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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미 (an98510) 고등부 최우수상


<오렌지 맛 사탕의 비밀>

최고 기온이 거의 30도에 가까운, 완연한 여름이라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살랑살랑’소리가 들리는듯한 바람 덕분인지 이불을 덮고 있어도 그리 덥지는 않다.
…음, 아니다, 덥다, 역시 이불은 걷어야겠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살던 집과 동네를 떠나, 좀 더 시내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와 꽤 가까운 곳이었다.
집에서의 통학이 가능해지자 나는 2년간 지내던 기숙사를 나오기로 했다. 예전처럼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처음 기숙사를 나오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었다.
지금까지 한 방을 나눠 쓰며 이런저런 하루들을 보냈던 추억 가득한 룸메이트 친구들도, 그렇게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가족들도 아닌 2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인사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감 선생님 말이다.

기숙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막 돌아와 학습실에서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내 지갑이 없어.”
이유인즉슨,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선물 받은 고가의 지갑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CCTV도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절도 사건이 벌어진, 마치 영화에서나 볼법한 상황이었다.
얘기를 전해 듣고 온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시간됐습니다. 조용히 공부하세요.”였다. 그러고는 지갑의 주인을 사감실로 불러냈고, 우리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다시 학습실로 들어왔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방금 전 친구의 지갑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방에서 쉬고 있어요. 사실 거의 울다 지친 거나 마찬가지죠. 저는 지갑을 훔친 그 누군가에게 참 실망했어요. 지갑을 훔친 행위도 행위이지만, 친구보다, 그 친구보다 돈과 그 지갑을 먼저 생각했다는 사실이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방에 있는 친구는 지금 지갑을 잃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소중한 선물, 그리고 한 사람의 친구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갑을 가져간 친구는 왜 지갑을 가져갔나요. 비싼 지갑이 갖고 싶어서? 돈 때문에? 그 친구를 미워해서? 그 친구를 미워한다는 이유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지갑이 한 친구의 소중한 것을 빼앗고 그 친구를 영원히 잃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아직 작은 실수로 끝날 수 있습니다. 지갑을 가져간 친구는 나중에 조용히 저에게 찾아와주세요. 그럼.” 그렇게 공부시간이 끝났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잠자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지금은 고쳤지만 그때는 노래를 듣지 못하면 잡생각에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그날도 노래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찾았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뒤늦게 학습실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닫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사감실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시간이라 주변은 아무도 없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틈 사이를 들여다 본 나는, 선생님과, 잃어버렸다는 지갑과, 울고 있는 친구를 보게 되었다. 몇 번 눈인사만 보내고 그리 말은 나눠보지 못한 친구였다.
놀라서 굳어버린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왠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는 듯해 학습실에 앉아 기다렸다.
조금 뒤에 사감실에 찾아가니 그 친구는 가고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미리 준비해둔 차를 내밀었다.
“그래, 기숙사 생활은 어떻니?” 존댓말을 쓰지 않으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 괜찮아요.”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공부는 힘들지 않고?” “아, 네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내가 글 쓰는 걸 아신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저, 선생님. 그런데 아까일은…”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선미는 그 친구랑 그렇게 친하지 않지?” “음, 네.” “있지, 방금 그 친구는 자신의 일을 뉘우쳤어. 나에게 왔을 때 죄책감으로 굉장히 힘들어했고, 아마 앞으로도 이 일로 계속 마음이 무거울 거야. 지갑은 주인에게 바로 돌려줄거야. 이름은 서로를 위해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지만. 그러니 너도 이일을 우리 사이의 비밀로 해주지 않을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고맙다면서 내게 작은 사탕을 건네주었다. 오렌지 맛이었다.
사탕은 참 달았다.

그일 이후로 선생님과 다시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존댓말을 쓰셨고, 나는 딱히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는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불려가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면, 신기하게도 입에서 그때의 오렌지 맛이 나는 듯 했다.
기숙사를 나오는 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보았던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하늘이 차츰 붉어지기 시작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늘을 뒤덮고 있었던 회색빛 구름이 걷힌 채 붉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오렌지라… …음, 학교에 가면… 사감 선생님이나 한번 뵈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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