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남쪽 기슭에 웅장한 폭포를 머금은 청룡사에 벗들과 나들이를 하였다. 비 개인 뒤라 웅장하게 내리꽂는 물줄기가 청량감을 더한다. 계곡에서 발 담그고 늦봄의 정취를 맘껏 즐기고 내려오는 길에 해우소에 들러 시름 내려놓는데 시선을 빼앗는 글귀가 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버스에 올라서야 지갑을 놓고 온 사실을 깨닫고 쩔쩔매는 아주머니에게 ‘다음에 두 배로 내세요.’라고 말하며 선하게 미소 짓는 기사 아저씨의 넉넉함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우연히 접한 문장이 나를 기쁜 마음으로 이끈다. ‘살아가며 우리를 기쁨으로 미소 짓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던진 화두다.

새해 첫날 동해에 벅차게 떠오르는 해가 우리네 가슴을 붉게 물들이면 절로 뛰는 가슴이 되며 우리를 벅차게 만든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피어나는 그 황홀한 희망은 정녕 우리를 기쁘게 한다.
 어버이날을 맞아,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뵈러 내려가 노모가 차려준 쥐코밥상을 단 둘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어머니 사랑을 느끼는 중년의 아들이 애틋함으로 미소 짓게 한다. 도회지에서 입은 상처들이 치유된다. 사립문을 벗어나 별빛이 내려앉은 바다 앞에 서서, 아무리 그리워도 다가갈 수 없는 그녀를 닮은 불빛을 바라보며 사춘기 소년처럼 설레는 가슴이 된다. 하릴없이 그리움 앞세우는 그이의 감성은 우리를 살며시 미소 짓게 한다. 그녀와 같이 섰던 그곳에서 어둠을 머금은 섬을 바라보며 가슴 시리도록 애절한 추억을 만끽하는 이의 눈동자는 우리를 기쁘게 한다. 

 오래 연락이 닿지 않아 소식이 문득문득 궁금했던 이들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은 마음과 다시 어울려 보고픈 얼굴을 하고 당시의 느낌을 담은 글을 다시 펼치는 이의 그리움 글썽이는 눈은 왠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정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새 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어둠을 깨운다. 긴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다. 이 자연의 선물은 귀를 기울이게 한다. 조금의 흐트러짐 없는 억만년을 넘어선 존재의 힘을 지닌 빗소리에 젖어들면 평화가 찾아든다. 이 비는 분명 우리를 기쁘게 한다. 

 식사 후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예쁜 승강이를 벌인다. 이 다툼은 보는 이를 기쁘게 한다. 언제나 밥값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관계를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기에 그 선량한 마음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코스모스에 앉았다가 꽃향기를 묻힌 채 어깨 위로 날아와 날개를 흔드는 고추잠자리, 그 위에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와 있을 때 빨간 고추 늘어놓은 어머니가 떠오르니 그 가을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늘 밴드나 카톡으로 안부나 유용한 정보를 보내주는 사람은 반갑고 고맙다. 그는 한가하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늘 벗들을 배려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를 기쁘게 한다. 

 어릴 적 추억을 품고 있는 꼬부랑 고갯길을 아들 손잡고 걷는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는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온갖 향긋한 향기로 가득한 오솔길, 햇살이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해 주는 그 길을 아이와 함께 언젠가는 걷겠다는 다짐을 하며 미소 떠올린다.

 직장생활 갓 시작한 딸아이가 연휴 여행지로 아빠 고향 찾아 할아버지, 할머니 안부 여쭙고 용돈 드리는 고운 마음을 전해들은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는 우리를 기쁘게 한다.

푸른 바다에 접해 있는 해변에 섰다. 거대한 안개의 이동이 시작된다. 산허리를 돌아 소나무 숲을 덮치더니 빠른 속도로 잔디밭을 점하고 이내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나가 운무로 자리매김 한다. 안개가 이렇게도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중에 한 아이와 아빠가 온통 안갯속에 갇혀있다. 미소가 지어진다. 이 상쾌함, 신선함,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들이다. 신선이 되어 안갯속을 경험하는 아이는 경이로울 것이다. 아이의 웃는 얼굴, 즐거워하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점 진열대에 놓인 젊은 시인의 처녀시집 첫 페이지의 시가 자신 맘처럼 다가올 때 우리를 기쁨으로 미소 짓게 한다. 두꺼운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 긋는 청년의 연필 자국 또한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