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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목취유취경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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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목취유취경원기(騰穆醉遊聚景園記)-구우(瞿佑)/이경선 옮김
<전략> 등목(騰穆)은 여러 가지 말로 달래어 슬픔을 풀어주면서 슬쩍 여자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곧 일어나 감사하며,
"저는 죽은 사람이라 흙이 된 지도 오래 되었어요. 그러나 만약 낭군의 몸시중을 들 수 있게 된다면 비록 죽었더라도 썩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또 낭군께서 읊으신 시구(詩句)를 듣고 이미 몸을 허락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바라옵기는 추자율을 불러 그윽한 골짜기에 봄을 불러 일으켜 주세요."
했다. 등목이 말하기를,
"먼저의 시는 말이 나오는 대로 부른 것이어서 별뜻은 없었소. 무심히 한 말이 어찌 앞일을 내다보고 한 말이었겠소?"
했다. 잠시 후 달은 서쪽 담장에 기울고 은하수는 동쪽 산봉우리로 기울었다. 방화(芳華)는 곧 교교(翹翹)에게 자리를 치우게 하였다.
"저의 집은 누추하여 서방님을 모실 수 없군요. 오히려 이 서헌이 좋겠지요."
둘은 손을 잡고 그 곳에 들어가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잠자리의 몸가짐이 산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날이 샐 녘에 둘은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다.
낮에 등목은 취경원(聚景園)의 한쪽 구석진 곳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송나라 궁인 위방화(衛芳華)의 무덤이 있는데, 그 왼편에 있는 작은 언덕진 것은 곧 교교의 무덤이었다.
등목은 감탄을 금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저물어 다시 서헌으로 찾아가 보니 방화가 이미 와 있었다. 등목을 보자 반가워하며,
"낮에 당신이 저를 찾아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러나 저는 밤에만 뵈올 수 있고 낮에는 그렇게 할 수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며칠 지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뵈올 수 있게 될 거예요."
하고 말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그들은 밤마다 만났다. 열흘쯤 지나서는 낮에도 만날 수 있었다. 따라서 등목은 자기의 객사에 데리고 가서 같이 살았다.
얼마 안 가 등목은 과거에 떨어져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때 방화는 등목의 집에 따라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교교는 왜 데리고 가지 않소?"
"제가 교교를 데리고 당신을 따라가 시중을 들게 되면 옛집에는 사람이 없게 되어 집을 지킬 사람이 없지 않겠어요?"
등목은 옳게 여기고 방화만 데리고 같이 고향에 돌아갔다. 온 가족에게 인사시키고 '항주(杭州)의 양가 규수를 얻었다'고 소개하여 두었다. 모든 사람이 방화의 거동이 온유하고 말씨가 지혜로운 것을 보고 의심치 않고 기뻐했다.
방화는 등목과 같이 살면서 윗사람은 예로써 잘 받들고 비복(婢僕)은 은혜로써 거느려 사방 이웃 사이에 환심을 얻었다. 또 집안 다스리기를 부지런히 하며, 몸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가져 비록 중문 밖이라 하더라도 가볍게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니, 모든 사람들이 등목은 좋은 아내를 맞이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사년(丁巳年) 이른 가을, 등목은 또 다시 절강성(浙江省)의 향시(鄕試)에 응하려고 채비를 차렸다. 떠나기 며칠 전에 방화는 등목에게 청을 했다.
"임안(臨安)은 저의 고향이에요. 당신을 따라 여기 온 지도 이미 3년이 지났군요. 저를 데리고 가시지 않겠어요? 교교도 찾아 볼 겸……."
등목은 이를 허락하였다. 그들은 배를 세내어 같이 타고 바로 전당(錢糖)으로 갔다. 우선 집을 얻어 자리를 잡았다. 여기 도착한 이튿날이 바로 7월 보름이라 방화는 등목에게 말했다.
"3년 전 바로 이날 밤에 당신과 만났어요. 우리 취경원에 가서 다시 한 번 옛날과 같이 놀아보면 어떻겠어요?"
등목은 동의하고 술을 준비하여 그 곳으로 갔다.
그날 밤 달은 동쪽 담장 위에 얼굴을 내밀었고, 연꽃은 남포(南浦)에 피었으며, 호숫가 둑 위에는 이슬 머금은 버들이 안개 속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취경원 앞에까지 다다르니 교교가 길목까지 마중 나와 절하며 반겼다.
"아가씨께선 서방님을 모시옵고 성내(城內)로 놀러가신 지 3년, 인간 세상의 재미를 너무 보시느라 옛집을 잊으셨나 보군요."
세 사람은 원내로 들어가 서헌에 이르러 둘러앉았다. 그 때 방화가 갑자기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서방님의 다정하심에 마음이 흔들려 잠자리를 모셨고, 아직도 그 즐거움을 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또다시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왜요?"
"본디 음계(陰界)에 있는 몸으로 오랫동안 양계(陽界)에 나와 있음은 옳지 못한 짓이었어요. 다만 당신과 더불어 전세(前世)에 인연이 있었던 까닭으로 계율을 어겨서까지 모셨던 것이지만, 이제 인연이 다하여 이별의 말씀을 올리는 것이에요."
등목은 놀라 물었다.
"그 인연이 다하는 때가 언제요?"
"바로 오늘 저녁입니다."
등목은 기가 막혔다. 슬픔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방화는,
"저도 일생 동안 당신을 모시고 길이 즐거움을 같이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정해진 운명에는 한이 있어 그것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었어요. 만약 거기에 더 오래 머물러 지체하였더라면 반드시 붙잡으러 왔을 거예요. 그러므로 붙잡지 마세요. 저 때문에 당신께 이롭지 못한 일이 생길까 두렵군요. 월랑(越娘)의 옛일을 모르십니까?"
하고 말했다. 등목은 방화의 말뜻을 조금은 깨닫겠으나, 비통하고 애절한 마음을 누르지 못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산사(山寺)의 종소리가 들리고 수촌(水村)의 첫닭이 우니, 방화는 급히 일어나 등목에게 이별을 고하며 손가락에 낀 옥가락지를 빼어 등목의 옷고름에 매주면서,
"뒷날 이것을 보시고 옛정을 잊지 말아주세요."
하고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나 가면서도 차마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는지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다가 이윽고 자취를 감추었다. 등목은 큰 소리로 울고는 객사로 돌아왔다.
다음날 등목은 술과 안주를 갖추어 방화의 무덤에 가서 저전(楮錢)을 사르고 조문(弔文)을 지어 읽었다. <중략>
이후로 방화는 아주 없어져 나타나지 않았다. 등목은 홀로 객사에 머물면서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나날을 보냈다. 시험날은 다가왔으나 시험에 응할 마음도 없었으며, 낙심하고 슬픔에 잠겨 그냥 고향에 돌아갔다. 친척들이 그 까닭을 묻자, 처음부터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 말에 모두 놀랐다.
등목은 내내 장가들지 않고 있다가 안탕산(雁蕩山)에 약초를 캐러 들어가더니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전등신화(剪燈新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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