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휴.. 저번 주 피아노 레슨이 얼마나 지났는데!
게으른 나의 주인 이담비는 나를 쳐 줄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차라리 피아니스트 같은 사람. 나를 맘껏 사랑해 주는 사람한테 내가 팔려 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그런 후회도 필요없게 되었다. 나는 오래된 중고 피아노인데... 이담비도 나를 6년째 쓰고있는 상태다.
이담비가 나를 처음부터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담비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엔, 만날 놀 때도 나한테 와서 놀고, 이야기도 조잘조잘 해 줘서 가끔 귀찮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 심심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얼른 이 집을 떠나고 싶다.
(2)
오늘은 이담비가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불만이라도 있는걸까? 싶었다. 나한테 화풀이를 할 까봐 걱정되기도 하였다. 나는 이담비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다행이도 그건 아니였다. 이담비는 나를 덮고있는 뚜껑을 열었다. 뽀얀 먼지가 마구 나왔다. 이담비는 "켁켁." 거리고 기침을 했다.
'으이그.. 네가 안 쓰니까 그런거지!!'
나는 속으로 담비를 원망했다. 담비는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나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담비는 나한테 불만을 갖고, "피아노만 치면 짜증나!"라고 불평할 것이다.
"야, 이담비! 네가 나에게 관심이나 가져줬으면 네 실력이 엉망이 되었겠어?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줘! 난 외롭다구."
난 오늘도 이렇게 중얼거린다.
혹시나 했더나 역시나, 담비는 모든 잘못을 나한테 뒤집어씌웠다. 담비는 연습하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방을 나가버렸다. 아무 이유 없이.
뭐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지? 이 집에서 나를 챙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걸까?
(3)
오늘도 담비가 나를 찾아왔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담비와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레슨 시간이었다. 하지만 담비는 나를 앞에 두고 선생님하고 수다만 떨었다.
난 할 수 있는 일이 조용히. 잠자코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레슨시간만이라도 담비랑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내 소원이다.
(4)
오늘 나는 담비 생각을 많이 했다. 담비는 몰라도 나는 담비 생각을 많이 한다.
원래 많이 하지만 오늘은 특히 더 많이 한 것일 뿐.
그래서 그런지 담비가 내 근처에서 자주 맴돌았다. 그러더니, 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침, 그곳에는 담비의 엄마도 있었다.
"엄마! 나 오랫만에 피아노 치고 싶어! 쳐도 되지?"
믿기지 않았다. 놀라움과 기쁨. 그 외 여러가지 감정들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담비가 뚜껑을 열고, 나를 치기 시작했다. 아직은 담비가 나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많이 서툴다. 하지만 이해한다. 나 혼자서 외롭게 있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좋으니까 말이다.
(5)
담비가 또다시 나한테 왔다. 오늘은 나랑 담비랑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기대되었고 설렜다. 담비는 조금씩, 조금씩 나를 치기 시작했다. 시시때때로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주면서 나를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더니 나를 다루는 방법을 능숙하게 익혔다.
담비가 체르니의 어떤 곡을 쳤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물론 내 생각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담비는 하농, 체르니랑 소나티네라는 것을 이용해 나를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담비가 말했다.
"엄마~ 나 피아노에 필 받은 것 같아. 완전 좋지?"
'당연히! 너무 좋지.'
나는 다시 '말 많은 피아노'가 되었다. 히히히.
이제 나는 담비를 원망하지 않는다. 담비는 나를 볼 때 마다 기뻐하고, 사랑으로 대해주니까. 원망할 것도 없다. 나 역시 담비를 보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담비야. 필 받은 것 영원토록 잊지 말아줘. 우리.. 앞으로 멀어지지 말자. 나는 너와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어.너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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