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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논설문

제목 선사시대(1)-구석기시대
글쓴이 노윤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초등학교 5학년때에도 배우고, 중학교 때에도 배우고,고등학교에도 배운다.
지금껏 역사를 공부하면서 혹 따분하다거나 지루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우선 역사는 우리에게 있어 과거의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는 현재에 비해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보이고 별다른 실용성을 느끼지 못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역사왜곡이 많이 일어나고 이로인해 적절하지 못한 역사지식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과거 우리조상들의 투지와 열정은 계속해서 의미를 잃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역사중에도 특히 국사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이라면 우리나라의 기본 지식이상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계속해서 국사관련 정책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국민들이 이러한 경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된다면 결국엔 중국이 북한의 영토를 자신들의 국가에 편입시키려 하거나 일본이 독도를 일본의 부속 섬으로 만들려고 하는 상황들이 실제로 실현될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땅! 우리땅!" 하지만 막상 그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실 그 우리땅 이라는 주장도 억지 주장이 되어 버릴 수가 있다. 엄연히 우리땅이고 이는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확한 근거가 없는 바람에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게 된다면 이만큼 한탄스러울 일이 있을까.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는 막연히 우리가 하기 싫고 재미가 없다고 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 반드시 기초이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전에 나와 있는 일반적인 역사지식으로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을것 같아 보다 쉽고 깊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바로 '선사시대'이다. 선사시대 여기서 선사(先史)란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시기를 뜻하는데 선사시대 이후를 '역사시대'라고 하며 선사시대는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선사시대는 총 4가지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시기로는 구석기 시대가 있다. 구석기(舊石器)시대란 약 기원전(예수의 탄생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전은 기원전 그 후는 기원후라고 표기한다. 예를 들자면 2014년은 기원후 2014년이 된다.)70만년전으로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을 대표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이때에는 아직 돌을 다듬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단순히 돌을 서로 깨뜨리거나 떼어내서 사용했다. 그래서 옛(예) 구(舊)를 사용해 옛날 돌 (구석)이라고 말한다. 이 때 사용했던 돌 도구를 '뗀석기'라고 한다. 앞에서와 같이 돌을 떼어내서 사용했기에 '뗀석기'라고 이름이 붙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아직 농사가 시작되지 못해 정착생활이 아닌 이동생활을
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큰 동굴이나 나뭇가지나 가죽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간단하게 지어진 막집에서 생활했다. 농사가 없었기에 그들은 사냥(수렵)이나 채집으로 식량을 구했다. 이 때 슴베찌르개 라는 뗀석기를 크고 단단한 나무대에 연결시켜 창을 만든 후 이를 사용해 사냥을 했다고 한다. 사냥을 한후 처음에는 날로 먹으며 생활했지만 곧 불의 사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익혀먹게 되었는데 불은 음식의 요리 이외에도 외부 날짐승들의 침입을 막는데도 잘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구석기인들은 사냥을 통해 얻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만든 '가죽옷'을 입으며 살았으며 이 때에는 식량을 공동분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등사회'
를 이루고 살았다.
이러한 구석기인들의 삶중 일부가 동굴의 벽화나 선각화같은 곳에서 발견되어 알려지고 있는데 이 그림들에는 대체로 사냥을 잘 되게 해달라는 의미들이 담겨있다. 즉 그들의 번영을 바랬던 것이었다. 이러한 구석기 시대는 사실 경기도의 '연천 전곡리' 라는 마을에서 아슐리안(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떼어내어 만든)형 도끼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모비우스 라는 교수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남,동북아시아에는 찍개와 같은 석기가 존재했고 지금의 서양 지역에는 아슐리안형 석기와 같은 우수한 석기가 있었으므로 서양의 구석기 문화가 더 우세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도 아슐리안 형 석기가 발견이 되면서 이 학설은 뒤집혀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에는 평남 상원군의 검은모루 동굴(동물화석과 석기가 발견됨)이나 청원의 두루봉 동굴(사람의 뼈 발견:흥수아이라고 불림)등이 있다.
이렇듯 구석기 시대에서는 다양한 뗀석기를 사용하며 이동생활을 했고 평등사회를 이루었다. 항상 역사의 처음 부분인 이 구석기 시대를 잘 이해하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신석기 시대에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