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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한쪽의 동그라미를 추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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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새벽길을 나선다. 어제도 떠올라 크나큰 세계를 안았던 그 태양을 맞이하러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자유를 노래하리라는 설레는 마음을 하고서 말이다. 삶의 여행도 종국에는 자유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아직은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바다 쪽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세상의 눈뜸이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리라. 지금 지천이 바다인 고향 거제도의 잘 다듬어진 해변로를 천천히 달린다. 조금은 느리지만 그 느림을 즐기며 힘차게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상쾌한 기운을 마셔본다. 수평선 저 멀리부터 노랗게 날이 밝아 온다. 향기마저도 진 노랗다. 더불어 내 마음도 들뜨기 시작한다. 이제 해 오름이 시작되면 새벽은 흥이 나겠지. 학동을 지나 해금강으로 향하는데 바다 쪽에서의 장관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한다. 진한 회색의 낮게 깔린 구름 층, 드문드문 떠 있는 섬들을 앞 배경으로 하여 수평선 위로 붉은 점이 찍힌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은 어쩔 수 없이 머뭇거린다. 이로 인해 그 누구도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파스텔 톤의 위대한 풍경화 한 폭이 그려진다. 꽤 덩치 큰 동백나무에 이슬 맺힌 거미집이 연한 붉음을 받으며 빛나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만남이다. 이 모든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자연과 오롯이 하나가 되어 본다. 구름에 한쪽이 가려져 꽤 긴 시간을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태양을 보며 길지 않은 내 삶을 회상해 본다.
남다르지 않은 유년과 청년기를 보내고 대학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생활을 한지 2년여만에 우리에게 불행이 닥쳤다. 아이가 첫돌을 지낸 얼마 뒤였던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창원에 위치한 업체로 향했다. 납품한 기계가 문제가 생겨 며칠째 A/S기사와 함께 하자 보수 작업이 한창인 시기였다. 어렵사리 일을 마무리하고 부산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이 되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피곤함이 밀려왔다. 곧 나아지겠지 하고는 계약 건이 있어서 모 업체를 방문했다. 젊은 혈기로 살아가던 이즈음 건강에 대해서는 자만심까지도 가졌던 시절이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약속되어 있는 업체로 향했다. 업체 사장님과 가격 인하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딴에는 열을 내려보려는 심산으로 수돗물에 얼굴을 씻었다. 그러나 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겨우 계단을 내려가 1층 사무실의 여직원에게 회사로의 연락을 부탁하고서는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건강한 육체적 생활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불행은 이렇게 갑자기 다가왔다. 조금만 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
'과로, 스트레스에 의한 뇌출혈'
수술 후 사흘만에 의식을 되찾은 나에게 이러한 병명으로 육체의 반을 고스란히 앗아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주어진 시련으로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아내에게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어디 아내뿐이겠는가?
나를 아껴주고 격려해 주던 모든 사람들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겨 주고야 말았다. 사흘만에 깨어난 흐릿한 내 눈에 비쳐진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장성한 막내아들의 몸뚱이 앞에서 눈물로 지새우신 한스러운 눈빛은 지금도 고향으로 마음이 향할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뇌수술 후 재활치료와 한방치료에 전념한 결과, 아이 걸음마 수준이지만 다시 걷게되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호전이 없을 것이라는 담당 의사의 말이 왜 그렇게도 가슴을 아리게 하던지......
'장애3급, 왼쪽 팔 다리 사용 제한 그리고 노동력 영구 상실, 건강했던 청년에게, 하루아침에 내려진 무거운 형벌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힘든 5개월 여의 병원 생활과 일명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 나선 긴 시간들을 아내와 함께 하였으나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절망의 골은 깊어만 갔다. 병과 씨름하는 동안 죄 없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채 남에게 맡겨져야만 했다. 이때부터 아내의 역경은 가히 눈물겹도록 안쓰럽다. 생활력이 남다른 아내는 눈물 속에서도 꿋꿋이 살림을 꾸려나갔다. 돌이켜보면 생활의 무게보다도 남편의 정신적 히스테리를 감당하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을 시킨다고 어르고 달래서 혹 길거리에 나서기라도 하면 남다른 시선들을 감내하기에는 정작 나보다는 힘이 들었을 것이다. 아내의 나이 겨우 스물 일곱이 아니었던가...... .
이즈음 난 심한 패배감과 삶의 상실감으로 죽음까지도 생각할 시기였으니 아내가 느낀 무게 감은 더욱 배가되었을 것이다. 육신이 멀쩡한 사람들도 성격차이니 하면서 헤어지는 시대가 아닌가?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삶의 무게에다 남편의 히스테리까지 아마도 이중고 아니 삼중고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주위의 끈질긴 권유와 마음이 약한 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합해져, 무던히도 전국을 찾아다녔다. 검증 받지 못한 의술에 의존해야만 하는 젊은 부부의 심정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든 시련 앞에서, 짓누르는 고통과 한스러움은 살아갈 힘조차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었다. 여성지에 실린 신통하다는 도인, 침술의 대가, 옆집 아주머니가 귀 뜸해 준 기 전문가 이렇게 전국으로 찾아 나서기를 두어해, 희망으로 나섰다가 좌절의 깊이만 더 보태 돌아왔다. 심신이 지치고 경제적 여건이 고갈되고서야 미련의 끈을 놓기로 하였다.
