠들은 자신의 자리를 자녀들의 영어 교육과 맞바꿨지만, 매 순간 순간 서로가 즐겁고, 슬프고 하는 것들을 함께 할 때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물질'이 아버지를 대신 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 자체가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할 때 아버지의 자리는 빛이 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가족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 가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가장 편해야하고 가장 사랑을 많이 해야 하는 가족간의 관계 속에서 물질로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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