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단상
산책길에 만난 흐드러지게 핀 백목련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벗이 보내준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환희를 선물한다. 내 눈과 귀가 호사롭다. 작은 연못에서 비단잉어 두 마리가 왈츠 음률에 맞추어 봄을 노래하며 춤을 춘다. 그들의 흐느적거림에 내 마음도 함께 작동한다. 행복하다. 지난봄의 아련한 기억 속에서 새봄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의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중의 말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에 반비례하여 시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바로 삶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바람처럼 시간이 흘러 먼 날을 회상하며 특별함으로 어머니를,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만끽한다, 이 봄을. 오래전 오늘도 내 고향 거제 바다는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일어서려 하였으리라. 해마다 봄소식과 함께 맞이하는 특별한 날이다. 엊그제 뵈었지만, 고향 집 어머니에게 마음이 간다. 손 전화를 눌러 어머니를 불렀다. 옆에 앉아 계신 듯 반기신다. 목련꽃 흐드러진 그늘이 참 곱다. 나뭇가지 흔들어 그리움 쏟아내는 잔디 위에 땅을 베개 삼아 하늘을 향해 누웠다. 눕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가장 넓게 볼 수 있음이며 자세히 볼 수 있음이다. 이렇게 꽃바람 불어 그리운 날, 사람도 눕고 나뭇잎도 눕고 내 생각도 눕고 세상을 보는 눈도 눕고 그리하여 낮아진 내가 되고 싶다. 뜨겁게 모든 것 다 주고 껍데기만 남은 연탄재처럼 푸석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더욱 나를 낮추어 본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인데도 왜 이다지 서러운가? 지천명을 넘기니 아버지 세상 뜨시고 어머니 늙어 병드시니 자식의 눈동자는 흐려진다. 나를 낮추고 땅 위에 누워 올리는 내 작은 기도가 받아들여지기를 나직이 소망하여 본다.

한참을 자연과 벗하다 집으로 향하는데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 귓가를 간질인다. 내 어머니의 정 같아 고이 담아 개켜둔다. 이내 마음이 따뜻해 온다. 매년 그렇듯이 어머니를 가슴에 담으며 내 봄은 시작된다. 어머니의 봄을 사랑하며, 내 봄도 마냥 사랑하리라. 소리 없이 다가오는 새봄을 몸으로 느끼며 한 겹 두꺼운 외투도 던져버리고 몸속을 파고드는 두려움의 기운까지도 떨쳐내고 이 따뜻한 새 기운 속으로 힘차게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