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베니스의 상인(저학년) |
세익스피어
옛날,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베니스에 안토니오라는 젊은 상인이 살았다. 그는 자기의 무역선으로 외국과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안토니오는 인정이 많아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에게는 바사니오라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바사니오가 찾아와서 말했다.
"안토니오,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네. 급하게 써야할 데가 있으니 돈을 좀 빌려주게."
"바사니오, 사정을 자세히 말해 보게. 자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겠네."
"고마워, 자네 같은 친구가 있으니 난 행복한 사람일세."
바사니오는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 그는 포셔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귀게 되었다. 벨몬트에 사는 포셔는 얼마 전에 아버지가 죽자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바사니오는 부잣집 딸에게 결혼을 신청하려면 귀족의 채면이 깍이지 않는 차림새를 해야 했다. 그렇게 꾸미려면 적어도 3000더커트는 있어야 될 것 같았다.
"안토니오, 어떻게 하든지 3000더커트를 구해야겠는데 안되겠나?"
"자네 사정을 잘 알겠어. 그런데 지금은 갖고 있는 돈이 없어. 곧 상품을 가득 실은 배가 돌아올테니, 우선 필요한 돈을 빌려 보세."
두 사람은 그 길로 샤일록이라는 돈놀이꾼을 찾아갔다. 유태인인 샤일록은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욕심이 많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안토니오는 이런 샤일록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샤일록 역시 안토니오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안토니오가 이자도 받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남들에게 더 욕을 얻어 먹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안토니오는 여러 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샤일록에게 창피를 주었다. 샤일록은 그 때마다 복수를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곤 했다. 안토니오는 샤일록을 찾아가는 것이 싫었지만, 친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자는 원하는 대로 줄 테니, 3000더커트만 빌려 주시오. 배가 돌아오는 대로 곧 갚겠소."
'이 3000더커트는 안토니오 씨가 빌리는 거지요?"
샤일록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소, 내가 빌리는 거요."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슬쩍 흘겨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녀석, 어디 두고 보자. 속이 후련하게 원수를 갚을 테니까.'
샤일록은 갑자기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훌륭한 안토니오 님의 부탁이니 당연히 빌려 드려야지요. 이자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3개월의 기한을 정하고, 돈을 못 갚으시면 나리의 몸에서 살 한 파운드를 베어 내기로 하지요. 헤헤헤, 이것은 장난 삼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좋소, 그렇게 하지."
바사니오가 깜짝 놀라며 안토니오를 말렸으나, 안토니오는 차용 증명서에 서명을 했다.
바사니오는 친구가 마련해 준 돈으로 멋지게 차려입고, 그레이시아노라는 친구와 함께 밸몬트를 떠났다.
바사니오가 사랑하고 있는 여인 포셔에게는 죽은 아버지가 남겨 준 세 개의 함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 함들을 포셔에게 주며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결혼을 신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세 개의 함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해라. 그리고 그 속에 쓰여 있는 대로 따라야 한다."
세 개의 함은 각각 순금과 은, 그리고 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포셔에게 청혼을 한 모로코 왕은 순금의 함을 택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겉모양이 아름답다고 속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밖의 치장에만 신경을 쓰다가 속의 삶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았느니라. 황금으로 덮인 무덤도 속에는 구더기가 끓고 있다. 그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할 테니 돌아가거라."
모로코 왕은 크게 실망하여 돌아갔다.
다음에는 아라곤 왕이 청혼을 하러 와서는 은으로 된 함을 골랐다. 거기에는 바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바보의 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이 함은 내가 일곱 번이나 다지고 다져서 만든 것이다. 그대도 그처럼 신중히 생각해서 함을 택했더라면 실수가 없었을 것이다. 함을 잘못 골랐으니, 실없는 욕심은 버리고 어서 물러가라."
아라곤 왕은 기분이 나빠져서 급히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포셔는 잔뜩 실망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하녀가 들어와서 말했다.
"베니스에서 온 젊은 분이 아씨에게 안내하라고 하십니다. 훌륭한 선물을 잔뜩 가지고 오셨어요."
포셔는 혹시 바사니오가 아닐까 하여 몹시 흥분했다. 잠시 후, 바사니오와 그레이시아노를 맞은 포셔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바사니오가 세 개의 함 앞에 앉았다. 그는 세 개의 함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납으로 만들어진 함을 가리켰다. 함 안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외적인 조건으로 선택하지 않은 그대에게 행운이 있을 것이다. 그대의 선택은 옳았느니라. 앞으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지 말고 이것으로 만족하여라. 네가 택한 여인을 그대의 아내로 삼아 사랑하며 살아 가거라."
