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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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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을 읽고
박민희
고등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난 무언가 나의 열정을 다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고민하던 중 나의 선택은 어느 책 한 권으로 시작되었다. 열 권으로 이어지는 책, 조금은 낯설고 무거운 내용,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난 태백산맥(太白山脈)이란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태백산맥은 장편 소설로 집필 기간만 6년이 걸린 작가 조정래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에서 나는 당시의 처절한 삶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이념과 민족 중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대하소설이기에 엄격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점에서 다른 일반 소설보다 훨씬 신빙성 있게 다가왔고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살아왔던 세상의 모습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 주었다. 또 이 소설에서는 외형상 억센 발음의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 읽어 나갈 때는 그 뜻조차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모호한 말들이 많았지만,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면서 어느 샌가 익숙해져서 그 사투리가 오히려 구수하고 친근감을 주었다.
태백산맥은 1948년 여수사건부터 1953년 6.25전쟁이 끝나던 해 10월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주요내용은 빨치산과 토벌군의 대립으로 그려진다. 우익 세력들의 잔혹함, 이승만 정권의 문제점, 친일 세력들의 기득권 등을 다루고 있는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어느 것이 정말 선인지, 악인지가 자꾸만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평소 '악'이라고 알고 있던 좌익세력(빨치산)들에 대한 생각이 틀렸던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알고 있었던 '빨치산'에 대한 정보는 다만 '반국가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던 잔혹한 사람들'이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부각되는 빨치산들은 어떤 이념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으로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 어디에서도 그들을 그렇게 잔인하고 잔혹한 인물들로 표현하진 않았다. 아마도 우리의 세대나 혹은 그 윗세대들이 '빨치산'하면, 먼저 나쁘고 잔혹함으로 묶어 말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내용이 그것이고, 이곳 저곳에서 근거도 없이 떠들어대는 대부분의 일반적인 생각들 역시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빨치산이란 게 잔인했던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수 사건이라든지 순천 사건등은 모두 다 결국은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농민들의 항쟁이 아닌가. 벌교 지방의 소작농인 하대치, 강동기, 마삼수, 상동식 등도 생활고로 말미암아 빨치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막다른 길에서 어쩔 수 없이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고 북한으로부터의 물자 조달이 끊어진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겨운 투쟁을 벌였던 것이다. 우리는 빨치산의 행위에 대한 찬반을 논의하기에 앞서 같은 민족간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 서로를 미워해야만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똑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난 이 책을 통해서 쉴새 없이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염상진, 염상구 형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둘은 형제였지만 서로의 입장이 달랐다. 장남이기에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염상진과는 달리 온갖 천대를 받고 잡초처럼 자란 염상구는 어렸을 때부터 쌓여 온 불만 때문인지 형에 대한 원한이 대단히 크다. 염상진은 어려운 가정 형편의 영향으로 좌익을 택하게 되고, 동생인 염상구는 반발이라도 하듯이 우익이 된다. 어떤 사상이 옳은 것인가 하는 가치 판단을 떠나 단지 형을 미워하기에 형을 잡기 위해 우익을 택한 염상구. 그는 그것을 구실 삼아 온갖 망나니짓을 다 하고 다닌다. 형에 대한 반발심과 차별에 대한 억울함 등에 의해 염상구는 형 잡기에 혈안이 되고, 또 병적으로 그것을 즐겼다. 반면에 민중의 편에서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고자 한 염상진은 주민들의 동조를 얻고 2년여 동안 투쟁하지만 결국 수세에 몰려 자결하고 만다. 그렇게도 형을 미워했던 염상구도 형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억울함과 천대만으로 적이 되어야 했던 그 두 형제는 바로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고, 형이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후회하는 동생의 모습 또한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삐뚤어진 역사 속에서 순수했던 소작인들, 이념보다는 정하섭에 대한 사랑으로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르기로 하는 무당 소화, 비록 주먹패로 망나니처럼 행동했고 형을 증오하였지만 형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염상구, 경찰이란 체계 속에서 민족 양심에 거스르는 일에는 반대하여 해직된 이근술, 시대의 모습을 괴로워하고 고민했던 심재모. 그들 모두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 속에 존재하는 우리 민족의 참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소설을 마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태백산맥을 쓰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는 분단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왜곡된 역사 사건들의 수정을 목표로 하였다. 세 번째로는 농민을 중심으로 한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사회주의 운동을 정당하게 자리 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는 한 치의 빗나감 없이 나의 마음속 깊이 새겨졌으며 감동으로 그 경이로움을 더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모든 면을 그냥 순응하며, '파악하기'보다는 어느새 그대로 물들어 버린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역사의 어느 한 부분 역시 원인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직시하고 정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에 대해 엄밀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빨치산과 같이 정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매장되어버린 사건들을 정당한 역사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으며, 이러한 억울한 사건이 우리의 역사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못하게 하는 든든한 받침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 역사 속 사건들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후대에는 반드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태백산맥은 빨치산의 처절한 삶과, 그들이 빨치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리고 그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규명하고 있다. 빨치산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또 알려져 있던 반란 사건이 아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피지배층의 지배층에 대한 투쟁의 결과이며, 이것은 엄연한 우리의 역사인 동시에 우리가 소중히 간직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하나의 사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빨치산에 대한 평가는 더욱 새로워 질 것이고 영원한 역사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줄곧 내 자신의 존재와 우리 역사의 뜨거운 생명력을 느꼈다.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나의 가슴 속에 조정래라는 거대한 이름은 언제까지나 깊게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 이러한 소설을 하루아침에, 벌레가 허물을 벗어내듯 그리 쓰진 않았을 꺼라 생각된다. 그가 지내온 인생의 모든 것을 그는 이 책에 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때로는 손에 땀을 쥐고, 때로는 눈물이 글썽일 만큼 분노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책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로 하여금 많은 선입견을 버리게 해 준 이 책이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영원한 추억으로 또 충격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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