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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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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펄 벅의 '대지'를 읽고
박유미
내가 서있는 곳은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나의 어머니의 품.
내가 있는 고개 아래에는 탁 트인 농토가 있었다.그곳에서 농사를 짓던 한 농부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그와 그의 부인의 삶에 대부분이 어머니의 품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머니를 고르고, 어루만지며 기름지게 만들은 뒤,씨를 뿌리고,물을 주고 얼마 뒤 쑥쑥 자라던 곡식들을 보고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풍성한 수확에 어쩔줄 모르며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기억한다.
한 때는 가뭄 때문에 먹을 것이 풍부한 남쪽으로 떠났던 적도,타락에 빠져 어머니 곁을 떠났던 적도 있었다. 다시는 이 곳으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 그래도 결국은 돌아왔다.
강인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죽을 줄만 알았던,헤어나지 못할 줄만 알았던 그 시절들을 견디고 끈질기게 살아 남아,모질게 헤어나와 결국에는 우리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그들은 강인한 인간이었다.
또다시 어머니를 고르고,씨앗을 뿌리고....... 늘 되풀이 되는 일상이라도 그들은 힘들지만 행복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그들의 이마의 땀방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게는 생명수인 물과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또 다른 결정체. 어머니 말로는 저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그러셨다.어느 생명수보다 더 달콤한 것이라고 그러셨다. 그리고 검게 그을린 얼굴,투박하리만큼 거친 손등.모두가 일에 열중한 흔적이었다.그 까실함이 나에게는 왜그리 아름다워 보였던지. 아저씨는 억센 두 팔로, 아주머니는 정성스런 따사로운 손길로 곡식들을 감싸던 그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그랬기에 한 때는 나도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될 지라도 그들의 농작물로 자라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가장 멋있는 작물이 되리라는 환상과 함께.
한 해가 지나고,수확을 하고,또 한 해가 지나고,몇 십년이 흘렀다.
그 분의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버렸고,그 분의 이마의 주름은 더 쪼글쪼글 했었고,그 분의 손은 마디마디가 쩍쩍 갈라진 후였다. 그래도 그 거친 손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지며 보드라운 숨결에 만족하고 있을 때 그의 얼굴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 때 그의 아들들은 땅을 팔겠단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외쳤던 말들.
"우리는 땅에서 나왔고,다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도 떼어 가지는 못한다......."
어머니는 그 분의 눈물을 온 몸으로 받으셨고,그 때서야 나는 우리 어머니 이름이 '땅'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는 늙은 아저씨를 붙잡으며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미소짓고 있었던 두 형제의 모습.난 생생히 기억한다.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손에 쥐려고 하던 그 욕망에 찬 눈망울을 기억한다.
난 인간 생활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것도 우리 어머니의 숨결처럼 포근함과 따사로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 주길 바랄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는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예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주었던 정성의 절반이라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콘크리트 속에 짓눌린 어머니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그들의 조상들이 살아 숨쉬고,앞으로 그들의 영원히 살아야 할 우리 어머니의 품을 조금이라도 감싸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로워 보인다. 이제 봄인가 보다. 올 봄에는 우리 어머니의 텅 빈 가슴에 발길을 돌려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련다. 차가운 눈망울이 아닌,따사로운 손길을 전해줄 그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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