이즈음 난 심한 대인 기피증과 좌절감으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잠에서 깨어나 보니 집안이 너무 조용하고 적막감마저 들었다. 아마도 늦잠을 잔 모양이다. 아이는 놀이방에 갔을 것이고 아내는 일을 나갔을 것이다. 아내는 동네 수퍼에서 일할 무렵이다. 심한 공복 감에 냉장고를 뒤져서 허기를 채웠다. 꾸역꾸역,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잠시, '내가 이러고 왜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이즈음 혼자 옷 입는 일은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고뇌의 극.
"이렇게 살바엔 생을 끝내자."
이 생각만이 상처 난 내 머리에 가득 찼다.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고 반기기라도 하듯이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강렬한 햇빛이 나를 반겼다. 찡그리며 두리번거리는데 소형 콘도라만 보일 뿐 휭한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옥상이라는 곳이 그랬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끝자락을 올라갈 수 있는 곳이란 없었다. 바둥거리기를 십여 분이 지났을까, 온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내 포기하는 마음이 되고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무척이나 맑아서 구름 한 점 없었다. 비웃기라도 하듯이.......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낸 서글픈 자살소동은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막을 내렸다. 당시의 고뇌는 극에 달했고 극복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삶에서의 아무런 꿈도 계획도 없이 속절없는 시간들을 보내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 감정 조절이 어려운 이유 때문에 아내와의 불화는 깊어만 가고 포기한 생을 살던 중 한 권의 책을 만난다.장애를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눈물로 엮은 수기집이었다. 그들의 삶을 접하고 불현듯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살아갈 것이라면 좌절의 끝을 여기까지 하자 이러한 결심이 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에서 걸음도 온전하지 못하고 더구나 한 팔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내 마음을 접었다. 결심과 포기가 거듭되던 어느 날, 아내가 내 의중을 알고 넌지시 물어 왔다.
"요즘 책 대여점이라는 것이 새로 생기는데 당신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운을 띄우며
"당신은 책을 좋아하고 하니까 돈 벌려는 생각말고 그냥 시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며 말끝을 흐린다. 기실 아내는 조심스런 말투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책을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라 마음이 끌렸다. 대학시절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조그만 책자도 만들어 본 기억이 있다. 그런 연유로 졸업 후 처음 입사한 곳도 월간 잡지사였다. 선뜻 승낙은 하지 못했지만 기쁘고 고마웠다. 해 보자는 결심이 서고 나니 조바심이 일었다. 과연 내가 이 몸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의지는 금새 움츠려들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 아파트 전세금과 산재 보상금을 합쳐 '동네서당'이라는 책 대여점을 열게 되었다. 그때가 발병 후 3년 정도가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긴 병상의 기억을 털어 버리고 균형을 잃어버린 반쪽이의 몸을 하고서 다시금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 용기가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모두가 아내의 도움임을 느낀다.
개업식 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친구들과 아내와 체인 본부에서 하여준 것이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자 길거리에 온통 학생 물결이었고 더불어 책방에도 발 디딜 곳 없이 붐볐다. 지금도 그 날의 감동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대 성업이었다. 책 대여점이라는 업종이 시작되는 단계였고 점포 위치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경제적 자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노동의 즐거움이 생기니 움츠렸던 마음도 열리며 스스로 운동도 하게되고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마음이 즐거우니 몸도 점점 호전되어 걸음걸이도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일에 익숙해지면서 생활은 더욱 안정되어 갔다. 가정 경제란 것이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 것 아닌가?
이즈음 해운대 신도시에 조그만 아파트를 분양 받아 이사도 하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내 가정에도 찾아들어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다들 그러하겠지만 이사 온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의 손을 잡으니 많이도 거칠어져 있었다. 정말 고운 손이었는데 나에게 시집와 이게 무슨 고생일까 생각하니 속절없이 또 눈물이 흐른다. 아내의 엷은 미소가 눈물 속에서 흔들린다. 아무리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하지만 감히 상상이나 했던 삶의 형태이겠는가?
난 눈물이 많다. 건강을 잃고 많이도 울었다. 혼자서도 울고 친구를 잡고도 서러운 눈물을 흘렸으며 아내와 같이도 울었다. 울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었다. 서럽게 울고 나면 또 당분간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곤 했다. 남자의 눈물이 평생에 세 번이면 족하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부정한다. 그러나 부모님 앞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 막내아들 몸뚱이 부여잡고 한스럽게 우시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참아야만 했다. 아내도 눈물이 많았다고 한다. 못난 남편 만나 살다보니 눈물샘이 말라 버렸다고 한다. 마음 약한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슬픔이나 고난 따위에는 눈물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산다.