표셔는 바사니오를 자기의 남편으로 삼는다는 약속으로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주었다.
"바사니오님, 이 반지를 잘 간직하여 주십시오. 이 반지를 잃는다든가 누구에게 주어 버리면 사랑이 식은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이 반지가 내 손에서 안 보이는 때는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바사니오의 청혼은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왔던 그레이시아노도 포셔의 하녀 네리사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
두 쌍의 약혼자들이 행복에 겨워 있을 때, 안토니오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리운 벗 바사니오, 나의 배는 폭풍을 만나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네. 그래서 샤일록에게 돈을 갚기로 한 날짜가 지나가 버렸으니, 이제는 죽을 도리밖에 없네. 죽기 전에 자네를 만나 보고 싶군. 사긴이 허락되면 내게 와 주게나.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고. 형편을 보아서 좋도록 하게.>
편지를 읽은 바사니오는 포셔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편지를 가져다 준 심부름꾼도 한 마디 했다.
"잔인한 유태인인 돈은 절대로 안 받겠다고 합니다. 빌려간 돈의 스무 배를 주어도 싫으니, 약속대로 생살 한 파운드를 베게 해 달라고 해요."
포셔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바사니오 님, 유태인에게 빌린 돈이 얼마지요?"
"3000더커트요."
"그러면 6000더커트로 갚으세요. 그렇게 훌륭한 친구가 당신 때문에 다쳐서야 되겠습니까? 서둘러 떠나세요. 하지만 가시기 전에 교회의 목사님께 결혼식을 부탁하세요."
바사니오와 그레이시아노는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베니스로 향했다. 베니스에 도착해 보니, 안토니오는 벌써 감옥 신세가 되어 있었다.
바사니오는 샤일록을 찾아갔으나, 여전히 살 한 파운드를 베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한편, 남편을 베니스로 보낸 포셔는 안토니오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포셔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벨라리오라는 변호사를 떠올렸다. 그는 가까운 친척이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어."
그 때, 샤일록은 단도를 구두 밑창에다 갈고 있었다.
바샤니오는 안토니오를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다.
"안토니오, 마음을 단단히 먹게. 내 살을 도려 내는 한이 있어도 자네에겐 희생이 없도록 할게."
"염려 말게나. 이렇게 죽을 팔자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죽은 뒤에 무덤에 비석이나 세워 주게."
안토니오와 바사니오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였다. 베니스의 총독의 방에 젊은 법학 박사가 나타났다. 총독은 벨라리오 대신 재판관으로 온 젊고 잘생긴 청년을 극진히 맞아들였다. 이미 벨라리오로부터 자기 대신 젊은 박사를 보내니, 재판의 판결을 맡기라는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바로 남자로 변신한 포셔였다.
총독이 포셔에게 물었다.
"오늘 법정에서 재판할 내용은 알고 계시지요?"
"네, 사건의 내용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포셔가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답했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었다. 안토니오와 샤일록이 법정으로 들어왔다. 재판장의 자리에 앉은 포셔가 샤일록을 향해 물었다.
"그대가 샤일록인가?"
"네, 제가 샤일록입니다."
"그대가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은 아니다."
이번에는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의 목숨은 샤일록에게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샤일록, 그대가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샤일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살 한 파운드를 베어 낼 것을 고집했다.
포셔가 다시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토니오, 이처럼 말을 해도 유태인이 듣지 않으니 도리가 없소.
그대가 칼을 받도록 하시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소?"
"없습니다. 각오가 되어 있어요."
안토니오는 바사니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 있게 친구, 내가 이런 일을 당한다고 슬퍼하지 말게. 마지막으로 악수나 하세."
바사니오가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안토니오, 나는 결혼을 했네. 하지만 내 아내나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자네보다 소중하지는 못하네. 내 목숨을 버리고 자네를 구할 수 있다면……."
그 때, 포셔가 샤일록에게 냉정히 말했다.
"샤일록, 살 한 파운드를 달 저울은 가져왔나?"
"네,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어서 살 한 파운드를 떼어 내라."
