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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lsj8238) 고등부 우수상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가끔, 밤이 찾아오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가 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책장에 꽂혀 있는 일기장을 꺼내어 읽어 보는 일. 첫 줄부터 삐뚤삐뚤한 글씨체가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마음을 담는다. 조막만한 손이 초등학생의 일상을 담아낸 흔적, 삶의 여유를 찾고자 할 때, 8살의 ‘나’는 19살의 ‘나’를 달래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일기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일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쉼표(,)의 역할을 해 주는 취미 중 하나다. 추억을 회상하기에 한편으로는 고전적으로 느껴지기도, 누군가는 의아할 놀이일 것이다.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께서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고 하는 말처럼, 일기를 쓸 수 있었던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울 점은 경험에 있다.’ 하시며, 시장에서 사고파는 과정을 보며, 놀이 공원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흉내 내는 습관이 생겨 동네에 있는 도서관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난다. ㄱ,ㄴ,ㄷ…. 글자도 몰랐던 내가 책을 읽고 한글을 깨우치는데 걸음마를 떼듯,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궁금증이 곧 관심 분야가 되어 동화책의 극적인 전개, 그 나이에 글을 통해 나만의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꿈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나고 보면, 11년 간 나의 ‘놀이 문화’가 줄 곧 글쓰기였을 때, ‘그림 일기-충효 일기-칸 일기- 줄 일기’와 같은 일기장들이 뒤엉켜 있어 뿌연 먼지에 서려 있는 일기장을 보면 세월이 흘러갔음을 짐작 해주었고, 그 때만큼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놀이는 현재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지금은 그 시기만큼 가장 가까이 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변함없이 애착을 가질 것이다. 어쩌면, 고등학교의 생활을 하루를 간략하게 단어로 표현할 때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학교’, ‘집’. 진부하게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3학년의 생활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간을 내어 석식을 먹고 난 후 밖을 나가면, 산 너머에 국제 여객 터미널이 보이는 곳, 배의 출항을 알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수평선을 따라 엔진 소리와 함께 잇따라 나아간다. 학교의 만남의 장소로 상징되는 쉼터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환 일기’를 쓰면서 추억을 공유하던 5명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1학년 새내기 입학생이었을 때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서 와서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환 일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함께했고,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그땐 그랬지’하고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받아들이는데 ‘교환 일기’는 학업에만 열중해 추억이 없다고 느끼는 학생의 대표적인 마음을 예상하며 제시했던 일종의 프로젝트이자, 한정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놀이라고 생각했다.

- 여백을 남기지 않고 오늘 하루를 담을 것
- 진정한 마음으로 오늘을 담기
노트 첫 페이지에 어느 흔적이 스쳐도 지워지지 말라고 유성 매직으로 써둔 규칙들이다.
일기 쓰기가 처음이었던 친구들에게 음식의 맛으로 비유하자면, ‘감칠맛’, ‘매운맛’, ‘쓴맛’, ‘단맛’들로 글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첫 장을 써야 했던 친구가 처음에는 유행했던 연예인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경우가 있었던가 하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애완견과 함께 살아가는 ‘동행’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양을 채우기에 급급하게 느껴졌던 일기가, 어느 순간부터 전지적 시점으로 나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 고민거리와 타인의 기대에 비해 스스로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기회라며 여럿 전해 듣고, 반 년 동안, 시행착오 끝에 끝난 첫 도전은, 다음번에 또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 날, 드라마의 ‘응답하라’ 버전이 유행하면서 ‘복고 문화’에 열광하는 시대의 흐름의 반영이 일기처럼 지금은 사라진 놀이 문화, 삐삐 폰부터 스마트폰까지의 변천 과정, 교과서나 학창 시절동안 즐겨 놀았던 놀이들이 스쳐 지나간다. 언젠가 먼 훗날 ‘미래의 나’가 그리워할 희로애락을 거친 오늘을 그리워 할 지라도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미소를 짓게 할 나에게, 우리에게 일종의 ‘놀이’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초월하는 소통, 오늘은 내가 나에게 좀 더 새로운 하루였다고 전해주는 일기 한 장을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억을 함께 공유해온 나의 벗에게 이 말을 전하려 한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일기장의 색은 바래져 있겠지만, 서로 공유했던 추억은 녹슬지 않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머물고 있을 거야.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적었지?’ 하고 감회가 새로워지기도 하겠지만, 졸업하고 난 후에도 지금처럼 학교 쉼터, 그 자리에 찾아와 학창시절을 돌이켜보자.

새벽 5시, 창 밖을 열어 보니, 여명의 밤하늘 속 반짝이는 별들과 지저귀는 새들이 아침을 준비하며, 나는, 오늘따라 더욱 특별한 토요일에는 어떤 내용을 일기에 담을지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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