생활이 안정되어 갈 즈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 찾아들었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것이다. 속으로만 바라던 일이었지만 소식을 접하는 순간 기쁨이 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다. 장애인 아빠를 갖게 될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아내는
"당신 마음은 알지만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거에요."
하며 오히려 위로한다. 과연 그럴까? 철이 들어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
내가 많이 노력해야 될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찬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하곤 한다. 지금은 형제가 싸우고 웃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 맏이는 6학년이 되었고 막내는 2학년이 되었다. 큰 녀석은 의젓하고 똘똘하며 어른스럽기까지 하여 때로는 아비를 위로하기도 한다. 둘째는 누굴 닮았는지 막무가내의 성격이다. 조화롭게 잘 자라주는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다. 더 철이 들면 아빠의 아픔을 이해 해 주리라 감히 기대해 본다.
가게를 3년여 전에 그만 두었다. 장사라는 것이 그랬다. 조금 괜찮다 싶은 업종은 금새 경쟁자가 생기고 유행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내 점포 주위로 3갠가 4개의 대여점이 더 생겨나고 그 여파로 매출도 급감하여 휴식기간도 갖고 다른 일을 구상해 볼까하여 7년여 해 온 가게를 아쉬움 속에서 접었다.
여기에서 얻은 인생의 자신감, 여유롭지는 않지만 경제적 자립을 이루게된 것을 고맙고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주어졌던 시련을 극복하고 삶의 무게로 받아들었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져 올린 지혜이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지금은 한다. 목욕탕엘 가면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에게 등을 내밀며
"밀어주기 하실래요?"
한다. 아저씨는 미소로 대답한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임을 느낀다. 이런 자신감이 생기기까지에는 아마도 많은 세월이 흘렀으리라. 고뇌로 몸부림치던 삼십대의 청년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불혹을 넘겼으니 정말 유수와 같다. 책방시절 많은 도움도 받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함께 했던 당시의 어린 친구들이 이젠 어른이 되어 가끔씩 연락을 취해 올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 또한 살아가는 기쁨이며 행복임을 느낀다. 책 대여점을 정리하고 2 개월 여의 휴식기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달콤한 날들이었다. 이 기간에 앞으로의 삶의 계획을 세우며 벅찬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의논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감안하여 선택하게 된 것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료 검토와 의논을 거듭한 결과 교육기관을 정하고 6 개월 간의 독서 지도사 교육과정에 입문하였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기대감으로 단 한번의 결석 없이 교육에 임하였다. 뒤늦은 배움의 길은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최선을 다한 결과 수료식 때 상까지 받게되어 그 기쁨은 더했다. 자격증을 거머쥐고 복지공단을 방문하였다. 동안의 고마움을 나누는 과정에서 또 한번의 교육 기회가 남아 있음을 전해 듣고 담당자의 안내로 모 대학의 사회교육원에서 개강예정인 '속독강사과정'에 등록을 하였다. 계속된 교육에 힘들었지만 주어진 기회이기에 최선을 다하였다. 독서지도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속독강사자격증도 3개월 여의 과정을 이수함으로 취득하게 되었다. 묵직함이 느껴지기까지 하는 두 개의 자격증을 손에 들고 준비된 교사의 자격으로 첫 독서지도 수업을 하게 된 곳이 '부산 소년의 집'. 첫 수업이 봉사의 즐거움으로 시작됨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마주한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에서 가르침을 준다기 보다는 더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좌절 속에서 건져낸 벅찬 행복이기에 기쁨의 크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긴 시간을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태양을 보고 있으려니 쉘 실버스타인의 완벽함의 불편함을 생각하게 하여주는 동화 '잃어버린 조각'이 생각난다. 귀퉁이 한 조각 떨어져 나가 불완전한 동그라미, 힘겹고 천천히 구를 수밖에 없지만 주위의 산도들도 보고 나비와 이야기도 나누고 꽃 냄새도 맡으며 조각을 찾아 나서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동그라미,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떠오르지만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저 태양. 저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완벽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하게 그리고 느리게 살아가는 삶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혜를 이 여명 앞에서 거두어 담는다. 어제도 떠올랐고 내일도 힘차게 솟아오를 해이건만 지금 피어오르는 저 태양은 감당하기 어려운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힘든 순간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된다. 이 순간 불의의 사고로 실의에 빠졌거나 건강을 잃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도 이 희망의 태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장애는 삶에서 누구에게든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장애는 불편을 줄 뿐 불행일 수 없다는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네 삶에서 어차피 다양한 형태의 시련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태양을 등지며 돌아서는데 꼬불꼬불 생긴 길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남새밭에서 아들이 떠날 때 챙겨 줄 것들을 장만하고 계실 어머니를 떠올린다.
꽤 멀리 나왔지만 꼬부랑길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어머니 품까지 데려갈 것이다. 평범한 한 해이기를 꿈꾸며 시작했기에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며 상식적인 생각들로 살아가리라. 그리하여 보통 사람들과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사는 날들이기를 꿈꾸어보는 오늘이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어쩌면 특별한 삶일지도 모를 일이다. 잃어버린 한 쪽의 동그라미를 추억하며 그렇게.[산재수기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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