샤일록은 잔인한 미소를 띠며 칼을 뽑아 들고 안토니오 앞으로 다가갔다. 그 때, 포셔가 샤일록을 제지하며 엄숙히 말했다.
"샤일록, 잘 들어라. 차용 증서에는 피 한 방울도 네게 준다고 쓰여 있지는 않다. 분명히 살 한 파운드뿐이야. 만일 한 방울이라도 피를 흘리게 하면, 너의 토지와 재산은 모두 나라에서 몰수할 줄 알아라. 또, 살은 꼭 한 파운드라야지, 조금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 알겠느냐?"
샤일록의 얼굴이 금새 하얗게 질렸다.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샤일록은 자기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본전의 세 곱이 욕심이 났다. 재판장은 조금 전에 살 한 파운드 대신 본전의 세 곱을 받으라고 설득했던 것이다.
"그럼, 재판장님의 말씀대로 본전의 세 곱을 받겠습니다."
"좋아, 돈을 주지."
바사니오가 기뻐하며 9000더커트의 돈을 주려고 했다. 그러자 포셔가 날카롭게 가로막았다.
"샤일록, 어서 살을 베도록 해라. 많거나 적으면 안된다. 꼭 한 파운드여야만 한다. 어겼다가는 베니스의 법률에 따라 그대의 재산은 모두 몰수될 것이다."
궁지에 몰린 샤일록은 진땀을 흘리며 외쳤다.
"아닙니다. 제가 빌려 준 돈만 받겠습니다."
샤일록이 바사니오에게 손을 내밀자, 포셔가 다시 막으며 외쳤다.
"샤일록, 너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므로 재산을 몰수하겠다. 그리고 너의 목숨은 총독 각하께 맡기겠다. 각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총독이 샤일록에게 말했다.
"너의 목숨은 살려 주마. 그 대신 너의 재산의 반은 안토니오에게 주고, 반은 나라에 바쳐라."
그러자 마음이 너그러운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샤일록이 재산의 반을 딸 부부에게 물려주기로 약속하면, 저는 그것을 받지 않겠습니다."
샤일록은 외동딸이 그리스도교 신자와 결혼했다고 하여 집안에서 내쫓은 적인 있엇다.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딸 부부에게 재신을 물려주도록 요구한 것이다. 샤일록은 힘없이 말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약속을 꼭 실행해야 한다. 이제는 가도 좋아."
총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샤일록은 허둥지둥 법정을 벗어났다.
총독은 젊은 법학 박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바사니오는 젊은 법학 박사에게 감사한 뒤, 3000더커트를 사례로 받아 주도록 부탁했다.
그러나 포셔는 남편을 놀려 주고 싶어서 돈보다는 반지를 달라고 했다. 바사니오는 매우 난처했으나 어쩔 수 없이 반지를 빼어 젊은 법학 박사에게 건네 주었다. 젊은 법학 박사의 서기로 변장했던 포셔의 하인 네리사도 기념의 뜻으로 그레이시아노에게 반지를 달라고 했다. 그레이시아노 역시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지를 뽑아 주고 말았다.
밤이 되자, 바사니오와 그레이시아노가 안토니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포셔는 안토니오에게 시치미를 떼고 공손히 인사했다.
잠시 후, 네리사는 그레이시아노에게, 포셔는 바사니오에게 반지를 들먹이며 화를 냈다. 두 남자는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었다. 그러자 안토니오가 이들 사이에 끼여들며 말했다.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반지를 재판장에게 준 것은 저에 대한 의리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남편들로 하여금 다시는 부인들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포셔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손님이 증인이 되어 주세요. 이 반지를 제 남편에게 주시고, 전보다 더 소중히 간직하라고 일러 주세요."
안토니오는 포셔가 내미는 반지를 바사니오에게 끼워 주며 말했다.
"다시는 이 반지를 손에서 빼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반지를 본 바사니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 반지는 내가 재판장에게 준 바로 그 반지야. 혹시 포셔 당신이?"
포셔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이제 아셨어요? 그 재판장이 바로 저예요."
세 남자는 너무나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때, 포셔가 한 통의 편지를 안토니오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이 있어요."
편지를 읽은 안토니오는 환성을 질렀다. 그 편지에는 난파당한 줄 알았던 안토니오의 배들이 상품을 가득 싣고 항구에 들어왔다고 쓰여 있었다. 포셔의 집에서는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파티를 열었다.
|
|
|
|
|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